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각종 공약이 쏟아진다. 정당별 후보 캠프에서 공약 경쟁이 한창이다. 보건의료 분야 공약도 넘쳐난다. 지금까지 나온 대선 후보들의 보건의료 공약은 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공공의료 확충 ▲의료체계 개편 등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짜였다. 

일부 보건의료 공약은 특정 연령층이나 성별을 타깃으로 한 '선별적인' 보장성 강화 정책도 눈에 띈다.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가 전 국민 대상으로 질병 예방과 치료를 통한 보편적 의료보장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따져보면 이런 식의 보장성 강화 공약은 적절하지 않다. 무엇보다 건강보험 적용 확대 순위를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공론화한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일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처음으로 대선에서 공약으로 등장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건강보험 보장성을 측정하는 구체적인 지표가 없었던 탓도 있다. 2002년 대선 때 당시 노무현 후보가 건강보험 보장률 80%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정권이 수차례 바뀌는 동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앞세우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 보장률 수치는 참여정부 이후 10년 넘도록 60% 중반을 벗어나질 못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약 80%)에 크게 못 미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공약으로 보장률 70% 달성을 약속했지만 2020년 기준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를 기록했다. 그만큼 보장성 강화에 많은 재정 투입과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걸 방증하기도 한다. 

보장성 강화에서 중요한 건 '무엇부터 할 것인가'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재정과 자원의 유한성 때문에 건강보험에서 '분배 정의'는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원칙이다. 그동안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에 있어서 낮은 보장률과 함께 논란이 됐던 건 급여 우선순위였다. 어떤 질환부터, 혹은 어떤 계층을 대상으로 보장성을 확대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보장성 확대를 결정하는 절차를 볼 때 여러 이해당사자 간 논쟁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지만 우선순위 결정에 반영할 기본적인 원칙이 부재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선거철이면 형평성이나 효율성 등을 기반으로 한 급여 우선순위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 이슈나 여론에 밀려 급여 확대를 결정할 때가 많았다. 불요불급한 항목의 급여 적용이나 엉뚱한 방식으로 급여 확대가 이뤄지면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도 뚜렷한 효과를 내기 힘들다. 질환별로, 병원 종별로 건강보험 보장성의 왜곡과 형평성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 건강보험제도는 누구나 재정적 어려움 없이 양질의 필수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이 최우선 목표다.   

한참 늦었지만 건강보험제도 장기비전을 세우고 그에 따른 정책과제를 발굴하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이 2019년에 만들어졌다.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지 40년이 지나고 나서 처음이란 게 놀랍기는 하다. 건강보험제도 운영에서 장기비전과 방향성이 취약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종합계획에서 평생건강을 뒷받침하는 보장성 강화'라는 추진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위한 정책과제로 ▲국민의료비 부담 경감 ▲환자 중심 통합서비스 제공 ▲예방중심 건강관리 기능 강화를 제시했다. 여기에 정치가 섣불리 끼어들어 제대로 된 논의 절차도 없이 방향을 트는 힘을 가해선 안 된다.  

탈모 치료제나 임플란트 보장성 확대 공약이 관련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식이면 고통을 말하기 힘든 중증환자나 그 수가 적어서 목소리를 높이기 힘든 소수 희귀질환 환자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선거에서 표를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 '분배정의'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 관련해 정치가 할 일은 그 방향성을 정하는 데 있어서 '절차적 정의'와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 거다.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의료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여론을 모으고 제도개선을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더는 '00질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같은 공약을 내놓지 말기를 당부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방향성과 그에 따른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과제,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하길 바란다. '건강보험 수입액의 20%'라고 법에서 정해놓은 국고지원 규정도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건보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해 국고지원 확대가 시급하다. 또 가입자간 형평성을 제고하는 쪽으로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보건의료정책 거버넌스'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의료정책에서 이해당사자의 의사결정 접근성을 높이고,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거버넌스를 모색하는 데 정치집단이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공약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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