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라니. 뜬금없기도 하지만 그럴싸한 구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창조경제에 이어 올해에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들고 나왔다.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뜯어고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정상으로 되돌려야 할 비정상적인 것들이 어디 한둘인가.

정부는 친절하게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80개 과제를 제시했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진료비 거짓·부당청구 관행 개선, 무자격자 건강보험 급여 낭비 방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과제가 어떤 논의를 거쳐 선정됐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장단을 맞춰 건강보험공단은 신속하게 건강보험정상화추진위원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회를 통해 진료비 청구·심사·지불 체계를 정상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마도 건강보험 급여비 심사·지급 방식이 더 까다로워질 모양이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슬슬 걱정이 된다. 실체도 모호한 창조경제를 들고나와 작년 한해 그렇게 요란 법석을 피우지 않았나. 이번엔 또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정책이 '비정상적'으로 난립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결과에만 집착해 한건주의식 행정과 풍성한 말잔치만 벌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비정상을 초래한 구조적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까봐 우려스럽다. 이렇게 중요한 국정과제를 정하면서 과연 무엇이 비정상인가, 정상화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없었다. 어쨌든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보건복지 분야에서 진료비 거짓·부당청구와 건강보험 급여 낭비 방지가 범정부 차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과제로 선정될 사안인지 잘 모르겠다. 정상화가 시급한건 그게 아니다. 생각하건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비정상의 조각이 모인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우수한 사회보험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의 보건의료전문가들은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단기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완성한 것을 꼽는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12년 만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다. 전세계 어느 국가의 사회보장제도 역사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성과다. 의료선진국 미국이 우리보다 40여년 앞서 의료보장 제도를 고민해 왔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우리는 불과 12년 만에 달성했다.

문제는 그 과정과 방법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군사정권 시절이다.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이다. 당시 군사정권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럴듯한 사회보장 제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 정치적 이유로 도입된 의료보험제도는 직장의료보험을 시작으로 12년만인 1989년 지역의료보험을 아우르는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단기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완성한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선진국들이 수 십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해온 의료보장제도를 단기간에 서둘러 완성했으니 정상적으로 제도화됐을 리 없다. 구조적으로 심각하게 비정상적이다. 정상적인 방식이었다면 국가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의료기관을 설립.확충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버거웠던지 꼼수를 동원했다. 민간 의료기관을 건강보험 적용 기관으로 지정한 것이다. 해외차관 자금을 도입해 민간병원 시설 및 의료 장비 구입을 지원했다. 도시를 중심으로 민간병원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도입을 확산시키기 위해 초기에 계약제로 운영하던 건강보험 적용 요양기관을 강제지정제로 바꿨다가 다시 지금의 당연지정제로 변경했다.

엄밀히 따지면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비정상적인 제도이다. 외국 어느 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없다.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떠받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로 작동하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이만큼 비정상적인 규제도 없다. 만일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에 정부가 공공병원을 적극 확충했더라면 굳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민간병원을 이용해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완성하려고 하다보니 이런 비정상적인 제도가 도입된 셈이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통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병원의 공백을 민간병원으로 메운 것이다. 건강보험제도의 틀을 유지하는 의료공급체계에서 민간과 공공병원 비율이 94% 대 6%라는 비정상적인 비율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강제가입 방식이다. 가입자에게 선택의 연지가 없다.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건강보험 의무가입에 따른 국민적 저항을 해소하고자 적용된 것이 바로 낮은 보험료 부담이다. 낮은 보험료 부담은 건강보험 재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낮게,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의료수가도 낮게 책정됐다. 이른바 '저수가-저부담-저급여’의 3저 시스템이란 또 다른 비정상적인 구조가 완성됐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3저 시스템은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 저수가로 인해 건강보험 진료만으로 수익 보전이 힘든 병의원들은 비급여 진료, 박리다매식 3분진료와 과잉진료를 양산했다. 저수가 탓에 대형병원은 지속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며 성장을 모색했다. 이는 의료전달체계의 심각한 왜곡을 불러왔다. 경증환자마저 대형병원에 빼앗긴 중소병의원은 생존을 위협받으며, 또다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직면했다.

정부는 또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병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의약품 리베이트를 눈감아 줬다. 여기에는 국내 제약사의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비정상적인 높은 약가 정책이 한몫을 했다. 여기서 발생한 높은 약가마진은 다시 의료기관의 리베이트로 돌아갔다. 제약사가 신약 개발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는 비정상적인 제약시장이 또 그렇게 형성됐다. 환자들은 낮은 보장성 탓에 큰 병에 걸리면 '재난적 의료비'로 인해 가정경제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또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보장하는 거대한 민간보험 시장이 형성됐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정부는 또다른 의료시스템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보건의료산업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는 원격의료 허용과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및 합병 도입 등의 규제완화 정책이다. 원격의료는 공공병원이 부족해 발생한 도서산간지역 의료취약지 주민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와 합병 허용은 경영난을 겪는 중소병원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본말이 완전히 전도됐다. 원격의료,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및 합병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정부가 제시한 이유는 다름아닌 정부의 잘못된 건강보험제도 설계에서 비롯됐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제도 도입 과정에서 의료취약지가 발생했고, 중소병원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비정상의 본질적인 문제를 버려둔 채 다시 편법적으로 병원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의료취약지 주민들은 의료서비스의 기본인 대면진료 대신에 안전성과 유효성도 검증되지 않은 원격진료를 받고, 병원은 본업이 의료서비스 제공 대신에 부대사업으로 먹고 살라고 강요한다. 그렇게 해서 병원의 경영이 나아지면 결국 환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 질도 개선되고 공공의료가 강화된다는 궤변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떠벌린다.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말도 다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 등 서비스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투자의 가장 큰 장벽인 규제를 풀어야 한다. 올해 투자 관련 규제를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해 꼭 필요한 규제가 아니면 모두 풀겠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규제완화가 의료산업 육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병원과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나. 이렇게 비정상적인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박 대통령은 "의료민영화 괴담이 국민들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정부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 참 나쁘다. 박근혜 대통령이 6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했던 "참 나쁜 대통령"이란 발언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것 같다. 저기 멀리서 점점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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