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공적 분노’의 정동 정치를 통해 젠더 폭력을 근절하자

[라포르시안] 지난 수요일 저녁,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근무 중이던 여성 역무원이 직장 동료였던 스토킹 가해자에게 살해당하는 비통한 사건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고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동료 시민으로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사건의 내막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넘어 통분함을 느끼고 있다. 법원이 애초에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경찰이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철저히 했다면, 아니면 최소한 서울교통공사가 스토킹으로 직위해제된 가해자를 피해자의 근무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더라면 이렇게 허망하게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인 듯 사건 다음 날 법무부 장관이 홀로 신당역을 방문하여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한 책임감’을 언급한 이후 정부는 서둘러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역시 계속 미뤄오던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소관 상위임원회에 상정했다. 우리는 왜 누군가 죽어야만, 정확히는 그 죽음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만 비로소 뒤늦게 이런 대응에 나서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이 여론무마용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길 한사코 거부하는 여성가족부장관의 발언과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한 서울시의원의 한심스런 발언(☞ 바로가기)은 정치권 대응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사건은 명백히 젠더 불평등 구조에 기인한 폭력이며 페미사이드(여성살해) 사건이다. 우리는 불과 두 달 전 있었던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과 똑같이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억압하는 젠더 불평등 구조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판단한다(☞지난 논평 바로가기). 이것이 아니라면 남성에게 관대한 사법체계의 편향성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토킹과 불법촬영 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된 가해자에 대한 구속 영장을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와 도주 우려가 없다”라며 기각했다고 한다. 가해자가 과거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이력이 참작되었을 거라고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남성 피의자에 우호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정작 스토킹 범죄가 강력 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사실은 간과한 것이다. 

이처럼 가해 남성에게 더 크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 사법기관의 태도는 케이트 만이 <남성특권>(오월의 봄, 2021)에서 말한 ‘힘패시(himpathy=him+sympathy)’의 전형적 사례로 볼 수 있다. 

‘힘패시’와 같이 여성에게 불리하고 차별적인 사회문화적 지형은 불평등한 젠더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이다. 권력 불평등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일부 법과 제도를 수정하는 것만으로는 젠더 폭력을 근절하기 어려운 이유다. 법과 제도뿐 만 아니라 규범과 규칙, 가치 등을 포괄하는 젠더 레짐(regime)을 평등한 방향으로 바꿔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여성혐오와 차별의 ‘구조’를 부정해 왔던 남성 기득권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거짓되고 무책임한 비윤리적 선동이었는지 또다시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늘 그랬듯 이번에도 어떻게 해서든 한 개인의 병리적 일탈 문제로 축소 환원하며 구조적 본질을 덮으려고 하는 안티-페미니즘 정치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살릴 수 있었던 또 한 여성의 죽음 앞에 더 깊게 애도하며 이러한 반동적 시도에 단호히 맞설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애도와 추모를 넘어 더 크고, 더 오래 분노할 것을 제안한다. 

분노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 우리가 절망하고 무기력해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만, 동시에 이것은 공적 분노(public indignation)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진다. 소라야 시멀리가 말했듯 분노는 부정의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촉매제’로 활용될 수 있다(<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2022년, 문학동네). 

여성을 억압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젠더 불평등 구조는 그 자체로 사회 공동체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파괴하는 힘, 그래서 사회권력의 힘으로 또다시 파괴해야 하는 힘이다. 이 힘을 파괴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 공동체의 역량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과정이다. 또한 이는 애도라는 슬픔의 정동이 분노를 통하여 희망이라는 기쁨의 정동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치적 분노에 담긴 정동 에너지를 연대를 통하여 극대화해야 한다. 그 에너지가 커질수록 불평등 구조를 타파할 희망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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