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의 힘 / 박찬영 지음 / 시공사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박근혜 대통령님의 독일방문을 계기로 히든 챔피언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듣게 되었습니다. 히든 챔피언이란 세계시장에서 높은 지배력을 가진 중소·중견기업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들 기업의 이야기를 담은 헤르만 지몬이 쓴 <히든 챔피언>이 2008년에 이미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던 모양입니다. 발간 당시에는 일부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주목은 받았지만 대중적으로 조명되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강소기업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어 왔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자신의 회사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켜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계실 것 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은 자금동원이 비교적 쉽고, 상호 연관이 있는 사업부문을 연결하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 될 것 같고, 중소기업은 몸집이 작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고 강한 기업이 이처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작은 학교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설명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교육제도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모습이 떠오르고, [북소리]의 독자들 가운데 관심을 가질 분도 계실 것 같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미래, 작은 학교가 답이다”라는 카피를 단 <작은 학교의 힘>은 15년 동안 초등학교에 몸담고 계신 박찬영 선생님께서 쓰셨습니다. 마치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심정을 담아서 ‘내 아이를 위한 좋은 학교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정리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형들에게 조언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박찬영 선생님은 충남 논산군에 있는 도산초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으셨다고 하는데, 당시 이 학교는 전교생이 37명에 불과한 논산에서도 제일 작은 학교였다고 합니다. 부임 직후 이 학교의 학생 4명이 창작 로켓 만들기 충청남도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받아 온 것을 보고 놀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럴 수 있겠거니 했던 선생님은 이 작은 학교의 학생들이 과학이면 과학, 글짓기면 글짓기, 미술이면 미술, 운동이면 운동,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일구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작은 학교에 감추어진 힘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흔히 아이들 교육에 열정을 가진 선생님들의 뛰어난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만, 도산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강한 자존감’이라는 특별한 힘이 더해져 있더라는 사실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1960년에 입학한 초등학교는 지방 작은 도시에서도 한참 떨어진 들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앞으로 지나는 2차선 국도는 그때만 해도 포장되지 않아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곤 했습니다. 학교 뒤편에 있는 운동장 끝으로는 멀리 야트막한 산자락이 보이는 널따란 들판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한 학년에 두 학급이었는데, 학급의 학생 수는 정확한 기억은 아닐 수 있습니다만 30명이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간 지방도시에 있는 학교에서는 60명이 넘는 친구들과 같이 공부했던 것과 분명 비교되는 여유가 많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때는 분명 이런 분위기가 있었어’하는 추억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학부모들은 흔히 대도시의 중심에 있는 큰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가졌던 학부모였습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자녀들을 변두리의 작은 학교에 입학시키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큰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특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교육을 펼치기에 너무나 많은 숫자의 학생을 맡고 있는 것이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아주 뛰어나게 잘하거나 혹은 심각한 문제를 가진 학생들은 선생님의 눈에 띄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은 학급 전체의 분위기에 그냥 묻혀서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은 외국의 유명한 외과의사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느 선생님께서 “너는 손이 크고 힘이 세니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겠구나”라고 해주신 말씀이 자신의 일생에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저 같이 초등학교 때 가졌던 꿈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이처럼 초등학교 시절은 학생이 가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발전시켜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인데, 자신의 소질이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학생 개인에게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하여, ‘큰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학부모들의 인식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고, 왜 큰 학교 교육보다 작은 학교 교육이 아이들의 인성이나 학업 성취도, 자존감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선생님은 우선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학교의 속사정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학교 선생님으로서 감추고 싶었을 내용까지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친구들이 두려워 유령친구를 만들어내는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매튜 딕스의 판타지 소설 <이매지너리 프렌드>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맥스가 만들어낸 실재하지 않는 상상친구와는 달리, ‘유령친구’는 카카오스토리를 하는 우리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로써 실재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즉, “카카오스토리 ID를 서로 공개하고 친구를 맺지만 댓글을 다는 등 친분을 쌓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친구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저도 하고 있는 카카오스토리에서는 친구가 적으면 공연히 쪽팔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SNS상에 친구가 없어 보이는 게 싫은 청소년들이 이런 방식으로 친구 맺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별로 없는 아이’로 낙인찍히면 왕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큰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더 열성적이고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을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저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큰 학교의 신입교사는 허드렛일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손이 부족한 작은 학교에서는 부임 첫 해부터 중요한 일을 맡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학교의 교사들은 선배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교사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승진에 필요한 성과를 내기도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정을 가진 선생님들은 도시의 큰 학교보다는 시골의 작은 학교를 선호하기 마련이고, 승진에 관심도 없고 자기계발을 위하여 노력할 생각도 없는 분들은 이들에게 밀려서 도시에 있는 큰 학교에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바로 잡기 위한 선생님의 노력이 거꾸로 학부모의 몰이해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서로 의견을 나누는 기회가 많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상황일 것입니다.

