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 공간 / 오근재 지음 / 민음인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은퇴 후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전공을 살려 봉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다면, 저개발국가에서 무급으로라도 봉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퇴직 후에 받는 연금이면 그런 나라에서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물론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사전준비도 필요할 것입니다.

과거와는 달리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비가 충분하지 못한 분들은 여전히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하기 위하여 방황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태어난 해의 간지를 다시 맞게 되니 아무래도 은퇴 후의 삶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전철을 타고 천안이나 춘천을 다녀오는 분들 이야기에도 귀가 솔깃해지는 저를 보게 됩니다. <퇴적공간>을 읽게 된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이 책을 쓰신 오근재교수님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시고,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근무하시면서 학장까지 역임하셨고, 전공이신 디자인 분야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저술활동을 왕성하게 해오셨다고 합니다. 은퇴한 다음에도 전공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했기 때문인지 일흔이 되던 해에 들어서야 자신이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위치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주변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느낀 점을 모아 엮은 생각들을 <퇴적공간>에 담아내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대학을 퇴임하고서 한동안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일대를 탐사하셨다고 하는데, 마음에 고인 질문을 해석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합니다. 종묘시민공원은 조금 멀지만 탑골공원 일대는 저에게도 아주 친숙한 공간입니다. 1970년 초반에 다녔던 대학이 탑골공원 뒤 경운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안국동에서 종로3가에 이르기까지 골목의 구석구석까지도 소상하게 꿰고 다녔습니다. 1980년 중반 대학이 고속버스 터미널 남쪽으로 이전하게 되면서는 가볼 기회가 거의 없어서인지 얼마 전에 우연히 찾아본 이 동네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란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싶었습니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하여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오기도 했지만, 머지않은 저의 미래였기 때문인지 <퇴적공간>을 나름대로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먼저 이 책의 제목부터 시작해보면, ‘퇴적공간’이란 도시의 인위성에 밀리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강 하구의 삼각주에 쌓여 가는 모래섬처럼 몰려드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하여 저자가 만든 조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각주는 낙동강이 남해바다로 들어가는 부근에서 볼 수 있었는데, 하구언을 건설하는 바람에 지금은 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나일강 삼각주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아스완댐이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매년 홍수가 끝난 다음에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쌓인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농산물을 풍성하게 거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일강의 사례를 보더라도 퇴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이해하고 사용할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하구에 쌓이는 모래가 소금기를 머금은 바다모래 보다도 건축자재로 귀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는 일입니다.

