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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원격의료’라 적고 ‘녹색성장-4대강 사업’이라 부른다[황진미의 라뽀&르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의사, 약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보건의료노조, 시민단체 등이 모두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어떤 사안을 정부가 밀어붙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환영의사를 밝히고, 경제신문과 주식동호회에서는 정부의 의지를 재차 확인하면서 수혜 업종의 주가가 연초대비 20% 상승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IT 업종에서는 ‘모바일 의료’를 포스트-스마트폰 시장의 유망한 미래 산업으로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좀처럼 같은 편이 되기 힘들어 보였던 의료계, 노동계, 시민단체가 한 목소리를 내고 가운데 ‘의료인-노동자-시민’ 대 ‘정부-재계’ 사이에 전선이 그어진 셈이다.

사안이 무엇이든 구도가 참 볼썽사납다. 공급자와 소비자 전체가 반대하는 어떤 사안을 정부가 노골적으로 재계의 편을 들어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는 모양세인데, 그게 대체 무슨 사안일까.

▲ 의사협회를 비롯해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간호협회, 보건의료노조 등 6개 보건의료단체는 지난 11월 27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원격의료 허용 중단, 영리병원 도입 반대’를 주제로 공동기자회견을 했

▲ 소위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원격의료

정부는 현행의료법 상 의사와 의료인 간에만 허용되는 원격의료를 의사와 환자 간에도 가능하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이다. 11월 29일까지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 기간을 거친 뒤, 이후 입법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수 살리기와 신성장동력, 일자리 창출을 위해 원격의료의 활성화를 주문한데 이어, 지난 4월에는 기획재경부가 원격의료 추진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지난 10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송 생명과학단지 입주업체 대표들에게 의료기기와 원격의료 의료관광 보건의료 산업이 서로 연계되어 융합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12월에 발표될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의료분야의 규제완화가 포함될 것이라고 예고한 뒤 원격의료를 위한 입법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소위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시장창출과 규제개혁의 입장에서 접근하며, ‘청와대 → 기획재경부 → 보건복지부’를 축으로 하는 ‘위에서 아래로’ 방식으로 정책이 강행되고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안은 지난 2010년 18대 국회에 제출되었다가, 제대로된 논의 없이 폐기된 바 있다. 복지부는 당시 폐기되었던 법안이 모든 병의원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해 대형병원으로 쏠림현상이 우려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 개정안은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한 원격의료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고,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의 보완제로 활용될 뿐 전체 의료의 골간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2010년 폐기안이 주로 재진을 위한 것이었던데 비해, 이번 개정안은 초진의 경우에도 원격의료를 폭넓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오히려 증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첫째,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이나 도서 벽지 주민들의 초·재진을 동네의원에서 원격의료하는 것을 허용한다. 둘째,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의 재진을 동네의원에서 원격의료하는 것을 허용하고, 셋째, 군대나 교도소 등 특수지 환자의 초·재진과 수술 후 퇴원환자의 재진을 병의원에서 원격의료하는 것을 허용한다. 넷째,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의 초·재진을 병의원에서 원격의료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노인, 장애인, 도서벽지 환자들의 접근성 높인다?

복지부가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에는 이러한 원격의료의 허용이 국민의 편의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의 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을 지닌다고 되어 있다. 국민들에게 의료의 접근성을 높여 상시적인 관리를 통해 치료성을 향상시키며, 국민의 편의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만한 편의가 존재 하는가?

정부는 원격의료가 필요한 이유로 의료접근성 향상을 거론하지만 일차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원격의료를 실시하고 있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비해 임상의사의 밀도가 약 100배로 높고, OECD국가 중 국민들의 외래 방문률 1위인 나라이다. 하지만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도서 벽지 주민’의 의료 접근성은 여전히 낮지 않냐고?

맞다. 이 분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분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원격의료가 추진되어야 할까 싶다. 원격의료는 환자와 의사가 장비를 구입하고 직접 작동하여 진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인, 장애인, 도서벽지 주민들에게 장비의 구입과 직접 작동이 과연 쉬운 일일까?

