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미(사이넥스 의료기기 임상개발부 이사)

[라포르시안]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욕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가 교양수업 때 들어 알고 있는 생리적·안전 등이 포함된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로 발현된다.

필자는 특히나 불확실한 것을 참지 못한다. 매번 새로운 고객을 만나 컨설팅을 진행하고 십인십색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과연 어떤 제품과 기술을 준비했을까하는 기대의 내면에는 어느 정도 고객에 대한 기본 정보 탐색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 포함돼 있다. 물론 상황 자체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순간이지만 이는 철저히 준비된 불확실성이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나의 준비와 예측이 실제와 맞아 떨어지는 순간 불확실함이 유발했던 긴장은 이내 적절한 컨설팅을 제공했다는 만족감으로 전환된다.

필자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는 방어기제는 고객맞춤형 준비인 것이다. 고객이 미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을 파악하고 고객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컨설턴트인 내가 의도한대로 전달하는 것, 이것이 성공적인 컨설팅이라고 생각한다. 혹여 준비한 것과 달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미팅이 흘러간다 하더라도 고객이 나와의 미팅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되짚고 우리가 서로 나누고자 하는 목적을 상기해 그것을 달성한다면 결국 양쪽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의료기기 임상시험에는 수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개발과정을 마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준비됐다 생각하고 임상시험계획서를 작성해도 이를 검토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어떠한 보완사항을 요구할 지 공문을 받을 때까지 조마조마하다. 식약처와 IRB(International Review Board·임상시험심사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했다 해도 피험자 모집 기간에 코로나19와 같은 암초를 만나 마감을 기약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개발과정에서 최고 성능을 보이던 시험기기가 갑자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조기기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던가 하는 정말 예상치 못한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과정이 임상시험이다. 이때도 예외 없이 필요한 것은 목적이다. 해당 임상시험을 하는 목적과 시험기기가 입증하고자 하는 가설이 명확하다면 어떠한 불확실성이 출현하더라도 성공하는 임상시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임상시험 목적은 초기 유효성 검증, 허가를 위한 가설 검증, 허가 후 학술자료 생성이나 마케팅 홍보 자료 수집 등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연구 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에 더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설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설 검증은 제품을 만든 목적을 확인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연구에도, 제품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도 모두 목적이 있다.

사용목적은 의료기기를 만든 이의 객관적인 의도로, 여기에는 해당 제품을 사용할 대상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담겨있다. 사용목적에 담겨있는 제조자가 의도한 사용대상은 임상시험에서 어떠한 사람을 대상으로 기기를 적용할지 피험자 선정과 제외 기준을 마련하게 하며, 제조자가 의도한 사용방법은 연구에서 사용될 시험기기의 사용방법이 된다.

특히 안전하고 유효한 방법으로 사용목적을 달성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이 임상시험에서 말하는 안전성·유효성 평가변수로 표현된다. 갑자기 옆자리 동료가 “커피 한잔 할래?” 물었다고 생각해보자. 왜 내게 이런 말을 건넸을까? 첫째 나른한 오후 잠을 쫓고자 잠시 움직이고 싶었을 수 있다. 둘째 나와 좀 더 친해지고 싶어 시간을 청한 것일 수도 있다. 셋째 뭔가 고민거리가 있는데 커피를 핑계 삼았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아니고 그냥 정말 커피가 마시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커피를 사러 카페에 갔다고 치자. 깔끔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당이 떨어진 듯 하니 달달한 캐러멜 마키야토를 마실까, 아니면 좀 색다르게 소금 커피? 이것도 저것도 다 마시고 싶고 다 나름 내 몸이 원하는 적절한 이유가 있어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 간혹 이 같은 선택지가 사용목적을 설정하는 상황에도 나타난다. 동료는 지금 잠을 쫓기 위해 일어나고 싶은데 마침 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를 보고 있었고 고민도 슬쩍 털어내면 좋을 듯 한데 글쎄 커피도 먹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이 시간에 다 완벽히 얻어낸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회사를 빠져나가 카페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을 수도, 나가긴 했지만 커피를 사자마자 돌아와야 해 대화를 충분히 나누지 못할 수도, 어쩌면 고객 전화를 받고 회사 정문을 빠져나갔다 그대로 다시 들어와야 할 수도 있다. 나의 동료에게는 모두 다 의미 있고 이 시간 동안 이루면 좋을 만한 것들이지만 지금 마시는 커피에 하나의 의미만을 담아야 오롯이 그 하나를 의도한 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기 사용목적을 정할 때도 나의 동료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한 의료기기에서 어떠한 값을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질병을 진단해 향후 도래할 상황에 대한 예후예측까지 의도하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한 사람도, 특정 질병을 가진 이도, 가정에서도 건강검진센터·종합병원에서도,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남녀노소, 장소를 불문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목적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자칫 커피 한잔을 통해 기대했던 대화도, 친밀감 형성도, 기분전환도 그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릴 수 있다.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에는 소금 커피를 팔지 않아서 애초에 이것저것을 후보에 두었던 고민이 한 카페 내에서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담고 모든 요구를 만족하는 사용목적 설정은 우리 제품의 의도된 목적을 흐리게 한다. 이는 입증하고자 하는 가설을 세울 수 없게 만들어 임상시험을 시작조차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론 때에 따라선 적절한 긴장감이 삶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길디길지만 구체적인 시점을 잡아 우리 모두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고 누군가 공포한다면 명확한 지점이 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 연봉은 120만 원이야, 왜냐하면 항상 내 통장 잔고는 매달 10만 원이거든”이라고 말해도 “몇 년 뒤 당신은 잔고가 매달 100만 원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면 그 기대로 오늘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기 사용목적이 명확하다면 제품을 개발할 때도 임상시험을 할 때도 향후 판매를 할 때도 간혹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의도되고 명확한 사용목적은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임상시험 가설을 잡을 수 있게 하고, 우리 제품의 성능 기준 값을 설정할 수 있도록 나침반을 제공할 것이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계에서 우리만의 의도를 담은 의료기기를 세상에 선보이려면 사용목적 수립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준비된 불확실성을 만들어보자.

<헬스인·싸>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트렌드를 잘 쫓아가며 주목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인사이더(insider)'와 통찰력을 의미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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