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료인력기준 개선 위한 법개정 논의 본격화
'입원환자당 근무 간호사수 기준' 의료법 개정 국민청원 상임위 회부

[라포르시안] 의료기관 내 적정 간호인력 배치를 골자로 하는 법정간호인력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선 ‘적정’에 대한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이 공동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공동주최한 ‘법정의료인력기준 개선과 불법의료기관 근절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앞서 지난 7월 6일부터 시작된 '의료법 상 간호사 정원 기준 개정에 관한 청원'과 '의료인 등의 정원 기준 위반 의료기관 실태조사 실시에 관한 청원'이 5만 명 이상 참여로 성립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료 질을 높이기 위해 현행 의료법 내 법정간호인력기준을 개선해 의료기관에 적정한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적정 인력’의 기준을 도출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제기됐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소속 김원일 활동가는 현행 의료법 내 법정간호인력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김원일 활동가는 “현행 의료법은 구체적인 위임범위 없이 의료기관 종류에 따른 의료인 등의 정원 규정을 행정입법으로 위임했다”며 “그러나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의료기관 종류에 따른 간호사 정원 기준이 불명확해 환자와 간호사를 비롯해 법을 준수해야 할 의료기관 뿐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국가조차도 그 내용을 이해하거나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간호사 정원을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 외래환자 12명을 1명으로 환산한다는 규정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간호사 중 입원환자나 외래환자에게 직접적으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간호사 모두를 포함해 간호사 정원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직접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사만을 정원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김 활동가는 보건복지위에 회부된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 개정 청원’과 ‘의료인 정원 기준 위반 의료기관 실태조사 실시 청원’이 기존 의료법의 한계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의료법 36조 5항은 ‘의료기관의 종류에 따른 의료인 등의 정원기준에 관한 사항’으로 돼 있으나, 국민동의청원은 같은 조항에 ‘간호사는 실제 입원환자당 근무 간호사 수를 기준으로 한다’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법정간호인력기준을 명확히 했다.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김원일 활동가.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김원일 활동가.

김원일 활동가는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법률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함으로써 의료와 간호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의료기관의 법률 준수 인식을 해이하게 한다”며 “국민, 간호사, 수범자인 의료기관과 법집행자인 국가가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을 쉽게 쉽게 이해하고,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법개정 앞서 의료자원 분배 둘러싼 사회적 합의도 필요"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도 안전한 근무환경과 환자 안전을 위해 법적 의료인력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감사는 “간호사 1인당 담당환자 최소 비율을 법제화해야 한다”라며 “이는 환자의 안전과 국민 건강을 위한 보건 의료인력의 최대 핵심 자원인 간호 인력의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탁 감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경우 99년에 중환자실 1대 2 비율로 간호사 담당 환자 필수 비율법을 모든 병동별로 제정하고 2005년부터 전면 적용했다”며 국민의 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간호사 1인당 근무당 최소 담당환자 비율 개선과 불법 근절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정인력기준을 어기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호서대학교 김종호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적정 간호인력 배치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병원 경영자와 의사들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사 의뢰나 고발까지도 해야 한다. 나아가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는 의료기관에게는 고용해야 할 간호사 임금의 3배 정도 패널티를 부과하는 등의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둬야 법정간호인력 기준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료인 등 정원기준 충족 여부는 의료기관의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실태조사와 결과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법정정원기준) 미준수 기관에 대한 패널티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의료기관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대로된 실태조사와 그 결과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져야 하며 부실, 난립하는 의료기관 관리를 유도하고 의료기관 기능재정립과 의료이용전달체계를 재정립해 안정적인 의료서비스가 체계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중장기적 실행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라포르시안 김상기 기자는 적정 의료인력 배치 문제를 의료자원과 건강보험 재정 활용의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상기 기자는 “건강보험에서 의료인이 제공하는 행위의 상대가치는 의료기관의 시설이나 장비보다 훨씬 낮게 측정돼 있다”며 “병원들이 수익적인 이유로 인력보다는 시설과 장비 등의 인프라 확보에 많은 자본을 투입하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 개정에 앞서 의료자원과 건강보험 재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가치 문제에 대해 깊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며 “그런 절차 없이 관련법 개정만 추진할 경우 입법 추진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갈등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박미라 과장은 “의료법상 의료기관의 의료인 정원 기준은 의료서비스를 직접 제공받는 환자의 건강과 안전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종사자분들의 근무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라며 “보건당국은 의료인력 기준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이미 관련 연구 용역을 직종별로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를 기준으로 하는 내용의 간호등급제 개편을 내년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라며 “인력 수급의 문제는 근무 환경이나 지역별 불균형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을 감안할 수 밖에 없다. 연구 용역 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안을 지속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간호인력 적정 배치기준 먼저 마련하는 것 필요"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적정 의료인력 배치의 법제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적정’의 기준 마련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간호협회 탁영란 감사는 “환자 중증도와 간호요구도에 따른 적정한 배치수준의 간호 인력을 보유해야 한다”며 “여기서 적정이라는 것은 환자들의 요구를 기준으로, 간호사가 전문적으로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의료적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보건의료노조 정재수 정책실장은 “어느 정도의 배치 수준이 돼야 하는 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적정) 기준에 대한 결정 없이는 논의가 거꾸로 가는 문제가 발생하고,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적정 간호인력 배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관점이었다”라며 “다시 기준을 만들고 적정 수준이 보장이 돼야 현재 수급 및 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

토론회 좌장을 맡은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적정 의료인력 비율(staffing ratio) 기준 마련이 쉽진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경험적으로 적정 수치를 정하고, 단계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적정 의료인력 비율 방법을 도출한 국가는 세계에서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staffing ratio의 기준 설정이 선행돼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 이를 도출해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일단 가상적이고 잠재적인 수치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그동안 논의했던 것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하면서 나중에 (적정 수치의)근거가 명확해지면 또 다시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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