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보건의료분야 투자활성화 대책을 둘러싼 의료민영화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과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이 우회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이 아니냐는 의심과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 참다못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꺼내며 SNS(소셜네트워크)에 떠도는 '민영화 유언비어'를 방치해선 안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눈치 빠른 관련 부처들이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민영화 우려를 반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갔다. '정부도 의료민영화에 반대한다'고. 이번 대책이 절대 의료민영화와 무관할뿐더러 오히려 정부에서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는 그럴싸한 문구를 내걸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 구조상 의료민영화란 주장 자체가 억지라는 논리도 제시했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히다. 전체 의료기관 중에서 민간의료기관이 94%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민영화할 병원이 별로 없다는 설명이다. 또 의료민영화의 의미는 건강보험제도의 요양기관당연지정제를 배제하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이나 민간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것이란 점에서 의료민영화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민간중심의 공급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참 낮두꺼운 해명이다. 지금의 의료민영화 논란이 야기된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나. 그만큼 공공의료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논란이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이란 제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민간중심의 공급체계를 버젓이 내세우며 의료민영화 논란을 반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며 지적하는 꼴이다. 

정부가 정말로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면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이번에 발표된 투자활성화 대책 가운데 하나인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을 재고해야 한다. 정부는 의료법인간 합병이 허용되면 '경영난을 겪는 병원이 경영상태가 괜찮은 다른 병원과 합쳐져 인력이나 장비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새롭게 살아날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료법인간 합병이 허용될 경우 경영난에 봉착한 중소병원은 다른 병원에 흡수통합돼 사라질 게 자명하다. 어느 의료법인이 경영상태가 부실한 의료법인 병원을 인수해 그대로 유지하려고 할까.

정부의 방침대로 의료법인간 합병을 허용할 경우 굳이 경영난을 겪는 병원을 유지할리 없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진료수익을 높이는 쪽으로 병원의 진료과를 조정하거나 인력을 축소하는 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은 중소병원의 구조조정은 물론 의료인력의 구조조정을 초래해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의료법인간 합병을 허용할 게 아니라 정부가 경영난에 직면한 중소병원을 인수하면 어떨까. 현재 의료법인 같은 비영리법인 병원은 법인 청산 시 민법의 적용을 받아 잔여재산을 국고에 귀속토록 돼 있다. 이 때문에 경영 상태가 부실한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파산시까지 운영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과정에서 의료서비스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결국 의료자원을 낭비하는 폐해가 초래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법인간 합병을 허용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의료법인 병원 운영자의 투자금 일부를 보존해주면서 병원을 청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인수한 의료법인 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해 운영하면 어떨까 싶다. 정부도 밝히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 공공병원 비율은 전체의 5~6%에 불과하다. 경쟁력을 상실해 폐업 위기에 몰린 중소병원에는 퇴로를 열어주는 동시에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방안으로 경영이 부실한 의료법인 병원을 정부가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하면 좋겠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도모하고 국민의 의료접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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