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원생 인턴기자가 들여다 본 인턴의 일상]

[라포르시안 김현정 인턴기자] “3월에는 대학병원 가지 마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3월, 이제 막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에 잉크도 마르기 전인 인턴들도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큰 병원을 자주 이용한 환자들은 채혈할 때 달달 떠는 손으로 주사 바늘을 들이미는 인턴을 보며 “새로 들어온 선생님이시구먼”하고 한눈에 알아보기도 한다. 본인의 인턴시절을 회상하며 “말턴이 되면 눈감고도 채혈한다”, “병실 밖에서 주사기를 던지면 혈관에 꽂혔다”는 등 우스갯소리를 하는 교수들도 있지만 이제 막 근무를 시작한 인턴들에게 앞으로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의학교과서에만 파묻혀있다가 이제 의사로서의 첫 걸음을 뗀 인턴들,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현재 인천소재 모 병원에서 파견 근무 중인 인턴 양승찬 선생(27)을 만났다.


- 현재 어떤 과에서 일하고 있나.

"본원에서 한 달간 파견 근무 중이라 정해진 과는 없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600 병상 규모의 2차병원인데 한 명의 인턴이 병동, 중환자실, 응급실 업무를 모두 커버한다. 그렇지만 주로 하는 일은 응급실 업무라고 보면 된다."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아침 9시가 공식적인 하루 업무의 시작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병동과 응급실에서 주로 채혈, 드레싱, 도뇨관 교체와 차트 작성 등의 인턴잡(job)을 한다. 중간 중간 콜(call)을 받고 주사실과 중환자실, 응급실을 수도 없이 오가기도 한다. 외래가 끝나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는 응급실에 상주하면서 초진과 간단한 시술 및 처방을 직접 하는데 보통 40~50명 정도의 환자를 보는 것 같다. 외래가 없는 일요일은 응급실 업무만 있어서 더욱 힘든데, 하루 평균 100명 정도의 환자를 본다."

- 쉴 틈이 없을 것 같다.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먹다가 환자가 오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후다닥 뛰쳐나간다. 이상하게 환자들이 밥 먹을 때 많이 오더라.  잘 안 씻는 것은 기본이고 잠은 많아야 하루 2시간 정도 잔다. 이제는 설 잠 자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당직실에서 눈을 붙이다가도 밖에서 베드 올리는 소리가 나면 “아, 또 119가 왔구나”하고 잠을 깬다. 밖에 나가보면 어김없이 환자가 들어오고 있다."

- 인턴 첫날은 어떻게 시작했나.

"그날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2박 3일간의 연수를 받고 끝나는 날 바로 근무를 시작했다. 사실 연수라고 해봐야 병원 구조, 소방 교육, 안전 교육, 멤버십 트레이닝 정도인데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호출해서 바로 일을 시키더라. 선배 인턴이 비위관을 넣어보라고 했는데 다 아는 술기인데도 당황해서 허둥댔다. 이날 초짜 인턴 두 명이 응급실에서 밤을 새며 초진을 하는데 ‘멘붕’이었다. 환자 50명 정도를 진료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처음 진료한 환자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던져졌다."

- 인턴 시작 전에 어떤 식으로 인계를 받나.

"선배 인턴이 직접 인계를 해 준다. 인턴잡을 한번씩 보여주거나 쉬운 술기는 직접 하라고 하고 옆에서 지도하는 식이다. 내 경우는 운이 좋아서 5일 동안 풀(full)당직을 서며 인계를 받아 술기의 8할 정도를 직접 해 볼 수 있었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선배 인턴이 인계를 안 해주고 잠수를 타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땐 오로지 인계장만 보고 하는 수밖에 없다."

- 교과서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 임상에서 체험해보니 어떤 차이가 있나.

"일단 교과서적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술기, 병력 청취, 환자 케어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기본적인 틀만 알고 가서 거의 새로 배우는 거라고 보면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사 한 명이 보는 환자 수가 많아서 대부분의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 빨리빨리 하고 다음 환자 봐야 하니까."

- 3월에는 종합병원 가지 말라고들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의사면허 나온 지 일주일도 안된 의사가 뭘 알겠나. 서툴고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턴들은 상당히 빠르게 적응한다. 2-3일이 지나면 웬만한 케이스들은 대충 접해보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다."

- 첫 채혈을 한번에 성공했나.

"처음에는 실패했다. 나 혼자 하면 모르겠는데 옆에서 선배 인턴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려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아무리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아 결국 선배 인턴이 했다. 다행히 환자가 불평을 하지는 않았는데 당시엔 식은땀이 났다. 모든 술기가 마찬가지이다. 학생 때 하는 기본임상술기(OSCE) 연습이 도움은 되나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르다. 그냥 한 두 번 해보고 감을 잡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요령도 생겼는데 술기 전에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서 라뽀(rapport)를 쌓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지 않겠는가."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살충제를 먹고 응급실에 온 환자가 있어서 위 세척을 한 적이 있다. 식도를 통해 굵은 관을 넣고 식염수 11리터를 들이 붓는데 위 속에 들어있던 음식물 찌꺼기가 세척관을 막아버렸다. 힘으로 누르다가 결국 관이 터졌고 음식물 찌꺼기를 온 몸에 뒤집어 썼다. 그 상태로 관을 교체하고 갖은 욕을 먹으며 한 시간 넘게 위 세척을 계속했다. 다 끝나고 구석에서 혼자 눈에 들어간 음식물과 세척액을 씻어내는데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또 하나는 꾀병을 부린 환자. 기절해서 실려온 환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꾀병이었다. 어쨌든 검사는 해야 하니 채혈을 하는데 주삿바늘로 찔러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런데 비싼 CT를 찍으려고 하니까 눈을 번쩍 뜨고 정신이 돌아온 척 하더라. 별별 사건이 다 있다."

- 가장 대하기 어려운 환자는.

"처음에는 모든 환자가 어려웠다. 잘못 진료할까 두려워 환자를 보기 싫었다. 일이 익숙해진 지금은 환자가 오면 “아, 왔구나”하고 만다. 하지만 그 중에도 어려운 환자는 분명 있다. 특히 술 취한 환자들. 말을 안 듣는 건 기본이고, 시비를 걸고 폭력을 쓰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세네 명은 오는데 정말 괴롭다. 경찰을 불러도 난리를 피우는데 응급실 경비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 짧은 인턴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처방을 했는데도 환자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다. 간호사들이 “선생님, 이 환자 어떡할까요?”하고 물어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 괴롭다. 또 하나는 책임이 생긴다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인턴이 하는 말이라도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여기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보호자가 검사 결과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내 환자가 아니라 무심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했다가 보호자가 버럭 성을 낸 적이 있다. 어떻게 의사가 환자 상태도 모르냐는 항의를 들었을 때 말문이 턱 막혔다. 사람에 따라서는 인턴잡보다는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윗사람들에게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간호사들과의 마찰도 있고 하니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 같다."

- 앞으로 남은 인턴 생활 어떻게 보내고 싶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당장 드는 생각은 별 탈 없이 인턴 생활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것. 다음 달부터 다시 본원으로 돌아가 이비인후과에서 근무하는데 3월을 무사히 넘긴 만큼 앞으로도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겼다."

김현정 인턴기자는

대학에서 응용생물화학을 전공하고 2011년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현재 인하대 의전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3월 3일부터 4주간 라포르시안에서 의전원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특성화 선택실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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