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병원 전현직 간호사, 유방암 집단발병 산재 신청

"만성적 간호인력부족으로 근무환경 갈수록 악화돼"

▲ 간호대학 학생들의 나이팅게일 선서식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의료기관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따른 근무환경 악화로 간호사 등 여성노동자 근로자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3교대와 야간근무가 잦은 간호사 직종에서 집단 유산과 특정 암질환의 집단 발병을 놓고 산업재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1일 ‘전남대병원 유방암 집단 발병에 대한 산재신청 접수’ 기자회견을 열고 병원내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따른 위험성과 심각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보건노조에 따르면 전남대학교병원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200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12명의 유방암 환자가 발생했고 이중 9명은 전·현직 간호사다.

유방암이 발병한 간호사의 연령대는 20대 1명, 30대 3명, 40대 2명, 50대 3명으로 이 병원 전체 간호사(1,124명) 수에 따져볼 때 유방암 유병률은 20대 0.236%, 30대 0.596%, 40대 1.562%, 50대 4,285%이다.

전남대병원 간호사의 유방암 유병률을 국내 여성 평균과 비교할 때 30대는 3.3배, 40대는 2.2배, 50대는 3.8배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제주도의 한 공공병원에서는 간호사 직종에서 '집단유산 사태'가 발생해 역학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앞서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12년 2월 발표한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유산 및 신생아 선천성 심장질환과 업무연관성 유무 파악을 위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자연유산을 했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기를 출산했다. 지난 2010년에는 임신한 12명 중에서 4명이 자연유산을 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율은 전국과 제주도 지역의 평균 자연유산 발생률보다 18~19%나 높았다.지난 4월 출범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제주의료원의 간호사의 유산율은 국내 평균 유산율보다 19%나 높다”며 “야간 노동을 포함해 교대근무, 하루 평균 10시간 가까운 장기노동을 하며 내내 서서 일하는 것은 건강한 여성 노동자도 감당하기 힘든 노동강도”라고 지적했다.  

▲ 제주의료원 연도별 임신, 임신종결, 출산 결과 빈도(출처 :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유산 및 신생아 선천성 심장질환과 업무 연관성 유무 파악을 위한 역학조사)

"교대근무는 발암물질이나 마찬가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등은 3교대근무와 잦은 야간근무가 여성 근로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장태원 교수는 “2010년 국제암연구소는 교대근무를 2A등급의 발암요인으로 분류했다”며 “여성에게서 교대근무로 인한 유방암 발병률은 높은 수준이며 특히 20년 이상 교대근무를 한 간호사에게는 치명적으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암 발병 이외에도 교대근무로 인해 수면장애, 소화기 및 뇌심혈관 관련 질환의 발병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교대근무는 여성 근로자의 건강에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임에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손미아 교수는 “여성 노동자가 야간근무를 하게 되면 멜라토닌 기능이 억제돼 재생호르몬 분비가 교란 된다”며 “이로 인해 호르몬분비 사이클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 여성 근로자의 임신, 출산, 생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의료기관의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으로 인해 근무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3월~4월 한달간 산하 병원노조 조합원 2만1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임신한 이후에도 야간근무를 지속했다고 응답한 간호사 비율이 30%에 달했다.

간호사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48시간으로,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방 중소병원의 경우 한 달에 10회 가까이 야간 근무를 하거나 간호사 1명이 30명 가까운 환자를 돌보는 곳도 있었다.  

▲ 지난 4월 29일 열린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준) 출범 기자회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 성화 차장은 “대부분의 병원 사업장에서 임신상태의 근로자는 야간업무를 금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임신한 상태로 환자의 이동을 돕거나 장시간 서서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성 차장은 “부족한 인력 때문에 불규칙한 교대근무와 야간근무 시 업무강도가 심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인력충원을 통해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OECD 2013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입원환자는 15~20명으로 일본(7.0명), 미국(5.0명)보다 3배 이상 많았고 이는 OECD국가 중 최다 수준이다.

게다가 간호사가 매 시간 돌봐야 하는 급성기병상 1개당 간호사 수는 0.28명에 불과해 OECD 평균인 1.13명의 1/4에도 못 미쳤다.  

보건노조 전남대병원지부 김미화 지부장은 “전남대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교대근무와 야간근무로 인해 유방암뿐만 아니라 갑상선암, 유산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하지만 병원사업장이란 특성상 야간근무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교대근무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간호사 인력충원을 통해 규칙적인 교대근무 패턴을 마련하고 야간근무 투입 빈도도 낮춰야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OECD국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간호사 인력 개선이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이 사안에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간호협회 건강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유산이나 유방암은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모든 여성이 겪을 수 있다”며 “제주의료원과 전남대병원의 간호사 건강권과 관련한 조사는 표본수가 적어 신뢰성과 대표성을 갖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표본수가 보다 많아야 의료기관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건강권을 위협하는 문제를 유발한다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말로 교대근무와 야간근무로 인해 직업성 질병이 유발된 것인지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가 공론화돼 간호사 직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까봐 우려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는 “솔직히 말해 의료기관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간호사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누가 간호사를 하겠느냐”며 “이런 조사결과나 이를 토대로 한 간호사 건강권에 대한 보도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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