최근 뉴스는 여선생님이 남학생들과 바람을 피운다고 음해하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미국의 고교생에 대하여 학교가 정학처분을 내렸다고 합니다(연합뉴스 3월 20일자 기사, “‘女선생이 제자와 바람 펴’ 트윗도 美선 표현의 자유”). 이처럼 학생들이 교사를 음해하거나 왕따를 시키는 사례는 비단 미국의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미국의 사례에서는 시민단체가 나서서, 정학 처분은 미국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며 징계 취소하고 학생부에서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교사 개인의 존엄보다 학생의 표현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인식은 크게 잘못 된 것 아닐까요?

작은 학교가 가지는 힘에서는 교사와 학부모 간의 소통도 크게 한 몫을 한다고 합니다. 작은 학교의 경우 교사와 학부모가 한 동네에 사는 경우가 많아서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절대적인 신뢰관계를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 간의 왕따 문제도 작은 학교에서는 일어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놀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친구와 코피를 흘리며 싸우더라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깨동무하고 집에 가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면서 아이싸움에 어른들이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이들 싸움이 어른싸움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좋습니다만, 우리 아이가 귀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귀하다는 인식을 해야 하겠습니다.

▲ 남한산 초등학교 풍경. 사진 출처 : 남한산 초등학교 홈페이지

이 책에 등장하는 학교들 가운데는 폐교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특별한 선택을 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자가 처음 교편을 잡았다는 도산초등학교의 경우도 2009년 부임하신 교장선생님께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방과 후 수업으로 골프, 승마, 발레, 바이올린 같은 특별교육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육청에 건의하여 학구 제한을 풀었는데, 그 결과 인근 지역에서 전학 오는 학생들이 늘어서 2009년에 37명이던 학생 수가 불과 4년 만에 107명으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남한산성 안에 있는 공립학교 남한산초등학교 역시 강남에서 전학 오는 학생들이 늘고 있을 정도로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입식교육을 배제하고 그룹별 토론과 발표로 80분간 수업을 하는 방식인데,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각종 모임과 회의, 공개 수업 등을 통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의논하여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결국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두 참여해서 만들어지고 있어 학부모들 또한 아이들의 교육에 직접 참여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는 효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졸업생들의 학습성취도를 추적하여 확인해본 결과 80% 이상이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즉 남한산초등학교의 실험적 교육방식이 입시 위주의 교육 체계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있는 금반초등학교 역시 폐교 위기를 지역적 특성을 살려 극복한 사례라고 합니다. 최근 아토피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아토피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입니다. 교육시설을 낙엽송 나무 자재로 리모델링하고, 편백나무 목욕실, 전통음식 위주의 식단 구성, 텃밭 가꾸기, 점심 식사후 트래킹, 아토피 전문 의료진과의 협약을 통하여 운영되는 다양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으로 아토피로 고생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질병의 고통도 해소하고 더불어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직접 느끼면서 성장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게 되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기도 양평의 조현초등학교의 경우는 삶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두어 학생들의 사회성과 감수성 그리고 창의성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교과과정을 구성하고, 학생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체험학습을 통하여 생태적 감수성을 기르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맞벌이 부부와 결손 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야간 보육 프로그램을 특성화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어 아이들이 부모들의 관심 밖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어 학부모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학교 교육이 바람직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학부모, 교사, 그리고 교육행정가들이 같이 고민해야 할 점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사와 학부모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맡기는 교육에서 참여하는 교육으로 학부모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며, 학구제의 제한을 풀어야 하는 행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그동안 이루어져온 작은 학교에서의 교육방식을 원용하여 큰 학교에도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고 계신 독자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 소개드렸습니다. 교육은 우리 시대의 커다란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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