보통 장비의 가격이 150만원에서 35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창준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장은 지난 11월 27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고가의 장비를 따로 구입하는 것 보다는 스마트 폰 등 간단한 장비를 이용한 원격 진료”를 유난히 강조하였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률이 전국 100%인 것도 아닌 마당에 이런 말도 무색하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정부가 스마트 폰 등 장비를 지원하고 이용방법을 교육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정부의 보건예산을 환자가 의사를 직접 만나서 온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고작 반쪽짜리에도 못 미치는 원격의료를 위한 장비구입에 써야 할까? 정책의 수혜가 의료소외계층의 환자보다 장비 업체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는 공연한 것인가?

물론 도서 벽지의 주민들은 의사를 직접 만나 진료를 받는 것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이 분들은 원격의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가령 시범사업 중인 경북 영양군 용화보건진료소에서 담당 간호사가 혈당과 혈압을 잰 뒤 원격의료시스템에 입력을 하고 안동의료원에 있는 의사와 환자 간의 화상연결을 시켜주어 진료를 받게 하는 서비스는 환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런데 이것은 현행 의료법 34조 1항의 의사-의료인간의 원격의료로 굳이 의료법을 바꾸지 않아도 가능하다.

오지에 사는 환자가 보건지소에 나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원격의료를 받는 것이 현행법상으로 가능한데, 굳이 법을 바꾸어 환자가 집에서 혼자 원격진료를 받도록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분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방 구석구석까지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보건지소와 보건소 간의 긴밀한 연락체계를 비롯하여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하고 방문 간호 사업을 늘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정부는 이러한 사업을 하지 않고, 고작 기계를 통해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여 문진과 시진만으로 불완전한 진료를 진행하는 원격의료가 의료소외계층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심지어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것이라 주장하면서 원격의료 인프라 구축에 돈을 쏟아 붓고 장비 업체 배불리는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이나 도서벽지 환자들에게 불완전한 원격의료를 통해 처방전을 발행하면, 그분들의 조제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보호자가 약국에 방문하여 조제를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이라면, 이 보호자들이 환자의 외래 방문을 도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의 방향이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에게 약국 방문이나 대리조제를 돕는 서비스를 제공할 요량이면 그 서비스를 확대하여 환자가 외래에 올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만약 원격으로 발행한 처방전에 따라 약사의 도움 없이 자가 투약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약사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일이다. 원격 진료가 허용되면 결국 조제와 투약을 둘러싼 문제들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책과 시장의 방향은 궁극적으로 처방전 발행과 동시에 인터넷으로 조제가 가능하고 택배를 통해 약을 받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쪽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현재의 약국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 될 것인데, 이점에 대해서 복지부는 유난히 말을 아끼는 모양새이다.

▲ 만성질환자 재진은 '처방전 자판기'

정부는 또한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의 재진을 원격의료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상시적인 관리 효과를 높인다고 말한다. 만성질환자의 상시적인 관리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굳이 원격의료가 허용되어야 할까. 혈당이나 혈압의 상시적인 관리를 위해서 굳이 고가의 전자통신장비를 이용해 측정된 수치를 의사에게 전송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환자에게 혈당이나 혈압을 기록할 용지를 나누어 주고, 비교적 저렴한 자가 측정 기구를 이용하여 측정값을 기록하게 한 다음, 위험값을 넘을 시에 내원하도록 하거나 정기적인 내원 때 기록한 용지를 보는 것으로 상시적인 관리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IT기술시대에 여유가 있는 환자라면 원격의료기기로 혈당이나 혈압을 측정하여 병원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의사-환자간 모니터링’에 해당되어 현행 의료법상 명시적인 규정은 없으나 법률해석상 가능한 행위이다. 다만 진단과 처방은 불가능한데, 의료법을 개정하여 진단과 처방까지 가능해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즉 굳이 법을 개정하려는 이유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자들이 동일한 약을 처방받기 위하여 내원하는 일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만성질환자의 외래진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드러나 있다. 정부는 만성질환자들의 외래진료를 단지 처방전을 받기 위해 방문하는 불필요한 요식행위로 보고 있다. 만성질환의 제대로 된 관리를 위해서는 환자의 교육을 통해 운동이나 식습관 등 환자의 생활습관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고가의 장비를 통한 혈당과 혈압 수치의 전송보다 수 천배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의 진료실에서 환자교육이나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상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3분 진료로 처방전만 재발행하는 요식행위로 전락한 경우도 많으며, 보호자에 의한 처방전 대리발급도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저수가로 인해 환자수를 늘려 박리다매식 의료가 조장되고 있는데다 행위별 수가제에서 환자상담에 관한 수가가 거의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이러한 왜곡된 진료환경을 기정사실화 한 채, “어차피 3분 진료에 처방전만 받아가는 재진 진료, 공연히 왔다 갔다 차비 쓸 것 없이 원격으로 처방전만 받을 수 있으면 더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저 속내를 ‘환자들의 편의성 증진’이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한다. 차마 자신들의 입으로 저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환자들로 하여금 대신 저 말을 하게한다.

