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 데이비드 미킥스 지음 / 이영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4년

1년에 천권의 책을 읽었다는 독서가께서 적어도 삼년에 천권의 책을 읽어내라고 권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권유가 마음 어디에 남아 있었던지 지난 한 해 동안 300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9년의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천권의 책을 읽고, 천개의 독후감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독서량을 이야기하면 주변에서는 속독하는 법을 익혔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빠르게 읽기 위하여 책을 대각선으로 읽어내면서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아직 따로 속독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대각선으로 책을 읽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책을 빠르게 읽는 속독법도 꾸준하게 익혀 가능한 일종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습니다. 결국 제가 책을 읽는 속도는 조금 빠른 편입니다만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면 책읽는 시간을 더 내는 수밖에는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책을 느리게 읽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독서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데이비드 미킥스의 <느리게 읽기>입니다. 문학을 전공하고 휴스턴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영화에서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하는 틀에 박힌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역시 틀에 박힌 답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일 것입니다. 하지만 빠듯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낸다는 것이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은 넘쳐나면서도 말입니다. 저자는 ‘얼마나 많이 읽느냐보다는 어떻게 읽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7쪽)’고 말합니다. 온 마음을 쏟아서 책을 읽고, 거기에서 즐거움과 정신적 풍요를 얻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좋은 책뿐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인터넷이나 신문기사를 통하여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신문기사, 트위터, 블로그 같은 것들은 제대로 된 읽기를 가르쳐 주지 못한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그 근거로 사람들이 블로그, 페이스북, 뉴스 기사 등의 온라인 텍스트를 F 패턴으로 읽는다는 사실을 밝혀 낸 연구를 들었습니다. 앞서도 대각선으로 책읽는 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저자가 말하는 F패턴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글의 첫줄 혹은 첫 몇 줄을 옆으로 쭉 읽는다(F의 맨 위쪽 가로획). 그런 다음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줄들은 앞부분만 훑어보는 식으로 읽는다(F의 더 짧은 가로획). 그러다가 부제(副題)나 중요 항목이 나오면 또 가로읽기를 하는데, F 패턴에 맞추기 위해 그런 부제들은 주 제목보다 짧은 경향이 있다. 결국 글의 중간쯤 이르면 독자의 시선은 페이지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직선으로 내려가기 시작해서 F의 수직선 부분을 쭉 따라가, 글의 대부분을 읽지 않은 채 텍스트를 ‘끝내 버린다.’ 시간에 쫓기는 독자는 훨씬 더 빨리 글의 끝을 향해 시선을 뚝 떨어뜨린다.(31쪽)”

읽다보니 가슴이 뜨끔해지는 대목입니다. 제가 바로 그렇거든요. 그래서 저는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쓸때 아무리 길어도 A4용지 한 장 분량을 넘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포르시안에 연재하는 [양기화의 북소리]는 예외적으로 A4용지 석장 분량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북소리]에서 소개하는 책을 신중하게 고르다보니 리뷰에서 빠트리면 안 될 주제가 많더라는 것과, [북소리]를 즐겨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은 믿을만 하다는 저의 근거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변명을 드립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구성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디지털 시대에 진지한 독자가 처할 수 있는 절박한 위험을 이야기해볼 생각이라고 합니다. 제1장 ‘무엇이 느리게 읽기를 방해하는가’에서는 인터넷이 몇몇 유익한 변화를 가져오는 동시에 책을 진지하게 천천히 제대로 읽는 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는 점을 논하고 있습니다. 제2장 ‘느리게 읽기에 필요한 것들’에서는 독서와 관련된 모든 측면을 급격하게 바꾸어 버린 디지털 혁명의 본모습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제3장 ‘느리게 읽기의 규칙’에서는 난해한 책을 읽을 때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네 가지의 규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익히게 되면 좀 더 요령 좋고 신중한 독자가 될 수 있고, 책을 펼칠 때 뭘 해야 할지 망설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4장부터 8장까지는 단편 소설, 장편 소설, 시, 희곡, 에세이 등 문학의 다섯 가지 주요 장르별로 저자가 선별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하여 앞서 제시한 독서규칙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있습니다.

