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 서리풀 논평 - 정부도 의료 민영화는 반대한다는데…>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해야 할 때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다. 거듭 후퇴하는 이 정부가 걱정스럽다. 희망이 넘치는 가슴 부푼 새해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요즘 유행하는 대로 하면, 안녕하지 못하다.

솔직하게 병원과 약국의 영리화도 이제 그만 이야기하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철도 민영화도 의료 민영화만큼이나 중요하다. 당초에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두고 괜한 입씨름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리병원을 반대한다고 하면 ‘괴담’을 유포한다는 것이 이 정부의 대응이다. 지난 주 논평과 같은 주제지만 (바로가기), 다시 생각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지난 18일 보건복지부가 <다음 아고라>에 “대한민국 모두가 반대하는 의료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바로가기) . 보건복지부의 누리집 첫 페이지에도 실려 있다. 더더구나 다시 살펴봐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일단 정부가 민영화를 반대한다니 다행이기는 하다. 한편으론 어쩌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꼴이 이렇게 되었나 싶어 한심스럽다. 게다가 정부의 입장이란 것이 다시 한 번 문제를 비튼다. 알고도 그런 것이든 모르고 하는 것이든 마찬가지. 달을 가리키는데 자꾸 손가락을 설명하는 꼴이랄까.

정부는 아마도 의료 ‘민영화’를 이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고라와 누리집에 쓴 것을 그대로 옮긴다. “지금 다니시는 병원도 그대로, 진료 받고 내시는 돈도 그대로, 건강보험이 드리는 도움도 그대로,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국가가 운영하고 책임지는 건강보험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해하도록 쉽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봐도 정부가 이해하는 민영화는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다. 다른 것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 “민영화 = 건강보험 포기”의 틀을 고집할 참이다.

설마 일부러 이러나 싶지만, 공적 의료보장인 건강보험을 팔아넘기는 것도 민영화가 맞긴 하다. 말이 나온 김에 솔직해지자. 이렇게 좁게 그리고 비틀어서 민영화를 이해하더라도 그것을 반대한다는 정부의 태도는 조금 뜬금없다. 아니면 드디어 민영화 노선을 포기한 것인가. 건강보험을 아예 없애자고 한 정부는 없지만, 민간보험의 역할을 ‘확대’하자는 것은 정부, 그 중에서도 경제부처의 숙원이 아니었던가.

민간 의료보험의 활성화는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아주 오래된 소신이기도 하다. 1999년 7월 15일, 당시의 기획예산처가 주최한 ‘생산적 복지 분야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이가 현재의 장관이다. 그가 발표한 주요 분야별 정책과제에는 ‘사회보험제도의 개혁’이란 항목이 들어있다(안타깝게도 원문은 구하기 어렵다.(정부의 보도자료 바로가기). 방향이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로다. 두 가지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민간의료보험시장 활성화”이다.

사회보험 항목에 들어 있으니 설마 일반적인 민간보험 정책이었다고는 못하리라. 그렇다고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니 그 사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개인 연구자로서 갖는 의견과 장관이 가지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소신을 가진 이가 장관 자리에 있으니 정부를 의심하는 것은 그야말로 ‘합리적’이다. 게다가 우리도 민영화(건강보험 민영화를 뜻한다)를 반대한다는 정부 부처가 보건복지부라니.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정치 경험과 학습이 충분하고도 남는다.

건강보험만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시민 대부분이 반대한다는 민영화를 (거의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문제가 더 크다. 민영화를 반대한다고 할 때 그 민영화가 엄격한 ‘학술적’ 개념에서 출발했을 리 없다. 여론과 의견은 학술 토론이나 논문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민영화를 걱정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의료기관들이 제대로 된 진료보다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는 것, 그러다 보면 진료비는 오르고 보험료도 더 내야 하는 것, 비용 부담이 커지고 때로는 치료를 줄이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 시민이 민영화를 이해하고 규정하는 것, 바로 ‘시민적’ 정의이다.

▲ 의료민영화에 관한 우려를 다룬 양영순 만화가의 작품 중 일부.

시민이 말하는 민영화는 미래의 고통과 피폐를 걱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맞다. 심지어 무슨 수술이 몇 천만 원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맥락 없는 정보나 지식으로 치면 부정확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대중이 반응하고자 하는 것은 또 다른 ‘사실’이다.

