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원격의료 도입 지리적 접근성만 강조…저소득층 '경제적 접근성'은 외면

공공병원조차 멀리 떨어져…"방문 의료서비스 확대하고 주치의제 도입해야"

정부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필요한 이유로 의료취약층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가장 앞세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이 원격의료를 통해 의료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란 형식만 놓고 보면 정부의 설명이 타당하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의사로부터 진료상담을 받고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란 점에서.

원격의료의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으로 조금만 파고들면 허점이 너무 많다.

정부는 원격의료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지리적 접근성'만 언급했지 '경제적 접근성'은 전려 고려하지 않고 있다.  원격의료 수혜자로 꼽고 있는 노인과 장애인이 우리사회에서 갖는 사회·경제적 위상을 살펴봐야 한다. 

관련 통계를 보면 경제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놓인 노인과 장애인이 적지 않다.

최근 보험연구원 강성호 연구위원이 작성한 ‘적정 노후소득과 노후소득원 확보 방향’이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가구주인 370만가구 중 저소득층은 210만4000가구(56.9%)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노인빈곤율(45.1%)이 1위이다.

장애인의 경우 통계청 통계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으로 등록장애인 수는 251만1,000여명으로, 이 중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으로 확인돼 장애수당을 지급받는 대상자는 40여만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경증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중증 장애인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다.

▲ SF영화 '엘리시움'의 한 장면.

경체적으로 취약한 노인과 장애인에게 원격의료가 아무런 부담없이 의료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원격의료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원격지 의료기관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니터(웹캠 연결)와 프린트(처방전 인쇄), 각종 생체신초 측정이 가능한 혈압계, 맥박계, 청진기, 체온계 등을 갖춰야 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서비스 방식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이런 장비를 갖추려면 수백만원의 비용부담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이런 장비를 무상으로 보급하지 않는 이상 저소득층의 노인과 장애인이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부담을 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기존에 사용하던 컴퓨터와 휴대전화만으로 충분히 원격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원격의료 활성화가 관련 의료기기 및 통신장비 업체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게 목적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되자 추가적인 의료장비를 설치할 필요없이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아직까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도 검증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원격 화상상담만으로 의사가 진단하고 처방하면 된다는 논리다.

전혀 설득력이 없고, 의학적으로도 상당히 무책임한 주장이란 지적이 만만치 않다.

이미 많은 의료기기 및 통신업체 등에서 원격의료를 위한 의료장비와 통신장비 등을 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원격의료를 위한 장비 구입 부담은 필수적이다.

이럴 경우 경제력이 취약한 노인과 장애인은 원격의료 서비스 혜택의 수혜자가 되기 힘들다. 이들은 '디지털 의료서서비스 소외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SF영화 속에서 선택받은 소수 사람들만이 거주하는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에만 존재하는, 어떤 질병이든 몇 초만에 완치할 수 있는 기적의 의료기기이지만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의료 혜택이 될 수 있다. 

설령 장비를 갖추고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장비 사용 방식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을 경우 원격지 의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우려도 높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1일 성명서를 통해 "원격의료는 고가의 장비구입과 의료남용 등 비용의 문제가 있다"며 "국민의 건강권 문제에 장애인과 노인은 결코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가장 취약한 계층임에 분명하다. 또한 의료접근성은 지리적인 문제 뿐아니라 경제적 접근성의 문제도 핵심적 요소임에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원격의료는 필연적으로 병원양극화를 가져오고 그 결과는 취약계층에 대해 의료접근성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피해갈 수 없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의료접근성 강화 정책은 원격의료가 아니라 의료취약지를 중심으로 공공병원 확충과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의료시설 개선, 그리고 방문 의료서비스 등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노인과 장애인에겐 너무 먼 공공병원하지만 이 정부들어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해 문을 닫은 진주의료원에는 장애인치과·산부인과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경남도가 강제로 폐업하면서 사라졌다.

당시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에서 운영하던 장애인치과와 산부인과를 민간병원에 위탁했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경남도는 공공의료사업을 포기한다는 비난이 두려워 장애인치과·장애인산부인과 장비를 민간병원으로 옮겼지만 그에 따른 시설과 인력 등을 갖추지 못해 사실상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산중턱에 위치한 충주의료원

게다가 현재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은 노인과 장애인이 접근하기 힘든 산꼭대기나 도심지 외곽 등에 설치된 곳이 많다.<관련기사 : 산중턱, 허허벌판, 고속도로 옆 공공병원…“환자분, 당황하셨어요?”>앞서 본지가 구글맵을 이용해 지역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수행하는 각 지방의료원의 지도상 위치를 파악해 본 결과, 상당수 의료원이 도심외과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일부는 아예 환자들이 찾아가기 힘든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난해 폐업한 진주의료원은 진주시 도심이었던 중앙동에 위치하다가 지난 2008년 시외곽인 초전동으로 옮겼다.  

진주의료원이 옮겨간 초전동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불편해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이용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위치였다.

심지어 천안의료원은 지난 2012년 5월 이전하면서 도심지를 벗어나 고속도로 바로 옆에 세워졌다.

신축된 충주의료원도 충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문화동에서 안림동으로 이전하면서 산중턱에 설립됐다.

울진의료원, 군산의료원, 남원의료원, 강진의료원 등의 환자들의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심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의 지리적 의료접근성을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이러면서 노인과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하는 셈이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원격의료는 오진과 의료사고, 의료정보 유출 위험성 등이 수없이 지적되고 있으며 이 경우 의료분쟁의 책임성 문제까지 심각해 장애인과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전혀 검증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진정 장애인과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 향상이 목적이라면 취약 지역에 공공병원을 더 짓고 방문서비스를 확대하고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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