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케어 / 구사카베 요 지음 / 현정수 옮김 / 민음사 펴냄, 2013년

통계청은 지난 12월 5일 발표한 ‘2012년 생명표’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기대수명이 81.4년으로 추정하였습니다. 남자는 77.9년, 여자는 84.6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발표한 건강기대수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남자의 건강수명은 65.2년, 여자는 66.7년으로 추정되며 평균은 66년이라고 합니다. 결국 남자는 12년을, 그리고  여자는 18년을 질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최근 가족들 간에 학대행위가 빠르게 늘고 있고, 학대행위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양에 대한 부양에 대한 부담이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현상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고령화속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역시 통계청이 12월 19일 내놓은 ‘한국의 사회동향 2013’에 따르면, 2000년에 7% 수준이던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은 2005년에는 8.9%로, 그리고 2010년에는 10.9%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가 유지된다면 2020년 15.7%, 2040년 32.3%로 10명 중 3명 이상이 노인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아동을 제외하고 생산활동이 가능한 젊은이 한 사람이 노인 한 사람 부양해야 하는 시기가 곧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거시적으로 보면 노인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커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거 대가족중심의 사회에서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던 노인부양이 요양시설로 옮겨질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는 노인요양보험제도 등 사회적 보장 장치를 서둘러 마련한 것입니다. 제도가 출범할 당시 의료계 등 관련 분야에서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즉 사회적 분위기라든가, 제도를 순탄하게 이끌어갈 전문인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지적된 사항들의 일면이 최근 노인복지시설에서 학대행위가 만연되고 있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금년 들어 개별 지방자치단체별로 노인생활시설에 대한 노인학대현황을 조사하고, 노인학대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노인요양병원에서도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노인환자를 감금하거나 속박대를 채우는 등의 행위에 대한 관리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하여 정부는 <요양병원 입원환자의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한 지침>을 제정하여 환자의 안전관리와 인권침해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도  요양병원에 대한 급여적정성평가를 통하여 요양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노인의료와 관련하여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미래에 등장할 수도 있는 노인의료의 문제를 다룬 소설 'A 케어'는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마취과와 외과를 전공한 구사카베 요의 데뷔작으로 일본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진 바 있다고 합니다. 195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구사카베 요는 오사카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오사카 대학교 부속 병원에서 외과와 마취과의 수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사카 부립 성인병 센터에서 마취과의사, 고베 에키사이카이 병원에서 일반외과의사, 재외 공관 의무관으로 각각 근무했고, 2003년, 현직 의사로 일하면서 노인 의료의 실태를 다룬 'A 케어'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하였습니다. 소설 이외에도 일본의 의료 현실을 비판한 에세이를 발표하며 ‘메디컬 르포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소설 'A 케어'는 르포르타주를 읽는 느낌이 드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이미 발생한 사건을 뒤쫓는 것 같은 긴박한 분위기에 빠져들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은 고베에 있는  ‘이진자카 클리닉’ 원장 우루시하라가 노인환자들을 대상으로 ‘A 케어’을 고안하여 시술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 글과 우루시하라원장의 ‘A 케어’와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들을 추적한 야구라 슌타로 편집자의 주석-봉인된 ‘A 케어’란 무엇이었나-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헷갈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루시하라원장이 고용되어 근무하고 있는 고베의 이진자카 클리닉은 ‘노인 데이케어’를 중심으로 하는 노인의료시설입니다. “데이케어란 마비가 있는 사람이나 치매에 걸린 노인을 낮 동안에만 맡아서 돌보며 물리치료나 작업치료를 하는 시설입니다.(9쪽)” 문제는 ‘노인의료’가 낫게 하는 의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치료(cure)보다는 간병(care)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의료행위로 저자는 간호보험으로 커버된다고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우루시하라원장은 노인의료의 한계를 뛰어넘을 새로운 의료가 없을까 고심하게 되는데, 의료를 ‘과학’이라기보다는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없을까 하는 바탕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는 것입니다. 노인들을 안심시키는 의료서비스를 찾아내기 위하여 노인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가운데, 의외로 노인들이 ‘죽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는 점을 찾아냈다고 하는데, 죽고 싶다는 노인들의 바람이 사람들의 3대 거짓말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오랫동안 내려온 금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모르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인가요? 어쩌면 수명연장과 관련하여 건강수명이 끝나고 망신창이가 된 몸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등장하게 된 변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루시하라원장은 노인들의 죽음에 대한 바람에 더하여 노인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학대가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게 됩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간호에 지친 가족들, 심지어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노인간호에서 오는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쌓인 의료진까지도 저지르고 있는 노인학대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루시하라원장은 우연히 방청하게 된 시드니 패럴림픽의 하이라이트와 베스트셀러 <오체미완성>의 저자 오토사다 고헤이씨의 다큐멘터리에서 힌트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된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씨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90킬로그램이나 되는 체구에 뇌졸중으로 하반신과 왼쪽 팔이 마비되어 아내와 아들의 학대를 받고 있는 이와카미 다케가즈씨의 경우, 마비된 거동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는 하지와 왼쪽 팔을 잘라내면 단숨에 가벼워진 그를 돌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저자는 잘라낼 신체의 일부를 ‘폐용신(廢用身)’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마비가 생긴 사지에 대한 재활치료에 대하여 일본의 건강보험에서는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비용을 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치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족의 학대로 인하여 욕창이 감염되면서 생긴 가스괴저로 이와가미씨가 생명의 위기를 맞게 되자 자연스럽게 왼쪽다리를 절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차제에 우루시하라원장은 가족들이 이와가미씨를 학대하는 원인을 과체중으로 인한 간호부담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도 절단하는 방안을 논의에 부치게 됩니다.

