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권(변호사,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법무 전담교수)

최근 정부가 내놓은 입법안 하나로 인해 의료계가 시끄럽다.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임에도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다들 호들갑이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특별한 내용도 없다. 이제까지 허용되고 있던 의사-의사 간 원격의료를 의사-환자 간으로 확대하면서 그 범위를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및 정신질환을 가진 재진환자로 제한하여 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담당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법안의 내용을 보면 공격받을 점이 너무 많다고 할 정도로 허술하다. ‘의료인에 대한 기술 지원’, ‘의학적으로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한’, ‘상당기간에 걸쳐 진료를 받고 있는’, ‘질병상태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과를 관찰할 필요’, ‘방문에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는 경우’ 등 개별 문구의 해석에 대해 검토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조문 하나를 개정하면서 이렇게 많은 불확정 개념을 사용한 입법을 근래에 본 적이 없다. 그 만큼 졸속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또한 매일 으르렁거리던 의료계 단체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이채롭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입법은 최초 시행하려던 원격의료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이미 여러 차례 논의를 했던 부분이다.

최근 끝난 국정감사에 대한 언론의 지적 가운데 하나가 매년 같은 주제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의원들이 게을러서 그런 것일까. 초선의원의 의욕, 연예인과 같은 수준으로 언론노출을 원하는 국회의원들이 단독 샷이 잡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인 국정감사를 불필요한 재탕주제로 하려할까. 보는 시각이 틀린 것이다. 매년 줄기차게 문제점을 지적해도 ‘검토해 보겠다', '시정하겠다’, ‘확인해 보겠다’고만 대답하는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 국정감사 기간이 지나면 자신이 제기했던 문제가 제대로 시정되었는지를 끝까지 확인하지 않는 국회의원의 자세가 문제가 된 것은 아닐까. 더불어 이를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 역시 제기된 문제점에 대한 정부나 국회의원의 사후 노력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이 너무 많다. 불필요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놓고 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세비를 가져가는 국회의원을 비난은 하지만, 이를 허용하는 국회사무처의 태도나 이를 막을 근본적 방향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단지,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하거나 욕만 하고 만다. 어린 소녀가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한 사건에서 범인 개인의 흉악함이나 성격적 결함을 원인으로 들면서 그 가정사를 파헤치는 언론보다 범행 장소가 불필요한 재개발, 재건축 계획으로 공동화되면서 우범지역이 된 것에서 원인을 찾는 어느 기자의 시각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범죄를 포함한 사회병리현상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똑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구조적 문제로 보아 반복되지 않도록-악보에 나오는 도돌이표가 되지 않도록- 근본적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개정안만 내놓고 회기만료로 폐기되고 다시 재활용되는 불필요한 입법의 순환구조를 이제는 깨야 한다. 그래야 절실히 필요한 입법안에 국회나 정부가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권은?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의료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에 입학했다. 2008년 68회 의사국시에 합격했다. 현재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이며,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법무 전담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