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라포르시안 김상기 기자]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있을까 싶다. 사이비 의료행위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참견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딱히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대학병원 교수가 환자 진료만으로도 시간이 없을 텐데 말이다. 이번에 또 외국행 비행기 안에서 오지랖이 발동했다. '닥터콜'(Doctor Call)을 들어도 외면하면 그만인데 환자를 보자 또 후다닥 달려갔나보다.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 이야기다. 한 교수는 지난 7일 호주 브리즈번을 향해 날아가던 대한항공 KE123편에 탑승하고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해 수평 고도를 유지하며 한참을 비행하고 있을 때 갑자기 50대 남자 승객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당황한 승객들의 고함 소리에 놀라 잠이 깬 한 교수는 반사적으로 쓰러진 환자에게 달려갔다.

이미 그보다 일찍 달려온 한 승객이 의식을 잃은 50대 남성을 상대로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었다. 한 교수는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동료의사(순천향대천안병원 김홍수 교수)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심정지 상태에 빠졌던 환자는 다행히 심장박동이 돌아오고,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교수와 김홍수 교수가 한 일이 지난 8일부터 종합일간지 등 신문지면을 통해 알려졌다. 자고나니 '비행기 안에서 심장마비 환자를 살린 의사들'로 유명세를 탔다. 한 교수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히 들어봤다. <한정호 교수가 현재 호주에 있는 관계로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음을 알려드립니다.> 


 

 

- 말 그대로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 얼떨떨할 것 같다.

"브리즈번에 도착한 후 자고 일어났더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엄청나게 와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기내에서 있었던 일이 언론에 보도된 걸 알았다." 

- 당시 기내 상황이 어땠나. 기내방송을 통해 닥터콜(Doctor Call)이 있었나. 

"닥터콜 없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이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명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50대 남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창문에 기대어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바로 뒷좌석의 젊은 남자가 그 남성의 심장을 누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침 환자보다 조금 앞좌석에 앉아 있던 김홍수 교수도 달려왔다."

- 환자가 심정지 상태까지 갔다고 들었다. 상당히 응급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의자에 앉은 채로 심장마사지를 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단 환자를 들어서 바닥에 눕히고 목 부위(경동맥)의 맥박을 확인했는데 맥박이 없었다. 곧바로 김홍수 교수가 환자의 턱을 들어올려 기도를 확보하고, 난 심장마사지를 시작했다. 2~3분가량 심장마사지를 한 후 청진기가 없어서 환자 웃옷을 풀고 가슴에 귀를 댔지만 심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삼장마사지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정신이 없어서 얼마나 더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심장에 귀를 대니 심박동이 느껴졌다. 김홍수 교수가 경동맥을 촉지하니 맥박이 잡혔지만 대퇴동맥은 맥박이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우리는 환자의 심장이 간신히 뛰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승무원과 함께 환자를 기내 앞쪽의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긴 다음 수액을 최대한 주사하고, 혈당을 체크하고 하는 사이에 환자가 눈을 떴다.

- 그런 상태로 환자를 4시간 가까이 돌본 건가.

"환자가 눈을 뜨고 난 다음부터 통증에도 반응을 보이고, 대퇴동맥에서도 맥박이 잡혔다. 심박동도 빨라졌다. 그래도 언제 다시 심정지나 호흡정지가 올지 몰라 김홍수 교수와 함께 기내에 구비된 응급키트에서 기관삽관용 튜브와 후두경을 찾아 세팅하고, 에피네플린(epinephrine)과 아트로핀(atropine)을 준비해 놓고 환자를 지켜봤다. 그렇게 4시간쯤 지나니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고, 환자를 병원으로 무사히 이송했다" 

-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환자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고민은 없었나. 

"환자에게 다가가면서 솔직히 갈등이 생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과 달리 발은 이미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 기내 닥터콜 요청 시 적극 나서서 환자를 돌보는건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진료과에 따라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힘든 상황도 있을테고, 기내에 어떤 의약품이나 의료장비가 비치돼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닥터콜에 응했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질 우려도 분명 있지 않나.

"잘 알고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몇 번 글을 쓴 적도 있었으니까. 우리나라에는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의사에 대한 지나친 규제법이 너무 많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시가 작은 실수라도 있었으면 처벌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누가 길에 쓰러진 환자를 구조하겠나. 이런 규제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뿐이다." 

(지난 2008년 5월 ‘응급의료법 개정법률안’(일명 ‘착한 사마리안법’)이 통과되면서 제5조2항에 일반인이나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수행한 응급의료 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면책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을 감면하도록 했다. 또 지난 2011년 8월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면하도록 제5조2항이 개정됐다. 다만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 선의의 의도로 응급처치를 한 것이 의료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편집자주

- 닥터콜에 응했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는 의사들의 경험담도 많다. 이전에 직접 그런 일을 겪었거나 혹은 주위 동료의사 중에서 그런 상황에 빠졌던 경우를 본 적 있나. 

"주위 동료의사로부터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그런 사례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기내 닥터콜에 응하는 걸 꺼려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edizen)에 쓴 글을 보니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한 항공사의 대응 시스템이나 기내 승무원의 대처가 잘 된 것 같았다. 실제로 어땠나. 

"승무원들이 상당히 잘 대처했다. 환자를 옮기는 것이나 구급키트를 준비하는 것 등에서 승무원들이 상당히 능숙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다만 기내에 준비된 응급키트가 의사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내에 도와줄 의료인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승무원이 따로 사용할 수 있는 응급키트가 준비돼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 이번 일도 그렇지만 작년에는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이비 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고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지금도 한방 암치료제로 불리는 '넥시아'의 효능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 건의 고소를 당했고, 경찰조사도 받고 있는 걸로 안다. 가족이나 주위 동료들이 걱정하거나 불평하지는 않나. 

"한쪽에서는 상을 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고소를 해 조사를 받는 상황이 아니러니하다. 눈 앞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백 수천 명이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나 의약품으로 인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는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사이비 의료행위가 성행하는 것은 보건복지부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의료계, 특히 의학회와 환자단체, 언론도 동조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닥터콜에 눈감고 자는 척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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