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입원환자당 근무 간호사 수'로 정원 기준 개정 국민동의청원
인력기준 어긴 의료기관 실태조사와 처벌 강화 요구
"복잡하고 실효성 없는 간호사 정원 기준 바꿔야"

간호사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포스터. 출처: 보건복지부
간호사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포스터. 출처: 보건복지부

[라포르시안] 병원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도 아니다. 마치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병원이 돌아가는 게 정상이라는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다.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상태에서 숙련도 높은 경력직 간호사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된 업무를 견디다 못해 병원을 떠나기 일쑤다. 경력직 간호사가 빠져나간 자리는 저연차의 신규 간호사로 대체한다. 간호업무 숙련도가 떨어지는 신규 간호사로 인해 업무부담이 늘어난 선배 간호사들의 '태움'과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이런 상황은 다시 신규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게 만들고 인력난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의료현장에 있는 간호사들은 "사직서를 내는 게 간호사의 꿈이 됐고, 병원에 남는 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생계형 간호사'뿐"이라고 자조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동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평균 환자수는 16.3명이다. 평균이 그 정도이고 실제로는 간호사 1명이 환자 30~40명을 돌보는 병원도 적지 않다. 미국(5.3명)이나 스위스(7.9명), 영국(8.6명) 등에서 간호사 1명당 평균 환자수와 비교하면 터무니 없다.  

간호인력 부족 상태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다.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수가 많아질수록 과다한 업무부담과 시간적 압박 때문에 환자상태 확인, 약물투여, 검사와 수술준비, 환자기록 등 필수적인 업무 처리조차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간호인력이 제공하지 못하는 간호 서비스는 환자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떠넘겨진다. 국내 의료기관에선 이런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의료기관 10곳 중 3곳은 간호사 법정 정원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간호사 법정 정원 기준을 미준수한 의료기관이 7,147개소에 달했다. 2021년 4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30.3%가 정원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의료기관 종별로 준수율 격차가 컸다. 상급종합병원은 미준수 의료기관이 한 곳도 없었지만 병원급(30~99병상)은 53.3%,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은 11.6%가 간호사 정원 기준을 어겼다. 

의료법 상에는 의료인 정원 기준 위반 시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최근 7년간 간호사 정원 기준을 지키지 않은 의료기관에 내려진 행정처분은 150건에 그쳤다. 처벌 수준도 과태료 처분 정도에 그쳐 의료인 정원 기준이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 돼버렸다.  

간호인력 문제를 개선하려면 의료법에 간호인력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어기는 의료기관에 대해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간호법' 제정보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가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의료기관 둬야 하는 간호사 정원을 실제 입원환자당 근무 간호사 수로 바꾸고, 의료인 등의 정원 기준을 위반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하는 의료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이하 간호돌봄 시민행동)은 지난 7월부터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 개정 ▲의료인 등의 정원기준 위반 의료기관 실태조사 실시 관련해 5만명 이상 참여로 국민동의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기준 개정에 관한 청원은 의료기관에 둬야 하는 간호사 정원을 실제 입원환자당 근무 간호사 수로 개정하는 내용이다. 

현행 의료법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간호사 정원을 '연평균 1일 입원 환 자를 2.5명으로 나눈 수, 외래 환자 12명은 입원 환자 1명으로 환산'으로 명시했다. 

이를 근거로 의료기관의 간호사 정원 기준을 파악하려면 '연평균 1일 입원환자 수', '외래환자 수' 및 '재직 중인 간호사 수'를 복잡하게 따져야 한다. 게다가 간호사 수에는 환자를 직접 돌보지 않는 행정간호사와 수간호사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를 따져보기가 어렵다. 

국회에 제출된 국민동의청원은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 개정을 '실제 입원환자당 근무 간호사 수'로 개정 입법해야 한다는 요청을 담았다. 

의료기관 실태조사 청원은 의료법상 의료인 등의 정원기준을 위반한 의료기관은 불법개설의료기관에 대한 법적 조치와 같이 실태조사, 처벌수위, 위반 의료기관에 대한 공표를 동일하게 규정할 것을 담고 있다. 

국민동의청원을 추진한 간호돌봄 시민행동은 "현행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이 두어야 하는 간호사 정원 기준은 일반인이 전혀 알 수 없는 의료기관 내부 정보로 구성돼 있어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법률의 명확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이 같은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은 의료기관의 법률 준수 인식을 해이하게 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료기관 관리책임 의무를 방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 조문으로 개정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7월에는 ‘환자안전과 간호인력기준 법제화를 위한 시민행동(약칭 간호인력기준 법제화 시민행동)’이 출범하고 간호인력기준을 명시하고 있는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국민동의청원 10만명을 달성해 국회에 제출된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인력 수급 종합계획과 임금 결정 등의 내용과 함께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최저 인력 배치기준을 명시해 놓은 게 핵심이다.  일반병동, 중환자실, 외상응급실, 수술실. 신생아 집중치료실 등 근무 장소에 따라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인력 최저 배치기준을 명시했다. 중환자실은 '환자 2인당 간호사 1인 이상', 외상 응급실은 '환자 1인당 간호사 1인' 같은 식으로.

시민행동은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으로 간호사가 담당할 수 있는 적정 환자수를 법으로 정해야 병원에서 근무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촉구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과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주최로 오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법정의료인력기준 개선과 불법의료기관 근절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국회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법정의료인력기준 개선에 대한 논의가 더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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