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일반적인 지표를 놓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상위권에 속한다. 마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OECD 국가의 보건수준'이란 보고서를 냈기에 살펴봤다. 기준연도는 2011년이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1.1년으로 OECD 평균 80.1년보다 1년이 더 길다. OECD 국가 중 13번째로 기대수명이 긴 국가이다.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1천명당 3.0명으로 OECD 평균 4.1명보다 1.1명이 더 낮다. OECD 국가 중 9번째로 영아사망률이 낮은 국가에 속한다. 

암에 의한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185.1명으로 OECD 평균 210.5명보다 25.4명이 더 낮다. 암에 의한 사망률이 OECD 국가 중 5번째 낮은 국가로 평가됐다. 병상수는 인구 1천명당 9.6병상으로 OECD 평균 4.9병상보다 2배 가까이 더 많다. OECD 국가 중 2번째로 병상수가 많은 국가이다. MRI 장비 수는 인구 100만명당 21.3대로 OECD 평균 13.6대 보다 7.7대가 더 많아, OECD 국가 중 6번째로 MRI 보유대수가 많은 국가에 올랐다. 퇴원환자의 평균 재원일수는 16.7일로 OECD 평균 8.8일보다 7.9일 더 길다. OECD 국가 중 2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의료비 지출은 어떨까.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는 7.4%로 OECD 평균 9.3% 보다 1.9%p가 더 낮다. GDP 대비 국민의료비가 OECD 국가 중 6번째로 낮은 국가이다.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사회보험, 국고지원) 비율은 55.3%로 OECD 평균 72.2% 보다 16.9%p가 낮았다. 우리나라는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 비중이 OECD 국가 중 4번째로 낮은 국가이다.

뭔가 이상하다. 국민의료비 지출이나 정부의 공공지출 부담은 낮은데 보건의료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는 유난히 높다. 지표상으로 의료장비나 병상 등의 의료자원은 과잉공급이다 싶을 정도로 많고, 평균재원일수를 보면 과잉진료가 의심된다. 그럼에도 OECD 국가 중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이 상당히 낮다. 특히 국민의료비 중 국고지원이나 사회보험 등 공공재원 지출 비중은 OECD 회원국 중에서 바닥을 긴다. 객관적 지표상으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는 투입된 의료자원 대비 성과가 높은 '믿기 어려울 만큼'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뭐가 문제인가. 이렇게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인데. 병원과 의사들은 왜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국민들은 또 의료보장성이 낮다고 불만인가. 욕심이 지나친 걸까.

모든 문제는 '1977년'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의료제도 역사에서 1977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해 7월, 공무원과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당시 의료보험의 적용 대상은 전체 인구의 9%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 대상 또한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 소득원이 있는 계층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1989년 실질적인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됐다. 불과 12년 만이다. 전 세계 의료보장제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성과다.

이런 성과가 그저 얻어진 건 아니다. 꼼수가 있었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은 낮게, 그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도 낮게, 그리고 의료수가도 낮게 책정한 ‘저부담-저급여-저수가’로 불리는 ‘3저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이걸 '1977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이 패러다임은 건강보험제도 도입에 따른 저항을 줄여 빠른 시간 내 모든 국민이 가입자가 되게끔 끌어들였다. 지금도 이 패러다임은 유효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건강보험에 대한 보장성 요구가 커진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이 제한적이다보니 큰 병이라도 걸려 병원을 찾으면 각종 비급여 진료비에 따른 본인부담이 감당하기 벅찰 정도였다. 진료비 때문에 가계파탄 상태에 이른 '의료빈곤층'을 양산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요구가 거세지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겠다면 숫자놀음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가 추진되고, 3대 비급여의 급여화 논의가 한창이다. 이상하게도 적정 보험료 인상과 건강보험 재정 확충에 대한 논의는 빠진 채.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이게 또 너무 불합리다. 보장성 확대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건강보험 적용 항목이 확대되는 만큼 자꾸 의료수입의 손실이 커진다. 초음파 검사 등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면서 기존 관행수가의 절반으로 후려친, 혹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비급여 항목을 통해 병원의 수익을 보전했는데 그마저도 힘든 상황으로 자꾸 몰리니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또한 병원 규모를 확대해 환자유치에 나서고, 토요일과 야간에도 진료를 하는 식으로 의료행위량을 늘려 수익을 보전했다. 이마저도 점점 힘들어진다. 포괄수가제가 강제 도입 되면서 의료행위량 확대로 수입을 보전하는 것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값싼 진료재료를 사용해 원가절감을 할까 고민했더니 '저질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비난한다. 1977년 패러다임에 갇혀 이쪽을 쥐어짜면 다른 쪽으로 뻗어나와 생존을 모색했던 의료기관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믿기 어려울 만큼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구현한 의료기관들이 난관에 봉착했다.    

급기야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의료수가도 모자라 싸구려 진료를 강요하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는 등 국내 의료풍토 속에서 어떤 병원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라고 호소하지만 돌아올 답변은 뻔하다. 그래서 지금 의료계는 묻고 있다. '응답하라,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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