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호 심평원 의료기술등재부장 “건강보험 가치와 기술혁신 균형점 찾을 것”

장준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기술등재부장
장준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기술등재부장

[라포르시안]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방안이 곧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장준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기술등재부장은 지난 8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제19회 정기세미나’에서 디지털 치료기기의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을 검토 중인 2차 연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심평원은 디지털 치료기기의 건강보험 급여 예측가능성 제고를 위해 등재 가이드라인 준비에 나섰다. 이를 위해 디지털 치료기기 개념과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 검토를 위해 지난해 6월 1차 연구를 진행하고 같은 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이어 지난해 11월부터 디지털 치료기기 건강보험 적용 방안에 대한 2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장준호 등재부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디지털 치료기기 건강보험 적용 시 고려사항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근거 기반 치료 선택지 확장, 의료체계 효율성 향상, 의료비 절감 등 다양한 편익이 기대되지만 기존 의료기기·의약품과 같은 기등재 항목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 급여등재 시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규제 방식은 의료기기이나 사용방식은 의약품과 유사하고 표방하는 효과는 의사가 수행하는 행위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장 등재부장은 디지털 치료기기의 또 다른 특징으로 병원 내에서 의료진이 사용하는 기존 의료기기와 달리 의사 처방 후 환자가 자가 사용하는 방식으로 그 사용주체가 ‘환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환자 사용성에 따라 실제 사용 환경에서 치료효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급여 결정 시 실제임상근거(Real World Evidence·RWE) 확인이 필요하다는 게 심평원 입장이다.

디지털 치료기기가 기존 소프트웨어의 특성을 갖고 있는 점 또한 급여등재 시 고려사항이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기존 의료기기·의약품과 달리 사용에 따라 성능 개선이 지속적으로 가능해 제품 가치가 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고정비용이 발생하지만 제품 개발 이후에는 사용자 확장에 따른 한계비용이 낮아질 수 있고, 제품 생산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통비용도 줄어 들 수 있다.

독일 영국 일본 디지털 치료기기 급여등재 현황
독일 영국 일본 디지털 치료기기 급여등재 현황

장준호 등재부장은 한국보다 앞서 디지털 치료기기를 공적 재원으로 급여한 독일, 영국, 일본의 급여등재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독일의 1년 운영 현황을 통해 디지털 치료기기 급여적용 시 도출된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독일은 1년간 약 5만 건의 디지털 치료기기 처방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환자가 실제 사용한 경우는 4만 건이었으며, 재정 1300만 유로(약 172억 원)이 소요됐다. 보험자연합인 독일질병금고연합회 GKV는 신속 트랙을 통한 기회 제공 대비 낮은 수준의 혁신성과 긍정적 치료효과에 대한 근거 부족을 이유로 디지털 치료기기 급여제도 개편을 요구했다.

실제로 디지털 치료기기 총 20개 제품 가운데 5개가 정식 등재되고 나머지 15개 경우 1년이 경과됐지만 여전히 테스트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의료인의 디지털 치료기기 수용도 또한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308명의 의료진을 대상으로 디지털 치료기기 처방 의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62%가 디지털 치료기기 처방이 긍정적일 것이라고 응답했지만 실제 본인 처방 경험은 10%에 불과했고, 30%만이 1년 내 처방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장준호 부장은 디지털 치료기기의 국내 건강보험 적용방안을 마련하고자 기초자료 수집을 위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내용도 소개했다. 심평원은 올해 1월 25일부터 2월 15일까지 20일간 학계·의료계·산업계·소비자 부분별 전문가 총 11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치료기기 개념 및 범위 ▲디지털 치료기기 건강보험 급여 필요성 및 적용 방법 ▲합리적인 보상체계 설계 등 조사항목으로 구성된 질문지를 이용해 1:1 심층면담을 진행했다.

‘디지털 치료기기 건강보험 급여 필요성 및 적용 방법’과 관련해서는 환자에게 충분한 치료효과를 갖는 경우 급여화 하고, 시장진입 기간이 길면 제품이 뒤쳐질 수 있어 건강보험 조기진입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다만 조기진입 시 가령 선별급여 90% 적용 등 임시등재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디지털 치료기기가 의사·환자 모두에게 생소한 영역이기 때문에 선별급여 적용이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찬성 입장과 처음 도입하는 영역인 만큼 비급여부터 실시해보는 것이 적정하다는 반대 의견이 맞선 것이다.