퇴적은 그렇다 치고, 종로3가 전철역을 중심으로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등에는 하루 3,000여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하루를 보낸다고 합니다. 이들은 가정이라는 집단에서의 1차적 추방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2차적 추방이 교차하면서 흘러들고 있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서울시 인구는 1천 44만 명인데, 이중 65세 이상 인구는 110만 명으로 10.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인인구 110만 명 가운데 0.3% 정도를 차지하는 3천 여 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노인에 관한 사회적 현상을 일반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싶기도 합니다. 즉, 종로3가역 일대에 모여드는 노인들 말고도 서울에서 살고 있는 더 많은 노인들의 삶이 어떤지도 살펴 비교해보았더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우선 저자만하더라도 탑골공원이나 종묘공원의 모이는 노인들과 어울렸다고는 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퇴적공간>을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노화’란 단순히 생물학적 의미로 유기체의 퇴행과 감퇴만을 의미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건강한 신체와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더라도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면 사회적인 쓸모를 인정받기 어렵고 상품시장에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0년대 이전까지는 사회학적 노화를 견뎌낼 수 있는 장치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지만, 개발독재시대 이후 세계화 시장경제체계가 도입된 이후 경작할 토지를 잃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경작하던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금액의 토지 보상금이 제공되었고, 이렇게 손에 넣은 보상금은 예금 혹은 다른 형태의 부동산에 투자되어 수익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명승지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립공원을 비롯한 그들의 명승지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습니다. 청년층은 고사하고 장년층도 만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미국인들이 보유한 개인자산의 대부분은 노인층에 몰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명승지를 돌아볼 시간과 돈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미국의 데이터는 아닙니다만, 일본의 경우는 전체 개인금융자산 중 75%를 60세 이상 노인들이 보유할 정도로 부자 노인이 많다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연금제도와 저축 등 은퇴를 대비한 준비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2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노후의 삶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최근에서야 마련된 탓도 있겠고, 여기에 더하여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은퇴자금까지도 빼줄 정도로 무모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광복 직전 남자 45세, 여자 49세이던 평균수명이 1980년에는 남자 61.8세, 여자 70세, 그리고 2010년에는 남자 80.7세 그리고 여자 84.1세로 나타나, 불과 60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된 것을 두고 저자는 ‘죽음을 원치 않는 개개인에게는 축복이겠지만 시장 가치를 상실한 인적자원을 보호하는 무의미한 일에 사회적 자원을 소비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보면 재앙일 수 있다.’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진보정권시절 정밀한 시뮬레이션 없이 도입된 복지정책의 단맛에 길들여진 우리 국민들은 개인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극대화된 복지서비스를 요구하는데 익숙해져있고, 그런 국민적 요구에 정치권이 휘둘려 국정운영의 전반이 혼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수명연장의 배경에는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의 종사자들은 기술을 개발하고 의사는 기술을 제공하여 환자는 기술의 수혜자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의료기술의 개발이 마치 특정집단의 이익추구의 방편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남습니다. 보건의료기술개발은 국가 간에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 이 분야를 소홀하게 다룰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조각, 미술 등 예술작품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인용하여 주제를 펼치고 있어 저자의 인문학적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간혹은 논점을 잘 못 이끌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때 스치듯 지나치는 바람에 본 기억은 없습니다만, 그곳에 소장되어 있다는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광인들의 배>라는 그림을 인용한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광인 혹은 광기라는 질환에 대한 역사적인 변천사를 살펴보면서 광인을 수용하는 시설의 변천과정을 짚어나가고 종국에는 수용하고 있는 광인을 병원에서 해방시키는 단계까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푸코가, 광기란 다만 이성 중심의 문화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적 인식과 특성의 한 요소일 뿐 결코 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54쪽)”라고 정리하고 있어 저와는 다소 포인트에 무게를 두신 것 같아 다시 확인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탑골공원이나 종묘시민공원에 모여드는 노인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간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환골탈태한 모습의 서울 난지도의 옛날 모습이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아브젝시옹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난지도가 어떤 곳인지는 다들 아실 것이라 생각해서 생략하겠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하기까지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조각한 거대한 대리석은 토스카나 지역에서 캐온 카라라 대리석이라고 합니다. 원래 15세기 초반 활동한 조각가 다두치오가 거대한 예언자 조각상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었는데, 이 대리석 덩어리는 다두치오로부터 로셀리노, 도나텔로를 거쳐 미켈란젤로 앞에 놓이기까지 40년간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에 버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약관 스물여섯의 미켈란젤로는 대가들이 포기한 이 대리석을 가지고 높이 5미터의 소년 다비드상을 조각해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미 조각상은 대리석 안에 들어 있었다. 다만 나는 필요 없는 부분을 깍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주었을 뿐이다.”(민혜련 지음, 장인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138쪽)

미켈란젤로가 말한 것처럼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작업을 정신분석가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고 했다는데,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추방함’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저자는 종로3가 일대의 공간을 ‘디자인 캐피털 시티 서울’의 아브젝트적 집적지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가게 앞 빙판에서 사람이 다치면 가게의 소유주에게 배상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요즘도 한겨울에 빙판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같으면 연탄재 하나 던져두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난지도 역시 당시 풍부하게 쏟아져 나오던 연탄재가 없었더라면 막대한 양의 토사를 따로 퍼다 넣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의 한 구절,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대목과 함께, 지금도 여전히 소용되는 점이 있는 대상으로 종로3가에 모여드는 노인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즉 죽은 자의 공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보르헤스의 <알레프>에 실린 단편 ‘죽지 않는 사람’을 인용하여 종묘시민공원을 ‘죽지 않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죽을 운명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할 수 없고 불안한 가치를 지니는 반면, ‘죽지 않는 사람들’에게 각각의 행동(그리고 각각의 생각)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과거에 그 행동이나 생각보다 먼저 일어났던 다른 행동이나 생각의 메아리로, 미래에 어지러울 정도로 되풀이될 또 다른 행동이나 사고의 정확한 예언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알레프, 27쪽, 2012년) 저자는 종묘시민공원에 모여드는 노인들이 대부분 머지않은 죽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일상이란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고 있음을 이야기 하기 위하여 보르헤스를 인용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사진과 함께 들어 있는 삽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에 눈이 가게 됩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파란셔츠의 남성인데, 검은 머리때문인지 저자인지 아니면 책에 삽입된 사진을 찍어주셨다는 박성현님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분이 저자라면, 저자는 종로3가를 중심으로 하여 모여드는 노인들을 관찰하는 제3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을 공감했다기보다 그들을 관찰한 주관적 기록을 남긴 것이라는 느낌이 남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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