머리말의 끝에는 저자가 모두(冒頭)에서 내놓았던 질문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영국의 문학 비평가 헤럴드 블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독서를 하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과 운명, 행복과 비애를 훨씬 더 강렬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창조해 낸 우주는 통렬한 변주, 아름다움과 암흑, 찬탄할 만한 진기함을 추구하며, 글의 무한한 에너지를 통해 가장 귀한 선물인 놀라움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그리고 그 우주는 매 순간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13쪽)”고등학교 다닐 때, 독후감쓰기를 과제로 낸 적이 있습니다. 2년 정도 하다가 입시준비 때문에 접은 뒤로는 책을 읽되 느낌을 따로 정리하지는 않았는데, 9년 전에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책을 읽은 느낌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쓴 글이 인터넷 공간에 공개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타인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광우병파동 때 제가 쓴 글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쓴 거친 댓글홍수를 경험했습니다. 저처럼 인터넷 독자들이 때로는 거친 반응도 불사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 아무래도 글쓰기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오랜 시간을 힘들여 글을 쓰고 책으로 묶어 낸 작가를 생각하면 리뷰에서 날선 비판을 자제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의 독자 서평은 과격한 욕보다는 미지근한 칭찬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38쪽)”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제가 쓴 리뷰를 읽고서 책을 사게 되는 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나름대로 느낀 문제점을 행간에 심어두기도 합니다.

저 역시 몇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때마다 독자들의 반응에 신경이 쓰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저자가 책에 담은 생각이 오롯하게 독자에게 전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자들마다의 생각이 달라 나름대로 해석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독자들의 몫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작가와의 대화이다.(3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미킥스 교수는 독자들이 책을 통하여 저자와 교감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책에 담은 생각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독자는 작가의 가치관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좋은 책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는데 그 시각이 작가의 선입관이나 편견처럼 느껴져 신경에 거슬린다면, 작가의 의도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선은 책에 담겨 있는 견해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 가슴 설레면서 읽었던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을 년전에 다시 읽었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를 드린 작품입니다만, 독일의 의사이자 작가인 한스 카로사가 의과대학을 입학할 무렵의 삶을 그린 작품이어서 더욱 가슴에 와 닿았을 것입니다.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읽었는데도 그때의 울림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믹키스교수는 이처럼 다시읽기를 최대한 많이 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간혹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내가 왜 그 책에 그토록 공감했는지 깨달을 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뭔가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패트리샤 스팩스의 <리리딩(On Rereading)>에서 “책을 다시 읽으면 과거의 나 또는 더 많은 나와 이어질 수 있다.”라는 대목과 소설가 로버트 데이비스가 “진정 위대한 책은 청년기에 한 번, 장년기에 또 한 번, 그리고 노년기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한다. 좋은 건물을 아침  빛에, 정오에, 그리고 달빛에 보아야 하듯이 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다시읽기의 의미를 분명하게 새기고 있습니다(67쪽). 저도 요즈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새로운 번역판으로 다시읽기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 마치 싸우듯 읽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느리게 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일이 있다고 주문합니다. 노트북, 텔레비전, 그리고 가능하면 전화까지 꺼두라는 것입니다. 녹초가 되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늦은 밤은 피하는 것이 좋고, 눈 내리는 날이나 비행기 여행과 같이 짬짬이 어렵게 훔친 시간이 가장 달콤하다고 합니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 가운데 역사책을 읽는 분을 기억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미즈키 아키코 지음,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중앙북스 펴냄) 비행기에 탑승하면 오롯하게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옛날에는 주로 영화보기로 시간을 보냈지만, 본격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주로 인문교양서를 중심으로 한번 여행에 서너권 정도를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각자 선호하는 장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책읽기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 커피숍, 공원벤치와 같은 곳이 역시 좋겠지만, 버스나 지하철도 책읽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물론 책읽기에 몰입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책을 꺼내들자마자 바로 책속에 풍덩 빠질 수 있습니다.

저자가 나름의 경험을 통하여 정리한 인내심을 가져라, 이정표를 찾아라, 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 등 ‘열네 가지의 느리게 읽기의 규칙’들은 독자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작품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인내심을 가져라’를 첫 번째 규칙으로 내세운 것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책을 읽는데 인내심이 필요한 이유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처럼 방대한 분량에 우선 압도되는 경우나 카프카처럼 난해한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가 될 것입니다. 제 경우는 책을 들었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던져둔 유일한 책이 카프카의 <변신>이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도전해보려고 가까이 두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을 읽다가 난해한 부분을 만나면 주눅 들지 말고, 좀 더 고민할 것인가 그냥 넘어갈 것인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권합니다.

의학서적을 읽다보면 앞에 총론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고, 개별 분야를 다룬 각론이 이어지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총론부분에서는 책을 느리게 읽어야 하는 이유와 느리게 읽기의 규칙을 설명하고, 이어서 사례를 들어서 그 규칙을 활용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각론 부분이 이어집니다. 제가 특히 어려워하는 시와 단편소설을 어떻게 읽는가 하는 방법을 체득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말씀을 끝으로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총론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각론 역시 읽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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