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김상기 편집부국장]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한 수학문제를 마주한 것 같다. 어쩌자고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답이 있기나 한 걸까.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7일 각각 발표한 의정협의 결과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풀이 과정이 까다로운 주관식 수학문제의 답 중에는 0, 또는 1처럼 극히 단순한 숫자의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이 상황의 답도 의외로 간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2차 의정협의 결과를 둘러싼 논란과 대응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지난달 1차 의정협의 결과에 이어 이번에 나온 2차 의정협의 결과는 보기에 따라 그 의미와 성과가 다를 수도 있고 또 같을 수도 있다. 일단 1차 협의결과를 토대로 협상이 진행됐기 때문에 큰 틀에서 논의 아젠다가 거의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논의 과제를 실천하는 방안이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협의결과 중 원격진료는 먼저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 가장 큰 차이다.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에서 보건의료단체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어서 의견을 반영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6개월의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먼저 시행하는 것, 그리고 투자활성화 대책 논의기구를 통해 보건의료단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분명 좀 더 구체화한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보기엔 무리다. 무엇보다 의사 파업에 앞서 원격진료를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등 의료영리화 정책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한 의협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졸속 합의라는 비판 제기는 정당하다. 이러한 협의결과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옳다. 그렇지만 이걸 두고 또 의사사회 내부적으로 격한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이번 협의결과를 받아들여 24일 파업을 철회할 것인지, 또는 거부하고 예정대로 파업을 벌일 것인지 현재 진행되는 투표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지난 1차 의정협의 결과를 놓고 찬반투표를 벌여 단호히 거부하고 파업을 결정한 것처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견을 모으면 된다. 다만 의협이 대정부 투쟁에 나서면서 선언했던 기본원칙을 견지하고, 이를 훼손한다고 판단했을 때 단호히 협상결렬을 선언하지 않은 건 마냥 아쉬울 뿐이다. 

이번 2차 협의결과에서는 새로운 논란거리가 추가됐다. 바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를 개선하기로 의정이 협의한 내용이다. 이 안건은 1차 협의결과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2차 의정협의 결과에 따르면 건정심의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해 구성하도록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연내에 추진키로 했다.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인 건정심은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면 참여 위원들의 다수결 표결에 부친다. 현재 건정심 위원은 1명의 위원장 외에 가입자대표 8명, 공급자대표 8명, 그리고 공익위원 8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공익위원이다. 공익위원 8명 중 4명은 정부부처 및 산하 공공기관 인사이고 나머지 4명은 정부에서 추천한 전문가들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건정심이 가입자와 공급자 위원이 1대 1 동수 구조에서 가입자와 공급자간 의견이 대립하는 안건을 최종 결정할 때 공익위원 8명, 즉 정부가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런 구조는 매년 실시하는 의료수가 결정 과정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단체가 수가협상이 결렬돼 건정심에서 최종 수가 인상률을 결정할 때 공익위원 8명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수가인상률 결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의정협의 결과를 보면 공익위원 8명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여 구성하는'(합의문 문구 표현) 식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그런데 뒤늦게 이 문구의 해석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복지부는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는 공익위원이 정부부처 및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 4명을 제외한 전문가 공익대표 4명에 한정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협은 공익위원 8명 모두를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키로 협의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놓고 의협과 복지부간 진실게임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동수로 추천하는 공익위원의 범위가 어느 쪽 해석이 맞는가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공익위원이 과연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인가 하는 점이다. 공익이란 사회전체, 즉 공공의 이익이다. 당연히 공익위원은 건강보험제도 운영에 있어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문제는 건강보험제도에 있어서 정부가 과연 공익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공공의료의 확충이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중요한 공익적 사안에 있어서 정부는 그동안 그 역할을 방기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실제로도 그렇다. 전체 의료기관의 5~6%에 불과한 공공병원 비율이나 60%에 불과한 건강보험 보장률, 특히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 의무조차 어기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공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건강보험제도 운영에 있어서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입자와 공급자에게 떠남기고 무임승차해 온 성격이 강하다. OECD 국가 가운데 전체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정부의 공적재원 비중은 가장 낮고, 가계에서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비중은 가장 높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 정부가 과연 건정심에서 공익위원이란 타이틀을 달고 가입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중요한 건강보험 정책의 결정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합당한가 의문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건정심에서 건강보험제도의 중요한 정책들이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건강보험 재정 운영에만 초점을 맞춰 결정됨으로써 건강보험제도가 추구하는 목적(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저해하는 결정이 날 때도 적지 않았다.

"건정심은 보험료와 요양급여비용 조정 등 가입자와 의약계간 이해가 상충되는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객관적인 공익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익대표 8명 중 6명을 복지부, 재정경제부 공무원, 복지부의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는 공단, 심평원, 보사연, 보건산업진흥원으로 위촉해 공익대표의 역할을 사실상 수행하기 어렵다"고 한 지난 2004년 감사원의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 역할로만 본다면 정부는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인 건정심의 위원 구성에서 배제되거나 최소한의 위원 수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부당하게, 혹은 과분하게 차지해온 공익위원 8명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는 몫으로 돌려야 한다. 아니면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고 온전히 공익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진짜 공익위원으로 구성해야 한다. 2002년 건정심이 발족한 이후 지난 12년간 누릴 자격도 없으면서 공익위원이란 이름으로 행사해온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 결정권을 내려놓을 때다.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접근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후 공익위원이란 자격을 가져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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