정부가 정책의 목표로 삼은 만성질환자의 상시적인 관리는 고가의 장비로 혈당이나 혈압을 측정하여 전송하는 것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의사와 환자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환자의 라이프스타일이 개선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3분 진료, 원격으로 하면 어떠냐?”의 논리로 추진되는 원격의료가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형성이나 상호작용에 도움이 될까 싶다.

대면 진료조차 갈수록 환자와 눈을 맞추고 접촉과 교감을 통해 라포를 형성해가는 것이 줄어드는 마당에, 원격의료가 처방전 발행을 위한 자동판매기로 활용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원격의료가 정착되면 대면진료 역시 원격의료의 포맷에 영향을 받아 점점 더 환자를 청진하거나 촉진하는 일은 줄어들고, 의료의 형해화는 가속될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미국이나 일본 등 소위 ‘선진국’의 사례를 부풀려 광고하고 있지만, 실제는 이와 다르다. 일본에서는 주로 개호보험(한국의 장기요양보험에 해당)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을 뿐, 건강보험에서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에 대한 급여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재향군인병원에서만 실시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를 절감하는 차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저수가 환경에서 원격의료가 의료비를 절감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장비를 구축하는데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의사의 입장에서 원격의료가 대면진료에 비해 노동시간이나 노동강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가가 더 낮아지기는 힘들다. 원격의료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진단의 정확성도 떨어지고 의사와의 교감도 적은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장비를 통해야 하는 기술적인 성가심은 물론이고 항시 오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더 골치가 아프다. 즉 의사의 노동강도는 높아지는데 반해, 환자에게 전달되는 의료의 질은 떨어진다. 그 사이의 유실되는 노동의 가치는 고가의 장비가 집어삼키는 꼴이다.

▲ 노르웨이 호바르 부스트니스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Health Factory)'.

▲ 정신질환자, 성폭력·가정폭력, 군·형무소를 위한 만병통치약?

입법예고된 의료법 개정안 34조 2항의 원격의료 대상자에는 ‘의학적으로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한 재진환자’라는 규정 하에, 상당기간에 걸쳐 진료를 받고 있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및 정신질환자’라고 되어있다. 고혈압·당뇨 뿐만이 아니라, 경계가 모호한 만성질환자 일반과 정신질환자 일반이 모두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원격지의사가 의학적으로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하면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의 재진을 모두 원격진료로 진단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만성질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문제이지만, 정신질환자의 재진이 모두 원격진료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지난달 27일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원격의료 토론회에서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정신질환자의 경우 자주 내원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보호자의 엄격한 관리 하에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호자의 관리를 운운하는 것도 비현실적이거니와, 정신질환자의 내원을 꺼리는 문제를 손쉽게 원격진료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더욱 놀랍다.

