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등 발생시 대형피해로 이어질 수도…재난관리 지침·안전훈련 등 형식적

▲ 한 대학병원에서 화재 사고 발생에 대한 대피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라포르시안 김상기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의 충격이 크다.

특히 이 사고가 발생한 과정에서 승무원과 해운업체, 관계기관 어느 곳 하나 재난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 이후 의료기관에서도 재난·안전관리에 대한 관심과 함께 보다 체계적인 재난관리 매뉴얼 마련과 안전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병원에서 발생 가능성이 높고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것이 바로 화재다.

대형 의료시설의 경우 불특정 사용자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뒤섞여 있는 공간인데다 가연물이 많은 시설 특성상 화재발생 시 대형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재보험협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시설의 화재 건수는 2008년 220건, 2009년 196건, 2010년 172건 등으로 생각외로 많았다. 

그동안 국내 대학병원 등에서는 주기적으로 화재 등에 대비한 재난 대응 훈련을 실시해 왔다. 병원 자체적으로 재난·안전 관리 매뉴얼을 제작한 곳도 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011년 재난 위험으로부터 환자와 보호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병원 시설물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재난·안전관리 매뉴얼'을 제작했다.

이 매뉴얼에는 ▲화재 ▲재난 ▲전산 장애 ▲전염병 발생 ▲테러 발생 ▲제설 및 폭우 대책 ▲시설물 안전점검 ▲유해·위험물질 관리 등 주요 재난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조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특히 화재와 같은 재난 발생 시부터 종료까지 화재진화와 환자 및 직원안자, 시설보호 등의 대응지침을 도식화해 놓았다.

원내 재난대응팀이 진화작업과 시설보호 활동을 하고, 경비구호팀이 외래환자 대피 및 입원환자 소산, 지휘통제팀이 유관기관 협조요청 등의 업무를 나눠 맡도록 구분했다.

국내 의료기관 중에서 미국의 JCI(국제의료기관평가) 인증을 획득한 곳은 비교적 재난·안전관리 대응 체계를 잘 갖췄다.

JCI 인증 기준이 환자안전 관리를 상당히 까다롭게 다루기 때문이다.

국내 병원 중 가장 먼저 JCI 인증을 획득한 세브란스병원은 응급진료센터와 사무팀을 포함한 필수 부서가 JCI 인증의 필수 요구사항인 지역 및 병원 내부의 크고 작은 응급재난 발생에 대비한 역할을 체계화하고 정기적인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화재대피 모의훈련을 통해 각 부서에서 발생가능한 특수상황의 대처방법 및 대피로를 숙지토록 했으며, 화재 시 초기 진압을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소화기 사용법 교육도 필수다. 

그러나 상당수 병원에서는 이러한 재난 대응 매뉴얼이나 훈련이 형식적으로 실시하거나 일부 부서에 한해 제한적으로 실시해 화재 등의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응이 힘들 것이란 우려도 높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우리도 정기적으로 재난 대응 훈련을 하고는 있지만 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어서 솔직히 화재 등의 재난 상황 발생시 모든 직원이 대응 지침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 자체적으로 재난 대응 지침이 있지만 직원들이 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다른 병원 관계자는 "우리 기관에도 부설별 재난 상황 발생시 행동지침이 마련돼 있지만 한 번도 눈여겨 보거나 훈련을 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 중앙대병원에서 실시한 재난 대비 모의 훈련 모습.

"미국 병원서 체계적이고 꼼꼼한 재난 대응 매뉴얼 보고 놀랐다"지난 2010년부터 시작된 의료기관인증의 경우 미국 JCI를 상당 부분 참고했지만 재난대응에 있어서는 인증기준과 평가가 미흡한 편이다. 

병원급과 상급종합병원의 의료기관인증기준을 보면 '안전한 시설 및 환경관리' 조사항목을 통해 시설의 안전관리 규정 여부와 직원에 대한 안전관리 교육 등을 확인한다.

하지만 JCI가 세부적인 상황에 따른 대응 매뉴얼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반면 의료기관인증기준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실제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림대강동성심병원 엄중식 기획실장(감염내과)은 "미국의 병원에서 연수를 할 때 상당히 체계적이고 꼼꼼한 재난 대응 매뉴얼을 보고 놀랐다"며 "우리가 볼 때 지나치다 싶을만큼 엄격하게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반복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엄 실장은 "국내에서는 병원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측면이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더욱 체계적인 재난.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2010년에 '의료기관 화재 예방 및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화재 안전시설의 설치 현황 및 그 기능 숙지 ▲화재 안전 전문가와 보험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 ▲정기적인 화재 안전 점검 및 교육 ▲병원 시설의 노후 상태와 그로 인한 취약실태를 지속적으로 감시 ▲화재 신고 요령 전 직원이 정확히 숙지 ▲화재시 피난 시설의 활용 방법 숙지 ▲대피가 불가능한 환자의 의료시스템은 화재 시에도 기능 유지 ▲ 화재 시 우선 반출해야할 대상 물품과 운반 방법 체계화 등이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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