‘요양급여 결정 기준’에 대해서는 요양급여 결정 시 표준치료와 비교를 통한 임상적 유효성 확인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지만 표준치료 대비 요구되는 효과성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즉 표준치료 대비 치료효과가 비열등 이상인 디지털 치료기기 경우에만 등재해야한다는 주장과 표준치료 대비 치료효과가 열등한 경우에도 등재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비열등 이상인 경우에만 등재해야한다는 의견은 효과가 더 좋은 치료방법이 있다면 해당 치료에 건보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표준치료 대비 치료효과가 열등한 경우에도 등재 필요성을 제기한 주장은 디지털 치료기기가 필요한 환자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표준치료 보다 효과가 낮아도 등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치료기기 보상체계 설계’ 조사에서는 의료계·산업계의 경우 기존 의료행위 수가를 준용하되 인력 투입이 감소한다는 점을 감안해 예를 들어 ‘인지행동치료 수가의 80% 적용’ 등과 같은 일정 비율을 적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더불어 치료재료와 약제의 최초품목이 개발 원가를 참고해 상한금액을 산정하기 때문에 디지털 치료기기도 유사한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적용가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이밖에 ‘의사 행위료’와 같은 별도 보상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별도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경제적 유인이 있어야 새로운 치료방식인 디지털 치료기기 사용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반면 이미 기본진료료 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별도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맞섰다.

한편, 장준호 등재부장은 지난해 11월 건정심 보고 내용을 중심으로 심평원이 구상 중인 디지털 치료기기 급여등재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일반 건강관리 앱·웨어러블 의료기기 등 다른 디지털 헬스 제품과 구분이 필요하다”며 “건강보험 재원 특성과 급여 원칙을 고려할 때 요양급여 결정신청 대상이 되는 범위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디지털 치료기기’로 한정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명확히 했다. 임상시험이 필요하고 의사 처방이 이뤄지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보험급여를 적용하되 비처방형 제품은 비급여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특히 심평원이 구상 중인 급여등재 방향은 디지털 치료기기의 치료적 위치와 환자 참여 요인 등 불확실성을 고려해 ‘혁신의료기술 평가트랙’을 우선 적용하고 현장 도입·활용 결과를 토대로 정식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제품별 등재 및 선별급여 90% 적용으로 정식등재를 위한 ‘예비등재’ 기반을 마련하되 현행 치료 대비 일정 상한을 설정해 원가 수준의 최소한 보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식등재를 위해서는 ▲표준치료와 비열등 이상 또는 ▲표준치료에 병용으로 우월성을 보인 RCT 연구 ▲단, 표준치료가 부재한 경우 무치료군 또는 위약비교군 대비 우월성 입증의 기준을 수립했다.

심평원은 이와 함께 비용·효과성 입증 시 추가 가치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환자 사용률에 따른 수가 지급 및 사용량과 연계한 가격 조정 기전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디지털 치료기기 보상체계는 ‘제품에 대한 보상’과 치료에 수반되는 ‘의료행위료’로 구성된다.

디지털 치료기기 제품 가격은 비교 가능한 품목이 없어 기존 가치평가 체계를 적용한 가격산정이 불가하기 때문에 치료재료나 신약의 상한금액 산정 시 ‘원가’를 참고하고 있다는 점을 준용하고, 사용자 확대에 따른 한계비용이 적다는 점 등을 고려해 원가 수준의 최소한의 보상을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비용·효과성 등 의료체계 효율성 개선의 가치를 입증하면 ‘추가 보상’을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의료행위료의 경우 의사의 ‘기본 진찰료’(초·재진)에 추가적인 보상으로서 환자 교육·상담에 따른 ‘교육 상담료’ 신설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별도수가를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디지털 치료기기 보험급여를 위한 예비등재·정식등재와 함께 사후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 중이다. 장준호 등재부장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기기 예비등재를 위한 원가 산정은 소프트웨어 대가 산정 기준 등을 참고해 개발원가와 예상사용량을 고려해 산정한다.

원가구성 항목은 ‘기능점수 기반 제품개발비+연구개발비+이윤+부가가치세+유지보수비’로 구성된다. 심평원은 디지털 치료기기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업체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원가 자료를 제출 받아 산정 기준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더불어 원가 상한 기준은 참조 가능한 기존 치료가격 대비 일정 수준을 캡(cap)으로 설정하고, 영국 독일의 현행 치료 대비 디지털 치료기기 가격 비율 또는 디지털 치료의 effect size(효과 크기) 비율을 참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식등재와 관련해서는 현행 표준치료 대비 임상적 효과 입증 시 급여하되 비용효과성을 입증할 경우 임시등재 가격에 추가 가산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이때 대체제·보완제 여부에 따른 차등 비율을 적용하되 보완제의 경우 총 의료비용 기준 비용절감분의 일정 비율을 가산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이밖에 등재 형태는 처방일수를 분할해 사용여부에 따라 추가 처방이 가능하도록 이뤄질 전망이다. 가령 90일 사용 제품은 30일(초기처방)·60일(후기처방)으로 구분된다.

장준호 심평원 의료기술 등재부장은 “디지털 치료기기와 같은 새로운 의료기술의 건강보험 적용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임상적 유용성·비용효과성·급여 적정성 측면에서 엄격한 잣대가 요구된다”며 “그러나 디지털 치료기기가 환자 중심에서 시간 공간적 제약 없이 접근성 제고가 가능하고 비용절감의 기회가 된다면 건강보험에 시의성 있게 진입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건강보험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디지털 치료기기의 급여등재를 위해 이해관계자 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보편성과 형평성 등 건강보험의 기본 가치와 기술 혁신의 가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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