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김상기 편집부국장]  우리나라에서 한 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5천명이 넘는다. 한 국가의 교통안전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인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정부도 고민이 많다. 가장 획기적인 방법은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는 자동차를 없애는 거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방법을 생각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동차를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고, 안전운전과 적절한 규제 등을 통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예방에 대한 정책적 접근도 마찬가지다. 자살방법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게 목을 매는 것이라고 끈이나 줄 같은걸 모두 없앨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농약이나 수면제, 번개탄 등을 없애거나 자살시도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완전히 차단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 정책의 일환으로 자살수단 접근성을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만우절이었던 지난 1일 '2013년 자살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놓은 보도자료에 들어있는 엄연한 사실이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복지부가 이날 발표한 자살실태조사 결과는 자살의 다양한 원인을 밝히고, 자살사망자 및 시도자의 특성과 위험요인을 규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됐다. 실태조사를 위해 자살사망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 사망자 관련 통계자료 분석, 자살시도자 면접조사 등이 이뤄졌다. 특히 72건의 자살사망 사례에 대해 유가족의심층면담과 사망자의 유서 분석 등을 통해 '심리적 부검'을 하고 4가지 자살사망 유형과 14가지 자살 위험요인을 도출해 낸 건 의미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를 포함해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결과를 보면 자살시도자의 자살사망 위험성이 상당히 높고,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암과 같은 중증질환이 자살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문제는 이런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복지부가 제시한 정책 대안이다. 복지부는 이번에 확인된 자살 유형 및 위험요인을 근거로 자살고위험군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예방 차원에서 개입하고, 보건과 복지 서비스를 연계한 자살고위험군 지원체계, 자살예방 생명지킴이(게이트키퍼) 양성, 자살수단 접근성 차단, 국민 정신건강증진 등 범부처 차원의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어렵게 자살실태조사를 해놓고 엉뚱한 대책을 제시한 셈이다.

복지부는 농약, 번개탄 등 지역별·연령별로 자살시도 수단의 차이를 규명해 지역 여건에 맞는 자살수단 차단의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농약과 번개탄을 지역별·연령별로 구매가 어렵도록 판매제한을 하겠다는 것 같은데. 하지만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농약과 번개탄이 없다고 자살을 포기할까. 이런 정책은 실제로 자살예방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고 박근혜 대통령이 '쳐부술 원수'라고 지목한 불필요한 규제를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국민 정신건강증진 대책도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부적절한 방법이다. 정부가 이 대책을 생각한 건 자살사망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으로 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많다는 조사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높이면 자살이 줄어들 것이란 판단이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을 따져보면 황당한 발상이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됐지만 자살의 위험요인은 실직이나 파산 등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를 비롯해 대인관계 단절, 가정폭력이나 학대, 알코올 중독, 건강상태 악화 등이다. 이런 요인이 영향을 끼쳐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생각하는 국민 정신건강증진 대책이 이런 복잡한 요인을 따져보고 배려해 고안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복지부는 수년 전부터 자살예방과 관련해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전국민 정신건강검진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문턱 낮추기 등을 검토해 왔다. 이번에 마련하겠다는 종합대책에도 아마 이런 내용을 포함시킬 것 같다.

복지부가 자살예방 대책의 일환으로 전국민 정신건강검진 등을 추진하는 건 절대 반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도 지적하고 있지만 자살예방을 위한 노력이 의학적 치료에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자살하는 사람은 우울하고, 우울한 사람이 자살한다'는 식의 편견을 조장할 우려는 물론 정신건강에 위해를 끼치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치열한 학업경쟁과 왕따 문화, 직장인들의 고용불안 및 실업, 가정폭력과 학대, 알코올 중독 등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쪽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고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만 없애겠다는 정책은 오히려 상황을 왜곡시킬 뿐이다. 정신과 치료를 통해 약물을 복용하고 잠시나마 고통을 잊음으로써 사회적 문제는 은폐되고, 자살을 촉발시키는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결국, 자살은 심약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질 테고, 근본적인 문제를 방치한 국가의 책임은 사라진다. 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에 기반해 지난 2004년 '자살률 20% 감소'를 목표로 한 자살예방 1차 5개년 계획을 시행했다. 그러나 2004년 인구 10만명당 23.7명이던 자살률은 2009년 31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정부가 자살예방을 위해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을 높이고자 한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고, 인간적인 근로환경을 제공하는 고용·노동정책을, 치열한 학업경쟁을 덜어주는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자살시도자에 대해서 단순히 정신건강 문제만을 진단하고 치료하기보다 고용· 복지 등이 연계된 종합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자살예방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졌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은 지난 2008년부터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지역보건소, 지역 실업사무소, 사회복지과 등이 함께 연계해 자살 위험요소에 대처해 왔다. 자살문제를 고용·복지와 연계된 총체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접근한 스웨덴 방식은 좋은 성과를 거뒀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도 자살예방 정책의 일환으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번 자살실태조사에서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의 자살위험도가 크게 높아진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암과 같은 중증질환 치료에 지출되는 '재난적 의료비' 부담이 크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탓에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의료비 부담으로 자살을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인식도 조사에서‘심한 불치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란 물음에 56.0%가 동의한 배경에는 이런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 자살'이 복지사각지대를 방치한 정책적, 사회적 타살이란 지적을 정부는 반드시 새겨듣고 섣부른 자살예방대책을 만들어 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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