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자회의 열고 대응책 논의...불법 한방피해신고센터 운영
대법원 정문 앞서 항의 기자회견 열어

[라포르시안] 의료계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에 강력히 반발하며 판결 무효까지 총력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의사 A씨에 대해 형법상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7일 의협회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대표자회의를 비공개로 개최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5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한의사 초음파 사용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대응 항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대표자회의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부당함에 대한 대국민 홍보 ▲대국민 불법 한방피해신고센터 운영 ▲2심 환송 법적 대응 강화 ▲범의료계 한방 특별대책기구 구성 등을 논의했다.

이필수 회장은 “초음파 판결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한의사가) 다양하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16개 시도의사회와 시도한특위지부를 연결해서 구체적으로 진행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를 마친 대표자 55명은 대법원 정문 앞으로 이동해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필수 회장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미숙하게 사용해 환자의 병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환자에게 치명적 위해를 입힌 심각한 사안임에도 대법원은 환자의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환자에게 명백하게 피해를 입힌 한의사를 엄벌에 처하기는커녕 한의사의 무분별한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묵인하는 불공정한 판결을 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섣불리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환자의 질환을 추정하는 것은 환자의 진단 시기를 놓쳐 질병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초음파 진단기기 자체는 신체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다소 낮다고 해도, 비전문가의 초음파 사용은 환자에 대한 오진 가능성을 현저히 높인다”라며 “결국 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게 하므로 해당 환자는 물론 공중 보건위생상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다”라고 말했다.

의협 대의원회 박성민 의장은 의학과 한의학이 태생부터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성민 의장은 “의사와 한의사의 교육과정은 분리돼 엄연히 다르고 병리생태학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의사 교육 정규과정에 초음파 교육이 포함돼 있다는 일말의 사실에 근거해 내린 대법원의 판결은 의학과 한의학의 차이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와 건강 추구라는 헌법이 보장해야 할 국민의 근원적인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박 의장은 “의학과 한의학은 진단과 치료 영역에서 태생적으로 엄연히 근본이 다른 학문이다”라며 “한의학이 아무리 과거부터 전해진 전통적인 학문으로 존중하고 일부 질병에만 치료적인 효과를 인정한다 해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치료 과정에 관한 이론적인 정립이 부재하고 한약의 약리작용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못한 불완전한 영역이다”라고 강조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이광래 회장은 대법원의 판결이 과잉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광래 회장은 “이번 판결이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 점은 매우 부적절하다. 현행 의료법은 그 체계상 모든 의료기기에 대해 법으로 일일이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의사와 한의사 각자의 면허와 무관하게 모든 의료기기의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라며 “모든 규정을 법제화하기 어렵고 완전히 다른 의료인의 행위를 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대해 해석하는 것은 과잉”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영상의학회 정승은 총무이사는 “초음파 진단기기는 판독과 진단을 함께 진행하므로 잘못 사용할 경우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라며 “이런 이유로 수십 년 전부터 영상의학과 전문의나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과 관련 이론 및 실습을 거쳐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춘 의사만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의료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 총무이사는 “그럼에도 현재 허가된 의료용 초음파 진단기기가 인체에 유해성이 적으므로 전체 초음파 진단기기를 누구나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판결은 극히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대법원 판결 근거에 모순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2012년,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와 비교할 때 최근 국내 한의과대학은 ‘진단학’과 ‘영상의학’ 등을 전공필수 과목으로 해 실무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한의사 국시에도 관련 문제가 계속 출제돼 왔으며, 매년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의료행위의 전문성 제고의 기초가 되는 교육제도·과정이 지속적으로 보완·강화돼 왔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대개협 김동석 회장은 “이 판결에서 문제가 된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던 2012년에 일어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라며 “대법원은 과거 결정 당시와 비교할 때 최근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교육제도·과정은 지속적으로 보완·강화됐다고 했으나, 헌법재판소가 불과 2년 전인 2020년 6월 25일에도 한의사들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했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

의협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한의사들이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총력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대법원 판결에 대한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라며 “국민의 생명 및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향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신중한 검토와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한의사들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빌미삼아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면허의 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면, 이를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나갈 것임을 천명한다”고 했다.

한편 의협 대의원회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해당 판결이 무효가 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관련해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한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공정과 상식에 벗어나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의료는 과학적으로 안전성·유효성·효과성이 입증된 방법으로 필요에 따라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인데, 무자격자와 무면허자가 제대로 된 교육이나 경험 없이 진단기기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국민을 마루타의 대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난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이 정정돼 국민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다 할 것”이라며 “14만 회원과 함께 회원의 권익과 국민 건강을 수호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이 무효되는 그날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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