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식약처 의료기기위원회 공동위원장·고대의대 명예교수)

[라포르시안] 의사는 수술을 할 때 의료기기를 사용한다. 만약 수술에 실패했을 경우 그 원인이 의사의 잘못이나 술기가 아니라 의료기기 자체의 문제였다면 어떻게 책임을 물을까? 과거만하더라도 그 책임은 오롯이 의사와 병원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제조물책임법(PL법)이 도입되면서 책임이 일부 분산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환자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피해를 배상받기 위해 소송 등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적 경제적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 책임보험’ 가입제도 시행을 위해 의료기기법 시행령을 개정 중이다. 주요 내용은 의료기기법에 위임된 보험 가입대상 등에 관한 사항으로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크고 일단 부작용이 발생하면 생명이나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되는 ‘인체이식형 의료기기’에 대한 책임보험 요건 등을 예고했다.

인체이식형 의료기기는 인공심장·인공유방·인공관절과 같이 인체에 30일 이상 연속적으로 유지되는 목적으로 삽입되는 의료기기를 말한다. 2020년 기준 국내 인체이식형 의료기기시장 규모는 전체 의료기기시장의 15%에 해당하는 1조1587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의료기기 책임보험제도는 의료분쟁의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법적 대응이 일반화되는 시점에서 환자와 의료기기업체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시의적절한 정책이라고 판단된다. 현재 많은 의견이 수렴되고 관계부처가 검토하고 있기에 가까운 시일 내 최적의 시행방안이 개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기기 책임보험 가입제도의 기대효과는 주로 환자와 업체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다. 환자는 보험을 통해 신속하고 안정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고, 업체는 의료기기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배상에 따른 경제적 부담 등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제도가 의사와 병원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일단 수술이 실패했을 때 발생한 피해는 환자는 물론 의사·병원 모두에게 고통을 주기에 제도 시행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의료기기 책임보험은 수술 결과에 대한 배상책임의 분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진이 보다 안심하면서 의료기기를 선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게 수술을 받은 환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의료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러한 제도 시행의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환자 입장에서는 인체이식형 의료기기에만 한정한 것은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대표적인 영세산업군인 점과 처음 도입되는 제도의 원만한 시행을 위한 정책적 고민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는 향후 제도가 정착되고 의료기기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그 대상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환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의료기기의 결함 여부도 좀 더 명확하게 분석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이제는 의료기기업체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신속하고 안정적인 책임보험 가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아가 업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임의보험 가입을 통해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배상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의료기기는 대한민국 미래 성장 동력 빅3 중 하나인 바이헬스산업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의료기기 책임보험 가입제도 시행이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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