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공개
응답자 41% “간병비 하루 11만원 이상”
10명 중 7명 "간병비,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야"

[라포르시안] 인구 고령화와 가족규모 축소에 따른 가족돌봄기능이 약해지면서 간병비 문제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이 83.5세인데 비해 건강수명은 66.3세에 불과해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기간이 무려 17.2년이나 되는 상황에서 간병비 해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하루 10만원에 달하는 간병비 부담 때문에 가족이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으면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로 전락하는 것도 모자라 '간병 살인'마저 벌어지고 있다. 간병과 돌봄 책임이 오롯이 가족에게만 떠넘겨진 탓이다. <관련 기사: '간병 살인' 20대 아들의 비극..."국가는 간병지옥 키운 방관자">  
 
실제로 본인 또는 가족이 입원했을 때 간병을 경험한 국민 2명 중 1명 꼴로 간병인을 썼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간병인을 썼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는 간병비용 부담을 꼽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가족이 부담하고 있는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간병 경험자를 대상으로 간병에 대한 인식과 의견을 수렴해 향후 간병서비스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2일 공개했다. 

이번 인식조사는 보건의료노조가 5월 가족의 달을 앞두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지난 4월 19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중 간병 경험자 1,000명 대상으로 온라인 상에서 진행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본인 또는 가족이 입원했을 때 간병 담당으로 ‘간병인을 구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53.4%였다. ‘가족이 간병했다’는 응답은 46.6%로 가족간병보다는 간병인을 사용한 경우가 더 많았다. 

간병 경험자의 절반 이상이 가족 간병 여건이 되지 않아 간병인을 쓰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간병인은 주로 병원의 안내나 지인 소개,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보호자 소개를 받아 개인간병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간병인 구인 경로로는 ‘병원 안내를 통해서'가 62.0%로 가장 많았다. ‘지인 또는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보호자를 통해서'가 27.3%, ‘인터넷이나 신문 등 구인 사이트를 통해서'가 6.4%, ‘광고 전단지를 통해서'가 3.2% 순이었다. 

간병인의 간병 형태를 묻는 질문에는 ‘개인간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7.9%에 달했고, ‘공동간병’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2.1%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간병인 사용이 대부분 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간병인을 썼을 때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경험으로는 잦은 자리비움이나 환자관리 부실 등 ‘불성실한 간병’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56.6%로 가장 높았다. 요금이나 기간, 수수료, 위약금 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불완전한 계약'을 불만족스런 경험으로 꼽은 비율은 36.1%였다. 

간병인을 썼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는 응답자의 65.2%가 ‘간병비가 비싸서 부담되었다’는 점을 꼽았다. 이어 ‘간병인이 제대로 환자를 돌보지 않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23.1%), ‘간병하러 왔다가 환자 상태를 보고 그만두어 힘들었다’(5.2%), ‘간병인이 한국인이 아니어서 언어소통 및 문화가 달라서 힘들었다’(3.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가족이 직접 간병하는 경우에도 간병에 대한 부담과 고통은 심각했다. 가족 간병 시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간병에 대한 부담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이 61.2%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아이 돌봄, 집안일 등 가족 내 갈등을 겪었다’(16.5%),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13.1%),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5.2%)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간병인을 사용하든 가족간병을 하든 간병으로 인한 고통이 극심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간병인을 썼을 때 지급한 간병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0.8%가 '하루 11만원 이상 지급했다'고 답했다.

간병인에게 지급한 간병비는 ‘하루 9~11만원 미만’이 36.7%로 가장 높았고, 이어 ‘하루 11~13만원 미만’(24.0%), ‘하루 7~9만원 미만’(22.5%), ‘하루 13~15만원 미만’(14.0%), ‘하루 15만원 이상’(2.8%) 순이었다.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제공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제공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병원비보다 간병비가 더 비싸다”, “한 달 간병비가 400만원이 넘는다”는 게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돌봄 현장에서 국민이 겪고 있는 간병비 부담의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간병비 부담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부담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은 96%였고, '너무 비싸서 매우 부담스럽다’는 응답이 59.5%에 달했다. ‘조금 비싼 편이어서 약간 부담스럽다’는 응답은 36.5%였다. 이에 비해 ‘적당하다’(3.4%),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0.6%)는 응답은 매우 낮았다.

