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료원, 도입 취지와 달리 인건비 절감 등 경영개선에 집중
근무하던 의사가 지원해 '공공임상교수'로 파견
공공임상교수 파견된 진료과는 기존 의료진과 재계약 거부

[라포르시안]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의료인력난 해소와 지역 내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도입하는 ‘공공임상교수제도’가 그 취지와 달리 지방의료원 경영 개선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 4월 교육부는 지역별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국립대병원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국립대병원공공임상교수제 시범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공공임상교수는 국립대병원 소속의 정년보장 정규의사로 소속 병원,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등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필수의료 및 수련교육 등을 담당하는 의사인력이다.

공공임상교수제 시범사업 기본계획에 따르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이 150여 명의 공공임상교수를 선발해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및 적십자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한다. 6개월 동안 총 187억 5,000만원(국고 93억 7,500만원, 공공의료기관 93억 7,500만원)이 투입된다. <관련 기사: 7월부터 지방의료원 등에 '공공임상교수' 배치...150명 규모>

극심한 인사인력 구인난에 시달리는 지방의료원들은 공공임상교수제를 의료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방의료원에서는 의료원에 근무 중인 의사가 공공임상교수에 지원해 해당 의료원에 그대로 근무하는가 하면, 공공임상교수를 뽑으면서 기존에 근무하고 있던 다른 의사와의 재계약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라포르시안은 최근 속초의료원 직원이라는 독자로부터 한 통의 제보메일을 받았다. 제보자는 현재 속초의료원이 공공임상교수제를 제도의 취지와 달리 의사 인건비 보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속초의료원(원장 용왕식)은 강원대병원에 소화기내과 1명, 정형외과 1명, 이비인후과 1명의 공공임상교수 지원을 요청했고, 실제로 지난 1일부터 내과(1명), 정형외과(1명) 등 2개과에서 총 2명의 공공임상교수가 근무를 시작했다.

속초의료원 전경. 오른쪽에 정형외과 공공임상교수 초빙 관련 플랜카드가 게시돼 있다.
속초의료원 전경. 오른쪽에 정형외과 공공임상교수 초빙 관련 플랜카드가 게시돼 있다.

기자는 지난 13일 속초의료원을 방문해 공공임상교수제 운영 상황 등을 직접 확인했다. 속초의료원 입구에는 ‘3정형외과 진료개시, ○○○ 강원대학교병원 공공임상교수 초빙’이라는 플랜카드가 붙어있었다. 그러나 소화기내과 공공임상교수를 초빙했다는 플랜카드는 없었다.

기자는 제보 내용과 관련이 있는 정형외과 A과장을 만나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A과장은 “정형외과에 새로 온 공공임상교수는 강원대병원이 채용해서 파견했지만, 소화기내과에 배치된 공공임상교수는 기존부터 의료원에 근무 중인 내과 과장”이라며 “의료원에서 공공임상교수를 요청한 가장 큰 이유는 의료인력의 확보를 통한 지역 필수의료서비스의 강화일텐데 근무하고 있는 의사를 공공임상교수로 임명한 것은 병원으로서는 인건비 확보, 해당 의사는 교수 직함을 통한 신분 보장의 효과 밖에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결국, 속초의료원은 새 공공임상교수 초빙이 아닌 기존 그대로 내과 과장 3명이 진료를 하고 있으며, 그 중 1명의 신분이 공공임상교수로 바뀌었을 뿐이다.   

공공임상교수가 파견된 정형외과 상황은 더 황당했다. 

A과장은 “기존 속초의료원 정형외과는 2명의 전문의가 있었고 환자 수로 볼 때도 2명이 적당한 수준”이라며 “다만 2명의 정형외과 과장 모두 관절 분야에 전문성이 있었던 만큼, 척추 진료에 대한 미충족 요구가 존재했고 속초의료원 원장도 이야기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정형외과로 파견된 공공임상교수가 척추세부전무의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관절을 주로 진료하던 의사가 오게 된 것. 실제로 속초의료원 정형외과 공공임상교수는 최근까지 서울 소재 개인병원 관절센터에서 근무한 바 있다. 결국 속초의료원에는 관절을 세부전문으로 하는 정형외과 의사만 3명이 된 상황이다. 

속초의료원 정형외과 이 모 과장. 본인의 요청에 따라 블라인드 처리함.
속초의료원 정형외과 이 모 과장. 본인의 요청에 따라 블라인드 처리함.

