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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아픈 기억만 골라서 지워드립니다”[미리안 브리핑]
▲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

평범하고 착한 남자 조엘과 화려하고 따듯한 여자 클레멘타인은 서로 다른 성격에 끌려 사귀게 되지만 성격차 때문에 점점 지쳐 간다. 어느 날 심한 말다툼을 한 후 인내가 한계에 이른 조엘은 급기야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社를 찾아가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줄거리다. 심리적 트라우마를 지닌 불행한 사람들이 신경과 치료를 통해 불편한 기억만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껏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판타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이 'Nature Neuroscience' 12월 22일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표적지향적 치료를 통해 우울증 환자의 특정 기억을 - 마치 부분세탁(spot-clean)으로 얼룩을 빼는 것처럼 - 제거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카린 네이더 박사(신경과학)는 "이번 연구는 매우 스마트하다. 때로는 과학이 예술보다 우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논평했다. 

네덜란드 네이메헌 라드바우드 대학교의 마린 크로스 교수(신경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전기경련요법(ECT: electroconvulsive therapy)을 적시에 사용할 경우, 불편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교란해 떠오르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ECT는 전기충격요법(electroshock therap)이라고도 불리며 두피에 부착한 전극판(electrode pads)을 이용해 뇌에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써 경련을 유발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때로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ECT는 중증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현재 마취 및 근육이완 요법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기억재강화 이론(memory reconsolidation theory)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억재강화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은 저장장치에서 인출되어 읽혀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뇌회로에 겹쳐쓰기(re-writing) 방식으로 되돌려진다"고 한다.

동물실험과 (제한적인) 임상시험에 따르면 "재강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기억은 변화에 매우 취약하며, 때로는 (심지어)삭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크로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중증 우울증으로 진단받아 ECT를 처방받은 환자 42명을 대상으로 재강화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해 보기로 결정했다.

연구진은 일차적으로, 환자들에게 두 편의 꺼림칙한 동영상(한 편은 자동차 사고 장면, 다른 한 편은 물리적 폭력이 행사되는 장면)을 보여줬다. 시간이 흐른 후 연구진은 환자들에게 두 편의 동영상 중 하나의 일부분을 보여주며 그 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는 그 틈을 타서 ECT를 이용해 환자들의 (취약하다고 믿어지는)기억을 공략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ECT 치료를 받은 지 하루가 지난 후 연구진이 객관식 문제로 기억력을 테스트해 본 결과, 환자들은 한 번만 시청했던 동영상은 잘 기억했지만, 두 번째로 시청했던 동영상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시청한 동영상에 대한 환자들의 기억력 점수는 동영상을 보지 않은 사람들의 점수와 거의 비슷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영상의 전체적인 내용은 환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ECT 치료를 받은 지 90분 후에 실시된 기억력 테스트에서 환자들은 두 번째로 시청했던 동영상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ECT가 기억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재강화 과정을 경시적(經時的)으로 차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마운트시나이 병원의 다니엘라 실러 박사(신경과학)는 "이번 연구는 `인간의 기억은 재강화 과정을 거치며, 타이밍 상으로 볼 때 안 좋은 기억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window of opportunity)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입증했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ECT의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오래되고 복잡한 기억들까지도 효과적으로 지울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보다 심층적인 후속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있어서 ECT는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는 기억 재강화를 표적으로 삼는 보다 덜 침습적인 치료방법(less invasive interventions)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아이디어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탐닉,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와 관련된 기억에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억들을 영구적으로 변경시킬 수 있다면 보다 향상된 새 치료법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www.nature.com/news/zapping-the-brain-can-help-to-spot-clean-nasty-memories-1.14431


[알립니다] 이 기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하는 미래기술정보 포털 미리안(http://mirian.kisti.re.kr)에 게재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본지는 KISTI와 미리안 홈페이지 내 GTB(Global Trends Briefing 글로벌동향브리핑) 컨텐츠 이용에 관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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