간병 경험자들이 실제 부담한 간병비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간병비 수준의 격차는 컸다. 

입원했을 때 간병비는 얼마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49.3%)이 하루 5만원 미만을 적정 간병비 수준으로 꼽았다.

적정 간병비 수준에 대한 응답은 ‘하루 2만원~5만원 미만'이 33.9%로 가장 높았고, ‘하루 5만원~7만원 미만’(29.5%), ‘하루 2만원 미만’(15.4%), ‘하루 7만원~9만원 미만’(12.4%) 등의 순이었다.

입원환자에 대한 간병을 누가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보호자(가족 등) 없이 병원에서 해야 한다’는 응답이 68.1%로 가장 높았다. ‘보호자(가족 등)가 직접 해야 한다’는 응답은 16.5%, ‘보호자(가족 등)가 간병인을 고용해서 해야 한다’는 응답은 15.4%에 그쳤다. 

입원환자가 부담하는 비싼 간병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국가와 환자(보호자)가 나누어 부담해야 한다’가 80.9%로 가장 높았다. ‘국가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14.7%), ‘환자(보호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4.4%)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관련 기사: 국가가 방치하면서 빚어진 '간병 지옥·간병 살인'...제도화 어떻게?> 

개인 또는 가족이 부담하고 있는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75.5%였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13.5%에 불과했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1.0%였다. 

더 이상 간병을 개인과 가족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간병 국가책임제'에 대해선 찬성 의견이 57.6%로 가장 높았다. 39.8%는 “취지는 좋지만 국가가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조심스런 의견을 보였다. 간병 국가책임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1.0%에 불과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서비스에 대해선 '만족한다'는 응답이 61.9%(매우 만족 23.0% + 조금 만족 38.9%)로 불만 9.9%(매우 불만 7.1% + 조금 불만 2.8%)에 비해 6배 이상 높았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8.1%였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제도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하지 않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병동지원인력이 24시간 간호와 간병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간병비 부담을 줄이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양질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필수요건인 간호인력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관련 기사: 중증환자 외면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간호인력 확충·수가 개선 필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의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수가 적절한가를 묻는 질문에 ‘적절하다’는 응답은 21.6%에 불과했다. 72.3%가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수를 더 줄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한 인지도는 높았지만 이용 경험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25.1%)는 응답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48.6%)는 응답을 합쳐 75.7%가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반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보호자 없는 병동)을 이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7.8%로, 이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52.2%)보다 낮았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제도가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좋은 제도로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운영하는 곳이 적어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나 가족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이용하고 싶었으나 병원으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20.6%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입원을 신청했지만 5명당 1명꼴로 거절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 경험자 중 절대다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대폭 확대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찬성 의견은 82.0%로 압도적이었다. 반대 의견은 8.3%에 불과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2022년말 기준으로 기관수로는 43.6%(대상 의료기관 1505개 중 656개), 병상수로는 28.9%(24만 3766개 병상 중 7만 363개)에서만 시행 중이다. 

간병경험자의 66.9%는 보건의료노조가 추진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전면 확대운동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전면 확대 운동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국민을 위한 노동조합의 공익적 활동이므로 찬성한다’는 응답 비율은 66.9%였다. 반면 ‘노동조합이 굳이 나서서 할 필요가 없어서 반대한다’는 응답 비율은 22.4%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 비율은 10.7%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조사 결과는 '간병살인, 간병파산, 간병전쟁, 간병지옥'이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간병 현실 때문에 국민의 간병 부담이 얼마나 크고, 간병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드러내주고 있다"며 "'간병 걱정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절대 다수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해 현재 28.9%에 머물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운영 수준을 100% 수준으로 만들기 위한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더 이상 간병을 개인과 가족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해결하자는 간병 국가책임제를 실현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오는 3일 오전 10시부터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초고령화시대, 간병파산! 간병문제 해법을 모색한다!’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간병문제 심각성을 알리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전면 확대하는 방안과 해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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