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식약처 의료기기위원회 공동위원장·고대의대 명예교수)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시대 건강 이슈는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기존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국방고등연구계획국) 프로젝트의 성공 DNA를 보건의료분야에 적용하는 ‘ARPA-H’(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for Health)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미 영국(ARIA) 독일 (SPRIN-D) 일본(Moonshot) 등 선도국가들은 유사한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한국 또한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앞서 이번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언급됐기에 기대가 크다. 그렇다면 한국형 ARPA-H는 미국과 어느 부분이 유사하고 달라야 할까.

ARPA-H 사업의 기본개념은 미션 지향적 혁신모델 구축이다. 이때 지향하는 미션은 어디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타깃은 실패 위험성이 커서 민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요 질병을 대상으로 하는 ‘High Risk High Reward 프로젝트’이고, 그 결과물은 건강 불평등을 극복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혁신모델 구축이다. 얼마 전 개최된 서울바이오이코노미 포럼에는 미국 ARPA-H 사업과 일본 Moonshot 책임자가 모두 참가해 자국 사업을 소개했다.

면면을 살펴보면 미국 ARPA-H 사업 입안자인 Welcome Leap의 Dr. Regina Dugan, NIH 부원장 Dr. Tara Schwetz, ARPA-H 사업추진 책임자 Dr. Adam Russel, 일본 AMED Moonshot 프로그램 PM인 Dr. Nakanishi Makoto 등이다. 이런 거물들이 한국형 ARPA-H 사업에 관심을 갖고 달려온 것을 보면서 새삼 한국의 위상과 역량이 신장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들과 국내 전문가들이 참여한 라운드 테이블 미팅에서는 선도국가 사례에서 무엇을 배우고 주목해야 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질의와 응답이 있었다. 특히 논의 대상이 된 주요 이슈는 ARPA-H 사업이 기존 DARPA 사업에서 벤치마킹하는 주요 요소와 함께 차별적인 설계 요소, 성공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 임무를 선정하는 과정, 결과 확산 방안, 국가 간 글로벌 협력방안 등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업 자율성과 독립성이었다. 관련해 미국 측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옹호하는 문화라고 단언했다. 다시 말해 미국 제도와 예산 및 직제를 벤치마킹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국가가 사업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실패를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결국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ARPA-H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할 공간과 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사업 책임자는 성공 경험과 함께 소통 스킬과 대외적으로 기관을 옹호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부 또한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업 책임자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현재 ARPA-H 사업추진 책임자인 Dr. Adam Russel은 인류학자이면서 인문사회를 전공한 전문가다. 만일 한국이라면 힘 있는 정치인이 사업 책임자가 됐을 것 같다. 이러한 논의를 바라보면서 느낀 점은 미국의 ARPA-H를 포함한 다양한 DARPA형 사업이 미국 사회의 프론티어십을 바탕으로 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ial spirit)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 같은 동양의 관료주의(Bureaucracy)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처럼 바이오헬스산업 소관이 여러 부처에 분산돼 파편화돼 있고 부처 간 칸막이이 현상이 심한 경우는 더욱 어렵다. 일본이 AMED 사업을 통해 기능적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때 과연 한국의 대안은 무엇일까. 결국 한국형 ARPA-H 사업 성공은 지향하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맞는 혁신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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