우루시하라원장은 찬반이 엇갈려 혼란에 빠진 스태프들을 “저도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가미 씨의 폐용신 절단을 생각했을 때, 뭔지 알 수 없지만 이 방법은 잘될 거라는 영감 같은 것이 머릿속에 번뜩였습니다. 이 요법을 시행하면 이와가미씨는 분명히 좋아질 거라는 치료자로서의 감이라고 할까요(93쪽)”라고 설득하고, 최종적으로는 가족들과 환자의 승낙을 얻어내게 됩니다. 이진자카 클리닉은 요양시설이기 때문에 수술을 해줄 의사를 찾는 일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스괴저로 인한 다리 절단은 보험의 적용이 가능하지만, 마비상태라는 이유로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을 절단하는 수술은 보험수가의 적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편의상의 병명을 붙여서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보험적용을 받지 않으면 자비로 수술을 받아야 하므로 환자의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불법진료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 상황을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 검토해본다면 ‘A 케어’라는 개념 자체가 시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환자의 심리상태의 변화 등을 포함하여 시술의 효과와 안전성 등에 관하여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된다는 절차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시술이라고 하겠습니다.

'A 케어'에서는 하지와 왼쪽 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이와가미씨가 재활치료를 받고서 심리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이고, 재활치료를 통하여 오히려 활동성도 향상되는 것으로 묘사괴고 있습니다. 이런 이와가미씨의 변화를 지켜본 마비 환자들이 같은 시술을 받게 되는 상황을 넘어 치매환자까지도 불편함을 느끼는 팔을 절단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A 케어는 절단(amputation)을 의미하는 영어단어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 것입니다. 이 시술은 우루시하라 원장의 주도로 이진자카 클리닉의 스태프들의 협의를 거쳐 당사자가 동의하는 경우에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3건의 시술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A 케어를 적용하는 기준도 마련하게 됩니다. 1. 절단하는 것은 폐용신일 것, 2. 본인의 명확한 희망이 있을 것, 3. ADL(Activity of Daily Living; 일상생활의 활동성)의 개선, 혹은 간호의 경감이 기대될 것, 4. QOL(Quality of Life; 삶의 질)의 향상이 기대될 것, 5. 생명에 위험이 없을 것. 이런 기준은 오로지 이진자카 클리닉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논의를 통하여 만들어지고 적용된 것으로 의학 분야에서 새로운 시술을 환자에 적용할 때 동료평가라고 하는 엄중한 심사절차가 생략되었다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술이 처음 시작된 지 1년이 경과할 무렵 모두 열두 명이 A 케어를 받게 됩니다. 우루시하라원장은 A 케어를 받은 환자들이 활기가 넘치는 듯했으며, 기능면에서도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측정기구를 통하여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성과에 고무된 우루시하라원장은 의료는 과학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게 됩니다. “‘의학’이 과학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의료’는 과학이 아닙니다. ‘의학’은 과학적이 되면 될수록  ‘의료’에서 멀어져 갑니다. 즉 환자에게는 직접 관계없는 연구자의 취미가 되는 것입니다. (…) 애초에 의료는 과학인 척하는 것뿐이지 사기 같은 짓을 당당히 하고 있습니다.(190쪽)” 어쩌면 일본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불만을 담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가 A 케어 문제를 제기한 궁극적인 배경은 우루시하라 원장의 보고서 말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간호력은 자원입니다. 한정된 간호 자원을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도 ‘A 케어’ 같은 과감한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203쪽)” 바로 이 부분에 대하여 우리 역시 심각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되면 노인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급증하게 될 것이고, 의료자원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A 케어'의 후반부, 즉 이 책의 두 번째 주인공 야구라 슌타로 편집자가 앞서 우루시하라원장의 A 케어에 관한 글에 대한 주석형식의 글입니다. 슌타로씨는 우루시하라원장이 개발한 A 케어 시술의 뒷이야기에 해당하는 사건이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을 소설적 요소로 버무려서 읽는 이의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케어가 초고령사회에서 대두될 노인의료의 문제를 풀어줄 해답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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