병원·제약·의료기기 이익단체에 관료 출신 임원 수두룩…"퇴직 당일 산하단체에 재취업"

전관예우성 취업…"의약품 등 품질·안전관리에 영향 끼칠 수도"

[라포르시안 김상기 기자]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하나둘 밝혀지는 과정에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폐해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가 산하 단체나 해운업계에 재취업하면서 정부부처와 관련 업계간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이로 인해 업계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이 약화되면서 대형 재난사고를 초래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관피아 현상은 비단 해수부와 해운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퇴직 공무원 중 상당수가 산하 기관이나 단체, 혹은 관련 업체에 재취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들이 보건의료 관련 정책 수립 과정에서 업계의 요구를 전달하는 로비스트로 활동하거나  감독기관으로부터 외풍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인 끊이지 않았다. 

최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찬열(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정부 주요부처 퇴직공무원 114명이 관련 협회 79곳에 직무 관련 심사를 받지 않고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복지부 및 식품의약품안전처 퇴직 공무원 가운데 관련 산하 단체에 근무하는 숫자가 적지 않았다.

국내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제약협회의 수장인 이경호 회장은 복지부 차관까지 지낸 인물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2월 재선임된 이경호 회장은 올해 초 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제약업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시장형 실거래가제도(저가구매 인센티브) 재도입 폐지를 이끌어냈다.

대한병원협회에도 복지부와 식약처에서 오래 근무하다 퇴직한 고위관료 출신이 상근부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병원협회로 자리를 옮긴 이계융 상근부회장은 복지부 의정국 의료관리과장, 기획관리실 기획예산담당관, 보건정책국 지역보건정책과장을 거친 후 광주지방식약청장, 대구지방식약청장, 대전지방식약청장, 경인지방식약청장, 국민연금공단 기획이사,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상임이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이계융 상근부회장에 앞서 이상석 전 상근부회장도 식품의약품안정청(현 식약처)과 복지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관료 출신이다.

이상석 전 상근부회장은 지난 2012년 11월 병협에서 나와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상근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의 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규제기관인 식약처의 경우 퇴직 공무원이 산하 기관 및 단체로 취업하는 일이 상당히 잦다.

이찬열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현재 식약처 산하 기관 중 퇴직관료 취업인원 수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1명) ▲한국식품산업협회(2명)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2명)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1명) ▲대한화장품협회(1명) 등이다.

지난해 3월 임명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이광순 상근부회장의 경우 1981년 보건복지부 부녀복지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1998년부터 식약청으로 자리를 옮겨 공보담당관실, 서울·부산·경인지방청에서 근무하다 협회로 옮기기 직전까지 대구식약청장으로 근무했다.

현 이광순 상근부회장에 앞서 근무하던 류시한 전 상근부회장도 부산식약청장을 지낸 인물로, 의료기기산업협회를 그만두고 떠나면서  건강가전 및 건강기능식품 전문업체인 I사의 임원진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약품과 화장품 등의 수출진흥 및 수입관리, 품질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는 김영찬 전 경인식약청장이 상근부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 자료 출처 : 이목희 의원 국정감사 보도자료

이러한 식약처 퇴직 관료들의 관련 기관 및 기업체 재취업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목희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퇴직자 재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재산신고 대상 식약처 퇴직자 26명 중 25명(96%)이 관련 공공기관 및 이익단체, 민간기업 등에 재취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기관에 재취업한 퇴직자 가운데 24명은 서기관급 이상의 고위공무원 출신으로, 전형적인 전관예우 차원의 재취업인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재취업한 식약처 공무원 26명 중 7명(27%)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국군의무사령부, 식품안전정보원, 의료기기정보기술지원센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식약처와 업무 연관성을 갖는 기관에 들어갔다.

또한 12명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한국의약품 수출입협회, 한국희귀의약품센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 식약처와 밀접히 관련 있는 이익단체에 재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재취업한 식약처 전직 공무원 26명 중 23명은 퇴직 2개월 이내에 관련 기관과 협회에 들어갔고, 심지어 3명은 퇴직한 당일 산하기관에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목희 의원은 "식약처 퇴직 공무원이 재취한한 협회는 민간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조직된 이익단체들"이라며 "이들 협회에서 전직 식약처 공무원을 채용하는 것은 이들의 전문성보다는 식약처 출신이라는 타이틀 때문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퇴직 관료들은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 상근부회장 등의 고위 임원으로 재취업해 주로 대외업무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공직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과 인맥을 동원해 업계의 이익에 반하는 규제 문제를 풀거나 정부부처로부터 외풍을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실제로 보건의료 분야는 각종 규제가 많다보니 관련 업계나 단체에서 복지부나 식약처 고위 관료 출신을 영입하는데 적극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복지부와 식약처 산하 기관 및 단체는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품질관리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정부부처-산하기관·단체-업계'간 퇴직 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유착관계가 형성돼 국민건강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관련 업계나 단체에서도 복지부와 식약처 퇴직 공무원들의 산하 기관이나 단체 재취업 관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일부 협회에서는 전직 공무원이 고위직으로 임명되면서 장기간 근무한 소속 직원이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업무를 놓고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식약처 산하 단체의 한 관계자는 "전직 식약처 고위관료 출신이 협회의 상근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문성을 갖춘 협회 소속 직원이 승진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있다"며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들은 대부분 대관업무를 담당하면서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들 때문에 정말로 필요한 실무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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