가장 큰 문제는 정형외과에 공공임상교수가 파견되면서 의료원이 기존에 근무하던 기존 의사와 계약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 지역 공공의료 강화 '공공임상교수 배치' 사업 성공하려면?>

지방의료원 의사는 1년 계약직으로 매년 계약서를 갱신한다. 계약서 상에는 의사가 근무를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 후임을 뽑아 의료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달 전에 미리 퇴직을 고지하고, 의료원 측에서는 계약 만료 시점 한 달 전에 재계약 여부를 통보하게 돼 있다.

A과장의 1년 계약 만료시점은 올해 9월 30일까지였다. 계약서대로라면 의료원이 이 모 과장과의 재계약을 거부하려면 8월 말에 통보해야 했다.

A과장은 “지난 7일 오전 원장으로부터 ‘오전 중 시간 될 때 만났으면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며 "속초의료원장은 계약기간 만료 1달전에 재계약 여부를 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형외과 공공임상교수가 진료를 시작한 지난 1일부터 6일이 지나서야 개인면담을 하자고 요청한 자리에서 '속초의료원 경영상 정형외과 3인 체제는 어렵다, 문제가 있어서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병원 경영이 계속 적자가 나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강원대병원의 공공임상교수 초빙 공고에 따르면 속초의료원 내과는 기본 연봉 2억6,000만원에 매월 진료성과급, 정형외과는 2억9,500만원에 매월 진료성과급을 제시했다. 이는 현재 속초의료원 해당 진료과 의료진의 임금과 동일하는 것이 A과장의 설명이다.

강원대병원의 공공임상교수제 초빙 공고.
강원대병원의 공공임상교수제 초빙 공고.

A과장은 “공공임상교수제는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간 우수한 의사인력을 연계해 지역의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의료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본래 취지”라며 “속초의료원의 공공임상교수제는 경영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지방의료원 의료인력이 (공공임상교수로) 신분만 바꾸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요식행위와 국고 지원을 받는 공공임상교수를 채용하면서 지금까지 근무하던 의사를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내보내는 것이 공공임상교수제 취지인가”라며 “이런 식이면 다른 진료과도 (공공임상교수제를 이용해) 의사를 물갈이해서 내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의료원에 근무 중인 의사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또다른 의료원 관계자 역시 공공임상교수제가 당초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의료원 모 관계자는 “기존에 의료원에 있던 의사가 공공임상교수에 지원하면 의료원 입장에서는 의료인력이 플러스가 아니라 똑같아지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의료원이 그 의사에게 지원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라며 “공공임상교수제 취지하고는 조금 맞지 않는다. 아직은 제도가 초반이기도 하고 여러 문제점도 많이 있기 때문에 이를 증명하는데 의료원 입장에서 애로사항이 있다”고 했다.

기자는 속초의료원 용왕식 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업무일정 상 만나지 못하고 지난 14일 전화 통화를 통해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관련 기사: [in-터뷰] “공공임상교수제 실패하면 지방의료원 의사부족 해법 없어”>

속초의료원 용왕식 원장. 속초의료원 홈페이지 갈무리.
속초의료원 용왕식 원장. 속초의료원 홈페이지 갈무리.

용왕식 속초의료원장은 기존 내과 과장이 공공임상교수에 지원한 것과 관련해 “(공공임상교수가 되면) 형식적으로는 강원대병원 교수”라며 “의료원에 있는 의사 중 신분의 변화 등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 한 명이 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원장이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형외과 공공임상교수 초빙 후 기존 정형외과 과장과의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용 원장은 “속초의료원은 척추세부전문의가 필요했는데 강원대병원의 면접을 거친 공공임상교수의 이력을 받아보니 기존 정형외과 과장과 마찬가지로 관절 쪽이라 진료영역이 겹치게 됐다”며 “현재 속초의료원 상황으로는 정형외과가 3명 체제로 가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존 정형외과 과장 중 한 명의 연봉이 약 3억원 정도다. 그분에게 그동안 여러 기여를 해줬지만 9월 말이 계약 만료인만큼 재계약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라며 “당사자가 (계약 만료일로부터)한달 정도 배려를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하면서 일단락이 됐다”고 전했다.

정형외과 공공임상교수 초빙과 현재 정형외과에 근무하는 의사와의 재계약 불발은 우연이 아니라는 입장도 밝혔다.

용 원장은 “일련 과정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 의사의 계약 만료와 새 의사의 초빙 등 의사 수급은 예측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경영적인 부분과도 연계해야 한다. 경영자 입장에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이 호전된다면 여러 부분을 끌어안고 갈 수 있겠지만 경영자한테 모든 책임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경영 적자가 누적되면 고민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공공임상교수제가 지방의료원의 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용 원장은 “지방의료원 의료인력 부족의 유일한 대안은 공공임상교수제라고 생각한다”라며 “공공임상교수제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지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임금과 신분 등 제도와 관련한 사항을 법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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