그러니 학술적으로, ‘엄격하게’ 말해, 민영화란 표현이 틀렸다고 함부로 단정할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전문주의 또는 그것을 근거로 삼아 대중을 배제하는 권력은 늘 이런 식이다. 근거와 사실, 정확성을 내세우면서 가르치려 할 때 주의해야 한다. 

내친 김에 민영화의 엄격한 정의(학술적 정의)도 짚고 넘어가자. 정부가 소유권을 민간에 넘기는 것이 민영화의 가장 대표적 방식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민영화는 하나의 스펙트럼을 이루는 것으로, ‘강성’ 민영화와 ‘연성’ 민영화를 모두 포함한다. 그 스펙트럼 위에 수많은 변종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식 민영화, 경상남도식 민영화, 철도의 민영화, 의료의 민영화가 다 가능하다.

민영화의 의미가 매우 다양하고 또 넓은 것(때로 혼란스러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미 KT나 KT&G를 매각한 것도 민영화지만, 정부 기관이 구내식당을 민간에 위탁해서 운영하는 것도 ‘소박한’ 의미의 민영화다. 

요약하자. 사회 구성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 국가(공공)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시장)의 역할을 키우는 모든 시도를 민영화로 정의하는 것이 정확하다(혹스워스와 코건 엮음. <정부와 정치 사전> 제2권. 영국 룰릿지 출판사, 1992년, 821-2쪽).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의료 민영화란 표현은 학술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백 걸음을 양보해도, 정부가 하고 싶은 것이 결국 “국가의 역할은 더 작게, 민간과 시장은 더 크게” 아니던가. 결국 민영화의 큰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모두가 걱정하는 것을 애써 피해 건강보험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다짐은 동문서답에 가깝다.

민영화냐 아니냐를 빼더라도, 다른 설명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들어도 지난 주 논평에서 제기한 걱정을 그만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정부의 ‘해명’은 점점 더 헛갈린다. 영리인 자(子)법인이 모법인의 경영 상태를 좋게 하고 인술에 더 충실하게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영리 목적의 자법인이 돈을 벌어서 적자에 허덕이는 모법인(병원)을 먹여 살린다는 뜻인가 보다. 이 정도면 자본주의와 시장의 법칙을 다시 써야 할 정도다. 현실적으로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한 가지 더, 정부는 영리법인을 규제하는 무슨 제한과 지침, 감독을 강조한다. 믿어달라고 심정에 호소하는 것도 더 잦다. 그러나 정부와 행정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비영리법인인 학교나 병원이 음성적으로 매매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이 정도도 관리하지 못한다. 몇 안 되는 재벌의 전횡과 탈법조차 찾지 못하는 것이 실력이자 의지다. 하물며 의료법인이 만든 자법인의 남용 방지와 투명성이 가당키나 한 목표인가. 

정부가 생각을 바꾸는 것, 아니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민이 말하는 민영화를 잘못 이해한 정부가 건강보험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영리화가 끝없이 진행되면 이조차 장담할 수 없다. 영리인 자법인, 그리고 이에 따라 ‘사실상’ 영리병원이 되면 의료비가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영리가 돈을 더 버는 것이라면(부인할 수 없는 진실!), 그 돈은 환자와 건강보험이 대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비용 증가에 전전긍긍하는 건강보험에 영리화의 비용 폭탄까지 더해지면? 결코 괴담 시나리오가 아니다. 영리 병원의 확대와 영리화의 심화, 그리고 민영화의 진전이 몰고 올 두려운 미래 예측이다.

영리 병원만 계속 시빗거리로 삼는 것은 그것이 대표 격이기 때문이다. 사실 같이 발표한 여러 정책이 가진 문제도 만만치 않다. 영리병원이란 강물에 그냥 떠밀려갈까 걱정스럽다. 그래서 문제는 다시, 하나하나의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니라 민영화와 영리화라는 정책 기조다. 

정부에 간곡하게 요청한다. 극소수를 위한 영리화, 민영화의 정책 기조를 버리고 모두를 위한 공공성 강화 정책으로 전환하기를 바란다. 인간적인 국가, 공정한 정부, 윤리적인 정책이 당장 할 일은 그것 빼고는 없다.  서리플 논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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