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인력 양성·처우개선 위해선 적정 간호인력 확보 전제돼야
"간호법에 간호인력 확보 실질적 규정 빠져" 지적 제기돼

[라포르시안] 최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상임위 법안소위를 통과하면서 이를 둘러싼 보건의료 직역간 갈등이 더 심해졌다. 

향후 법안 심의 과정에서 법안을 둘러산 갈등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여 사회적 갈등관리 비용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간호법 제정안 내용 중 보건의료 현장에서 기존과 다른 변화를 초래하거나 민감한 직역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에 제출된 2건의 간호법안 내용 중 의사단체 등에서 반발하는 내용이 간호사 업무범위 관련 규정이다. 법안을 보면 간호사 업무범위를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서정숙 의원 대표발의 법안)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 등으로 규정해 놓았다. 

사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한 것이 간호법안 입법 추진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의사단체에서는 간호사 업무범위를 '진료 보조'로 규정하는 것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하는 것은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해석하고 있다. 간호사 업무범위가 의사 등의 지도나 처방에 근거해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하는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 업무범위가 확대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관련법 개정 등으로 간호사 단독개원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게 의사단체의 주장이다.   

그러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라는 행위 제한을 두기 때문에 간호사만의 독자적인 진료행위는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나온 판단이다.  

실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에서 "제정안들은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 가능한 진료 관련 행위와 ‘진료 보조’의 문언 중복을 해소하는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또한 현행의 표현이 의사-간호사 간 업무관계에 있어 협력적 가치보다 종속·의존적 성격을 부각시킨다는 우려를 시정하는 조치로서 의의가 있다고 볼 것"이라며 "따라서 제정안이 실제적 업역 변경을 수반하는 법 개정조치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발이 계속되자 결국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심의 과정에서 조정안이 마련됐다. 

이번에 법안소위를 통과한 조정안은 ▲간호법의 적용 범위에 요양보호사·조산사 관련 내용 제외 ▲간호법 우선 적용 규정 삭제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규정 ▲의료기관의 책무 규정 삭제 ▲간호종합계획·간호정책심의위원회·간호사 등 실태조사 삭제 ▲간호인력 지원센터 고충 해소 및 상담지원 업무 삭제 ▲표준근로지침 관련 규정 삭제 ▲교육 전담간호사 관련 내용 간호법에 규정 ▲간호조무사협회 법정 단체화 ▲간호조무사협회 법정단체화에 따른 경과 규정 신설 등의 내용을 담았다. 

간호법 제정안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 빠지거나 수정되고, 특히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규정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도 의사단체 등에서는 여전히 법안에 반대하며 아예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법안을 처리할 경우 총파업 투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따져봐야 할 대목은 과연 이런 식으로 간호법을 제정하면 간호협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의료법상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떼어내 업무 환경·체계 등을 정립하고, 양질의 간호인력을 교육·수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간호협회는 법안소위 통과 후 성명서를 내고 "숙련된 간호인력의 확보와 적정 배치, 지속 근무 등을 위한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해 3월 발의된 지 1년이 지나 드디어 의결됐다"며 "여전히 대한의사협회 등은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지만 간호법은 다양화되는 간호업무에 발맞춰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해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고 국민 건강을 돌보기 위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안소위를 통과한 간호법 수정안에서는 간호인력 양성 관련한 중요한 규정이 삭제되거나 수정됐다. 

간호종합계획과 간호인력 권익에 관한 사항에서는 ▲간호종합계획 ▲간호정책심의위원회 ▲간호사 등 실태조사 관련 내용은 기존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적용을 받는다고 보고 모두 삭제했다. 간호인력지원센터의 경우 신설하되 고충해소와 상담지원 업무는 삭제하도록 했다. 또 표준근로지침 관련 규정과 간호사 확충 관리책임자 선임 등 의료기관 책무도 삭제했다. 

이 때문에 과연 간호법이 양질의 간호인력 수급과 간호사 업무환경 개선에 어떤 계기를 마련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의사 관련 단체에서는 "간호사 처우개선에는 얼마든지 동의하지만 현재 간호법이라고 지칭된 법안은 간호사의 실제 처우개선과 관련 없는 간호협회 수뇌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함인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이라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적정 간호인력 확보와 간호사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선 병원이 간호인력 확충에 나서게끔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가 실질적으로 필요한데, 간호법 제정안에 이에 대한 규정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간호협회가 간호법안 입법 추진시 주요한 이유로 적정 간호사 확보와 처우개선을 꼽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적정한 간호인력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환자의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많아질수록 환자 사망률, 투약오류 등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며 "간호사 그리고 국민을 위해서라도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정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 간호인력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작년 10월 동의자수 10만명을 넘기며 국민동의청원이 성립된 '간호인력인권법' 청원이 상정돼 있다.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인력 수급 종합계획과 임금 결정 등의 내용과 함께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최저 인력 배치기준을 규정해 놓았다. 일반병동, 중환자실, 외상응급실, 수술실. 신생아 집중치료실 등 근무 장소별로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인력 최저 배치기준을 명시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간호인력인권법 입법논의는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추진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협회의 간호법과 다른 법안으로,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를 법제화해 인력기준 배치를 적게 한 의료기관은 징역이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이 들어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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