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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만나다] “한국의료 가장 큰 문제는 규범에 갇힌 의사-환자 관계”권용진(서울시 북부병원장)

서울시 북부노인병원은 지하 2층에 지상 4층으로 200병상을 갖춘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지난 2006년 5월 개원한 북부병원은 초기에 ‘북부노인병원’이란 명칭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2011년 7월 병원 명칭에서 ‘노인’을 빼고 지금의 북부병원으로 개칭했다. 북부병원에서는 요즘 변화의 바람이 한창이다. 지난해 12월 40대 중반의 젊은 병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감지된 변화다. 북부병원이 추구하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역 내 의료복지체계를 연계하는 게이터 키퍼로서 ‘커뮤니티 호스피탈’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기를 시작한 지 10개월째 접어든 권용진 병원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 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에서 공공의료에 관한 학술적 연구를 많이 했다. 막상 실무에서 공공의료를 경험하니 어떤가. 

“이론과 실제는 원래 차이가 있다. 이 병원에 오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학문은 사후적 재구성’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학문적 연구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를 찾고 개선 방안을 논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공공의료 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 자료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북부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공공의료 정책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 한국사회에서는 ‘공공의료, 공공병원’이란 용어가 마치 진보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그에 따른 반발이나 부정적인 인식도 만만치 않다. 

“의료 영역에서 ‘공공의료, 공공병원’이란 용어를 소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계속 사용해 왔기 때문에 마치 그들의 주장이나 아이콘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일각에서는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반사적으로 생긴 용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모두 의료가 가진 본질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서 생긴 것 같다. 의료란 본래 아픈 사람과 치료를 하는 사람 간 관계의 문제다. 그러한 관계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이것이 국가라는 규범사회로 들어오면서 상당히 왜곡됐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규범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규범에 갇혀버린 의사와 환자’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는 법적 틀거리 때문에 계속 문제가 생기고 갈등하는 양상이다.“

- 현재 공공의료를 이야기할 때 민간의료와 대결적 구도에서 논할 때가 많다. 

“의료의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단편적으로 공공병원이다, 민간병원이다 하는 식으로 구분하고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다. 그러한 접근은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 공공의료와 공공성 강화 논쟁은 의료의 본질로 돌아가서 좋은 것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매번 논쟁이 갈등을 부추기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공공과 민간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면 공공은 선이고 민간은 악인가. 전세계 어디에 그런 논의가 있나.”  - 공공의료, 혹은 공공병원 고유의 기능이나 역할을 별도로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인가. 

“사회의 모든 부문이 공공적이어야 한다. 모든 사회가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의 일부가 충돌하고 또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의료영역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공적인 영역일 수 있고, 사적인 영역일 수 있다. 둘이 완전히 갈라지는게 아니다. 의료 자체를 공적 영역이다, 혹은 사적 영역이다는 식으로 엄밀하게 구분할 수 없다.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공공의료 영역이 뭔가 다른게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게 논쟁을 촉발시킨 잘못된 관점이다.”

- 한국의 의사사회는 왜 의료공공성 강화 논쟁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나. 제도적인 한계 때문인가.

“분명 제도적인 측면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 의사라는 전문직의 자율성을 너무 억압했다. 그렇지만 제도적 한계를 탓하려면 의료업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사실 의사들은 제도적으로 자율성을 억업당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보상을 받아갔다. 그것을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의사들이 잘못된 규범을 개선하고 의료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국가적으로 건강문제의 핵심은 뭔가를 놓고 논쟁을 해야지 수가가 낮다는 주장만 해서는 안된다.   - 지방의료원과 같은 지역거점공공병원이 오히려 지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그래서 공공병원의 지역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진주의료원 폐업 과정에서 진주시민과 경남도민 절반 이상이 폐업에 찬성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그게 뼈저리게 가슴 아팠던 것이다. 지방의료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지역주민들에게 그만큼 필요한 병원이 아니었구나 하는걸 인식하는 굉장히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지역민에게 더 필요한 병원, 그리고 지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라는 측면에서 지역화에 대한 논의가 촉발된 것 같다.” 

- 의료의 본질을 성찰하는 측면에서 의료공공성 강화 방안은 뭔가  “세가지 관점에서 의료공공성 강화를 말 할 수 있다. 하나는 의료 본질의 공공성 강화, 또 하나는 국공립 의료기관의 기능 정상화, 그리고 지역공동체에서 병원 기능의 활성화 등 세가지다. 그 세가지가 의료공공성 논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 '의료 본질의 공공성 강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첫 번째 말한 의료 본질의 공공성 강화란 환자의 권리 강화와 의료의 질 향상이다. 현재 북부병원은 이러한 세가지 관점에서 좋은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 병원에는 ‘오렌지 포인트’라는 게 있다. 환자 안전과 질 관리를 위해 하는 것인데, 안전사고가 난 곳에 누구나 볼 수 있게 오렌지 모양을 매달아 놓는다. 이걸 보면서 병원 직원들이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예방 노력에 좀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그런 노력을 통해 오렌지를 떼가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까지는 병원이 점점 오렌지 나무가 돼가고 있다.(웃음). 우리 병원은 또 시민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안전사고 등을 다 공개하고 있다. 병원 내에서 안전사고가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이러한 질 향상 노력이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고 생각한다. 또 'R 라운딩'이라고 환자의 권리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와 인권 변호사가 2개월에 한 번 정도 병원에 와서 병실을 돌며 환자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권리침해가 있었는지, 불편한 것은 무엇인가를 찾는 활동을 하게 된다.“  - 국공립 의료기관의 기능 정상화란.  

“현재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국공립병원이 적지 않다. 정부부처와 각 지자체 산하에 각각 흩어져있는 국공립병원의 연합회를 만들어 공공병원 전체의 기능과 역할을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국공립병원 운영 정상화를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공공병원의 역할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 지역공동체에서 병원 기능의 활성화는 또 어떤 것인가. 

“지금까지 병원은 찾아오는 환자만 봤다. 지역공동체 안에서 건강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병원이 속한 지역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의 건강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지역민들과 이야기하고 교육하고, 아픈 사람을 찾아가 치료하면서 병원 본연의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제도와 규범 때문에 이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법규범이 병원의 기능을 너무 나쁘게 만들어 버렸다.지역공동체 안에서 병원 기능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 병원은 중랑구청을 비롯해 지역내 보건·의료·사회복지 유관기관 36곳과 ‘301네트워크(보건의료복지연계센터)’를 구축했다. 병원과 지자체, 복지시설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복귀까지 지원하는 협력체계다. 구청이나 지역사회 보건, 의료, 복지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취약계층 중 의료적 문제가 발생한 대상자를 발견하면 곧바로 북부병원의 ‘301네트워크’로 진료의뢰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병원은 의뢰된 대상자의 치료계획 수립과 함께 치료 후 정상적 사회복귀를 위한 복지 지원까지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301네트워크는 공공병원으로써 북부병원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 시민위원회 운영이 자칫 병원 운영의 자율성이나 경영적인 측면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는 공공병원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다. 공공병원은 본래 시민의 것이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병원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에게 병원 경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느냐를 따지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병원에 도움이 돼야만 꼭 시민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 북부병원을 명품병원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명품병원이 대체 뭔가. 

“많은 사람들이 공공병원이라고 하면 낙후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공병원도 오래 둬도 멋있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항상 갖고 싶은 진짜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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