정신질환의 경우 다른 어떤 질병보다 진단과 처방을 위해 오감이 동원되는 비언어적인 느낌이 중요한데, 이것의 상당부분이 원격진료의 과정에서 누락되기 쉽다. 당연히 오진의 위험성이 증가하는데,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원격지의사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는 경우 오진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원격진료의 대상자로 ‘의학적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주체가 원격지 의사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원격 진료로 인해 오진이 발생하였을 때 의사는 “위험성이 높은 환자였는데 왜 원격진료를 하였는가?”라는 원천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책임의 문제는 수술 후 재택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폭력 피해자 및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하여 별다른 조건 없이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는 것도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진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악용의 소지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내원을 꺼릴만하다는 이유로 폭넓게 원격의료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도 불분명하다.

군인이나 교정시설의 수용자의 의료접근성이 낮은 것은 정부가 공공의료의 확충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군대와 형무소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를 배치하고 이를 유지하려면 군대과 교도행정 전반에 걸친 시스템의 개선이 이루어져야하지만, 정부는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원격진료를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고 한다.

정신 질환자, 성폭력·가정폭력, 군인과 수감자, 노인과 장애인 등 더 많이 손이 가고, 더 따뜻한 대면진료가 요구되는 대상자들에게 정부는 원격의료라는 ‘사이버 만병통치약’을 안기고 있다.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에 비해 훨씬 부실하고 저급한 진료가 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첨단과학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고급한 의료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정부는 이러한 환상을 이용하여 모든 골치 아픈 문제로부터 면피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솟는다.

▲ '창조경제' 판 사대강 사업 될 수도

노동계에서는 원격의료를 통해 환자 생체정보의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과 더불어, 보건의료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원격의료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논리를 들여다보면 정부가 의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정부는 의료를 생체 정보를 입력하면 처방전이 출력되는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전달을 담당하는 전자장비가 그 사이를 얼마든지 매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의료를 단지 정보의 입출력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인식에는 ‘돌봄의 가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돌봄의 가치를 본질로 삼고 있는 간호 업무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원격진료는 가뜩이나 저평가되어 있는 간호업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완전히 말살할 것이다. 이것은 노동계의 고민만이 아니라, 양질의 돌봄 노동을 받고 누려야 할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실이다.

원격의료는 첨단의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지만, 대면 진료를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저질 진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율’의 시스템이다. 원격 진료를 밀어붙이는 정부를 보면 의료를 입출력 되는 정보의 덩어리로 보거나 고가의 첨단 장비가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될 것처럼 이해하는 듯 하다. 의료의 중심이 되는 ‘사람’과 ‘돌봄’과 ‘노동’의 가치가 완전히 빠져 있는 인식이다. 이런 것을 ‘물신화’라고 부르는데, 정부는 의료의 물신화에 빠져 의료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있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의 ‘원격의료 밀어붙이기’는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사업’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대운하를 계획했다가 이름만 바꾼 사대강 사업은 ‘녹색 성장’이라는 구호아래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생태의 본질을 도외시한 사업은 단기간 내에 자연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엄청난 이권사업으로 거대 건설 업체들과 그들과 유착한 지난 정부 인사들만이 이익을 챙겼다.

박근혜 정부의 원격진료 역시 의사밀도가 캐나다 등에 100배에 달하고, OECD 중 외래 이용률이 가장 높은 한국에서, 모든 관계자들이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 경제’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의료에 대한 물신화된 사고로 의료 생태계는 물론 약계, 간호계 전반까지 초토화시킬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숙고나 검증 없이 단기간 내에 밀어붙이고 있다.

원격의료를 위한 장비 구축과 관리는 엄청난 이권 사업임에 틀림없고, 이익은 전자통신 관련 거대기업들과 우량주 띄우기로 주식 시장에서 재미를 볼 몇몇 금융세력들과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부 인사들로 국한 될 것이다.

황진미는?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보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진단검사의학 전문의 자격도 취득했다. 2002년에는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겨레21>, <시사저널>, <비타민> 등에 영화 관련 글을, <한겨레 훅>에 법정르뽀를 기고하고 있다. 현재 라포르시안의 '황진미의 라뽀&르뽀'란 고정코너를 통해 보건의료계, 혹은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이슈를 진단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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