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경보 하향으로 법적 근거 사라져...6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전환
의협 "의원급 한정·초진금지 등 전제 아래서 조건부 수용"
약사회 "코로나 유행 기간 실시한 비대면 진료 검증이 우선"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내달부터 현재 ‘심각’에서 ‘경계’로 낮아지면서 비대면 진료가 시범사업으로 전환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미 비대면 진료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힌 만큼, 시범사업에 ‘합의 조건’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약사회는 ‘진료’에 한정해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약은 제외해야 한다면 시범사업을 반대했다.

보건복지부 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1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 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해제되면 불법이 된다”며 “6월 1일부터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감염병예방법 제43조 3항은 의료업에 종사하는 의료인은 감염병 관련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8조제2항에 따른 심각 단계 이상 위기경보가 발령된 때에는 환자, 의료인 및 의료기관 등을 감염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범위에서 유선·무선·화상통신,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의료기관 외부에 있는 환자에게 건강 또는 질병의 지속적 관찰, 진단, 상담 및 처방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단계가 '심각' 단계 아래로 낮아지면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 진료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다만 위기 단계가 ‘경계’ 단계로 하향 조정되더라도 시범사업으로 전환되면 기존 한시 허용 형태의 비대면 진료는 종료하는 대신 시범사업 형태로 유지가 가능해진다.

라포르시안 취재 결과 복지부는 6월 시범사업 시행에 대해서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약사회 등과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임인택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상 환자의 범위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관계기관, 여야 협의 등을 거쳐 최종 결정해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협의를 마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의협 김이연 대변인은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복지부가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의협에 사전 통지를 하거나 충분한 의견이 오간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단 시범사업을 하자고 하면 거부당할까봐 그런 것 같고, 행정부에서 추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발표했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의협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힌 만큼, 반대보다는 시범사업에 ‘합의’가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달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일차의료기관 한정 ▲초진 금지·재진 허용 ▲대면진료 대비 150~200% 진찰료 보장 등의 전제조건을 제시하며 비대면 진료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시범사업 수용 조건은 의협에서만 주장한 것이 아니고 복지부와 의료현안협의체 내에서 정한 만큼, 당연히 그 원칙 하에 시범사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시범사업은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기관들의 자발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조건부 수용 원칙 하에서 개원가가 적극 참여할 만한 동기를 제공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 같다”며 “의협에서도 정부가 합의한 부분을 반영하고, 현장성에 기반해 개원가들이 수용 가능한 식으로 구체화할 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협에서는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오는 18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의협과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산업계의 영리적 목적을 위한 형태로 시범사업을 하겠다면 협조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약사회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실시한 비대면 진료에 대한 검증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는 지난 코로나19 3년 동안 시범사업을 했던 만큼, 이에 대한 결과 분석을 통해 문제점이나 부작용을 보완하고 개선 방안을 만든 후에 시범사업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경계’ 단계로 하향조정되면 비대면 진료 어플레케이션 업자들의 존립 근거가 없어진다. 결국 이들의 사업을 연장시켜려는 정부의 꼼수에 불과하다”며 “산업 및 재정 관련 부처에서 자본의 편을 드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국민 건강이 최우선인 복지부가 여기에 방점을 찍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조건부 수용도 현실성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계는 현재 비대면 진료에 대해 조건부 찬성 입장인데, 결국 대면진료 대비 150~200% 수준의 진찰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비대면 진료가 본격 허용되면 혁신적으로 진료 케이스가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재정과 관련한 정책을 상당시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는데, 보험 재정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약사회는 비대면진료 시행에 앞서 ▲표준화·개방화된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구축 ▲의약품 공급불안정 해소를 위한 동일성분조제 활성화 및 사후통보 간소화 ▲환자 중심 약국 선택권 보장 ▲플랫폼 개입 없는 약사 주도의 합법적인 약 전달 ▲비대면 플랫폼 업체 불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 기구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바 있다. 

진료와 의약품을 받는 방식은 별개로 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정부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약 배달이라는 등식을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진료가 데이터를 주고받는 과정이라면, 약을 받는 것은 현물을 받는 것”이라며 “비대면 진료는 데이터로 하고 처방전은 환자 근처의 약국으로 보내면 된다. 이렇게 하면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고, 약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배송 및 분실, 파손, 오염 문제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약사회는 코로나19가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강행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한 약사사회의 강력한 반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오는 14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저지를 위한 전국 시도지부장 및 분회장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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