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앨런 니클라슨은 잠시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10월 23일 미주리주에서 독극물을 주입받고 사형에 처해질 예정이었지만, 그는 10월 11일 제이 닉슨 주지사에 의해 형 집행이 연기됐다.

무죄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형에 사용될 약물에 문제가 있어서였다. 문제의 약물은 널리 사용되는 마취제인 프로포폴인데, 세계적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관계로 미국 주립 형무소들의 사형집행 방법에 영향을 미치더니 급기야 그 불똥이 의료업계에까지 튀고 있다.

가장 흔한 사형집행 방법인 독극물 주입(lethal injection)에 사용되는 마취제의 부족으로 인해 미국의 주정부들은 새로운 진정제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일부 주정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약물은 프로포폴이다. 미국의 병원들이 수술을 위해 연간 5,000만 번까지 투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프로포폴은 지금껏 사형집행에 사용된 적이 없다.

만일 프로포폴이 사형집행에 사용되었다면 미국의 병원들은 프로포폴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사용되는 프로포폴의 90%를 책임지고 있는 한 독일회사(Fresenius Kabi)가 EU의 규제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EU는 사형집행이나 고문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과 기구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프레제니우스는 2012년, 미국의 유통업자들에게 해당 약물을 교도소에 공급하지 말도록 신신당부한 바 있다.

EU의 사형반대 입장이 미국의 마취제 공급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이후, 유명한 진정제인 티오펜탈나트륨(sodium thiopental)이 미국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티오펜탈나트륨의 제조사인 호스피라(Hospira)가 이탈리아 공장의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인데, 그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티오펜탈나트륨을 사형집행에 사용하지 말라"는 이탈리아 정부의 명령이었다. 그렇잖아도 만들기가 어렵고 원가도 비싼 티오펜탈나트륨은, 제조상의 문제 때문에 이미 단종되다시피 한 상태다.

"미국과 유럽에서 사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논란 때문에, 애꿎은 우리가 적절한 마취제를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미국 마취학회 회장을 지낸 제리 코헨은 말했다.

"EU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들은 이미 티오펜탈의 예에서 본때를 보인 바 있다. 우리가 프로포폴을 사형집행에 사용하게 된다면, 마취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선량한 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마이애미 의대의 마취학과장인 데이비드 루바스키는 말했다.

"티오펜탈이 마취제 목록에서 사라진 것은 그리 큰 불편을 일으키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프로포폴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포폴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미주리주를 비롯한 다른 주에서 프로포폴이 사형집행에 사용되고, 그로 인해 독일 업체의 프로포폴의 수출이 중단된다면 미국 전역의 병원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프로포폴을 대체할 수 있는 마취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포폴은 신속하게 작용하며 구토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호흡튜브를 착용한 환자들을 마취시키는데 선호되는 방법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의 규정 때문에 프로포폴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코헨은 설명했다.

2012년 미국에서는 43명의 사형수들이 독극물 주입을 통해 처형됐다. 사형수를 수용하고 있는 미국의 35개 주립 교도소들은 이미 효과적인 마취제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태다.

종전의 처형 방법은 티오펜탈을 세 번 주사하여 사형수를 진정시킨 다음, 근육이완제인 브롬화판쿠로늄(pancuronium bromide)으로 마비를 유도하고, 마지막으로 염화칼륨을 이용하여 심장을 정지시키는 것이었다.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티오펜탈의 공급이 감소하자, 많은 주립 교도소들이 또 다른 진정제인 펜토바르비탈(pentobarbital)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1년 미국에 펜토바르비탈을 공급하던 덴마크의 룬드벡社가, 덴마크 정부와 EU의 인권법에 따라 펜토바르비탈을 사형집행에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해 왔다.

텍사스주의 펜토바르비탈 공급은 이미 9월에 중단됐지만, 텍사스주는 법령의 규제를 받지 않는 조제약국(compounding pharmacies: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약물을 조제하는 약국)을 통해 추가 물량을 확보했다.

루바스키에 의하면 펜토바르비탈은 수술용 마취제로서 그리 유용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펜토바르비탈 공급 부족이 병원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교도소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10월 15일 펜토바르비탈의 공급이 끊긴 후,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는 윌리엄 해프라는 사형수에게 (진정제로) 미다졸람을 주사했다. 그러나 미다졸람은 디아제팜(바륨)과 유사한 진정제로 지금껏 사형집행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언론보도에 의하면 해프는 아직도 눈을 깜빡거리거나 머리를 움직인다고 한다.

"미다졸람이 사형집행에 적절한 약물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플로리다 주정부는 뚜렷한 근거 없이 재소자들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서커스다. 그들은 약효도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의사놀이를 하고 있다. 미다졸람은 훌륭한 마취제가 이니며, 사형수들을 마지막 주사의 고통에서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루바스키는 말했다.

"미다졸람이 사형집행에 사용되더라도 수술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 호스피라는 미다졸람을 생산하는 많은 업체들 중의 하나로, 미다졸람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 없기 때문"이라고 호스피라의 대변인인 댄 로젠버그는 말했다.

그러나 로젠버그는 미다졸람의 생산지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면서, 다만 EU의 규제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만 말했다.

한편 미주리주는 - 프로포폴의 대안을 찾는 동안 - 11월 20일에 집행 예정인 또 한 건의 사형을 연기했다. "한 번의 대용량 프로포폴 주사로 사형수를 진정시키는 것은 효과적이지만, 미국의 사형수들에게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프로포폴을 투여하는 방법이 복잡한 데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의사들이 처형 과정에서 `망나니` 노릇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Nature 441, 8?9; 2006). 이는 고등교육을 받은 간수가 실행할 수 있는 손쉬운 사형집행 프로토콜을 정립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별개의 문제"라고 루바스키는 말했다.

출처 : http://www.nature.com/news/death-row-incurs-drug-penalty-1.13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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