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자, 이제 어쩔 건가…. 의사협회 협상단과 보건복지부가 의료발전협의회라는 논의체를 통해 이른바 '의정협의 결과'라는 걸 끄집어냈다. 굳이 끄집어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런 결과를 협상이란 방식을 통해 도출해냈다기보다 기존 내용과 주장을 끌어모아 허투루 만들어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무한 결과를 위해 의협 협상단과 복지부는 지난 1월 22일 1차 회의를 시작으로 모두 6차례 만나 협상을 했다. 애당초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의협 협상단이 원칙에 따라 복지부를 상대하고, 원칙을 고수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협상결렬을 선언하길 내심 기대했다. 의협이 내세운 협상의 원칙은 원격의료와 영리자법인 등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대책 저지, 건강보험제도 개혁 등이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의정협의 결과는 이런 원칙과 위배된다.

협의, 혹은 협상결과를 보자. 의료계가 가장 반발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에 대해 국회에서 먼저 법개정을 논의하며 문제점을 개선하기로 했다. 발표된 협의결과에 따르면 복지부와 의협은 대면진료를 대체하지 않는 의사-환자간 원격모니터링 및 원격상담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로 했다. 다른건 제져두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격의료를 반대했는데 갑자기 필요성을 인정한다니 어리둥절하다. 그동안 정부는 전문가인 의사들이 반대하는 원격의료를 밀어붙인다는 비난여론을 경계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의사단체가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앞세워 관련법 개정을 거세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등 투자활성화 대책의 협의결과는 더 황당하다. 의정협의 결과에 따르면 투자활성화 정책이 의료법인 자본유출 등 편법이 발생하지 않도록 병원협회와 의사협회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로 했다. 정확히 의미를 모르겠지만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고도 한다. 투자활성화 대책은 복지부가 이미 국회를 통한 법개정이 아니라 하위법령 개정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수준에서 추진하기 방침을 정한 사안이다. 국회에서 논의 과정도 필요없다. 복지부가 의협과 병협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적인 절차만 거쳐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의협이 강조했던 원격의료와 영리자법인 및 부대사업 확대 저지 원칙은 이미 깨졌다. 관련법과 하위법령 개정 등을 통해 현실화되면 의협이 우려했던 의료영리화와 일차의료 붕괴 등의 부작용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의협은 국회 법개정 논의 과정과 복지부에 의견제시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보인다. 

나머지 의료제도 및 건강보험제도 개선 사안은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중장기 과제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대부분 '기본원칙에 합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음', '노력해 나가기로 함' 등의 표현으로 마무리돼 있다. 이렇게 어수룩한 협의결과는 처음 본다. 노환규 의사협회장이 표현한 것처럼 '기한도 없고 내용도 모호한 약속 어음'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원격의료와 투자활성화 대책이 현실화되면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이나 의료전달체계 확립, 건강보험제도 개선 등은 더욱 꼬이기 마련이다. 원격의료와 투자활성화 대책이 이런 요구와 기본적으로 상충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의협이 누차 강조한 것처럼 원격의료가 활성회되면 일차의료기관의 붕괴와 의료전달체계 왜곡을 초래할 게 분명하다.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자원 공급 구조에 대기업 자본 등의 유입을 열어주는 스위치나 마찬가지다.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의협 협상단이 복지부의 무리한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건 공개된 의정협의 결과를 아무리 뜯어봐도 의협 협상단이 얻어낸걸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총파업까지 내걸고 강경한 태도로 협상에 임했음에도 중요한 원칙을 내주고, 두루뭉술한 제도개선 약속만 받아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발표된 의정협의 결과 외에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가뜩이나 의정협상 초기에 복지부가 의협 측에 높은 수가인상률을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의정협의 결과만 놓고 보면 의협 협상단이 얻은 것 없이 내주기만 한 것 같아 이런 의구심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의협 협상단이 어떤 판단 아래 이번 의정협의 결과를 받아들였는지 상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크게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의협의 대정부 투쟁이 처음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기반으로 근본적인 의료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칠까봐 하는 거다. 의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받는 의료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쪽으로 의료제도 개혁의 큰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협 스스로 이를 걷어차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다행히 기회는 남아 있다. 의협은 오는 19일부터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이번 의정협의 결과를 놓고 총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간다. 이 투표는 대의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협의결과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묻는 셈이다. 어쩔 것인가. 선택은 의사 개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의사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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