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DUR 시행 이후 무차별 삭감…처방할 약이 없다"

낮은 시장성·임상시험 어려움 등으로 개발 꺼려

소아과에서는 뇌전증이나 가와사키병 등의 소아질환에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불가피하게 의약품을 원래의 허가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는 이른바 ‘오프라벨(Off-Label)’ 처방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그런데 DUR(의약품 처방 조제 지원서비스)이 시행되면서 소아과 처방의 상당수가 연령금기 위반으로 삭감되고 있다는 것이다.지난 2010년 기준으로 국내에 허가‧신고된 전체 소아 의약품은 총 1만1,437 품목이다.

그러나 마땅한 소아의약품이 없어 성인용 의약품의 용량을 줄여 소아에게 투여하는가 하면 아예 치료제가 없어 오프라벨 처방으로 투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소아질환 중 오프라벨 처방을 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가와사키병과 뇌전증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소아 가와사키병 치료에는 ‘면역글로불린주’라는 의약품이 쓰이고 있지만 평균적으로 일년에 2~3명의 환자는 투여를 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환자에게 쓰이는 약이 ‘인플립스맙’이라는 류마티스 치료제다.

문제는 이 약을 사용할 경우 한번 투여에 60~70만원이나 되는 금액이 전액 환자 본인부담이라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고가의 인플립스맙 대신 저가의 ‘메토트렉세이트(methotrexate)’로 오프라벨 처방을 하기도 한다.

대한소아과학회 김동수 회장은 “인플리스맙 대신 한번에 20원 정도 밖에 안 하는 면역억제 항암제인 메소트렉세이트를 소아 가와사키병 환자에게 투여해 봤더니 상당한 효과를 봤다”며 “그러나 이는 허가사항에도 없고 교과서에도 없는 오프라벨 처방”이라고 말했다.

뇌전증의 경우 지난 20여년간 2세 이하의 소아에게 사용인 승인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다.

소아과학회 김흥동 학술이사는 “2세 이하의 소아에서 발생하는 뇌전증은 굉장히 심각한 경우가 많고 그 시기에 치료가 안 되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2세 이하에 적응증을 갖고 있는 뇌전증 치료제는 30~40년 이상 사용되던 약 뿐이고 최근 20년 사이에 개발된 치료제 중 2세 이하 사용이 안전하게 승인된 약은 거의 없어 전부 오프라벨로 처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기존 약으로 치료가 안 되는 경우 오프라벨 처방을 많이 하고 있다”며 “오프라벨 처방을 안전성 입증이 안 됐다는 이유로 사용을 못하게 하면 심각한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약업계 "낮은 시장성과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 어려움 등으로 개발 꺼려"소아의약품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시장성과 소아 임상시험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제약사들이 개발을 꺼리기 때문이다.

국내 A제약사 관계자는 “소아 의약품 개발은 작은 시장 규모로 인한 개발완료 후 비용 회수 어려움, 정부의 인센티브 부족, 임상 완료 후 허가 진행의 어려움 등이 있다”며 “특히 소아환자의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임상에 참여시키기를 꺼리는 경향이 높아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소아 임상시험을 의무화하거나 출시된 소아의약품에 약가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소아의약품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신약허가를 받은 의약품 중 소아 임상시험을 진행할 경우 특허권을 2년간 연장해주고 있다.

이후 신약개발 시 소아에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임상시험을 의무화했다.

유럽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아 임상시험을 의무화하는 대신 특허권을 연장해주고 있다.

일본도 소아에 적응증을 확보한 신약에 대해 특허권을 연장해주거나 약가인하에서 일정 기간 제외하는 방식으로 소아의약품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약사들로 하여금 소아 임상시험과 소아의약품 개발에 나서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 박민수 교수는 “국내 제약사에서 신약개발을 하고 있지만 소아 임상시험까지 할 여력이 없다”며 “소아의약품 개발 촉진 법령 등 소아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과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아 임상시험과 소아의약품 개발을 위한 정부 차원의 펀드 조성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소아과학회 김동수 회장은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등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소아 건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의 파이를 나누지 말고 응급의료기금과 같이 소아청소년의 건강촉진을 위한 국가적 펀드를 만들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소아 대상 오프라벨 처방 안전성 연구 지원"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국내 소아의약품 개발이 부진한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인정하는 분위기다. 

식약처 허가초과의약품평가TF팀 정명아 주무관은 “소아의약품은 시장 규모가 작아 투자한 개발비를 회수하고 남을 만큼의 충분한 이익을 확보하기 힘들다”며 “임상시험계획 승인 신청 시 요구자료 확보도 어렵고 시험대상자 모집 및 동의 확보를 획득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 주무관은 “적응증 추가시 사용량 연동제에 의한 약가인하 등으로 약가 산정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약가 산정이나 세제혜택 등의 정부 인센티브도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소아의약품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소아의약품 임상시험 계획 및 품목허가에 대해 사전 검토하고 오프라벨 처방되는 소아대상 허가초과의약품의 안정성과 유효성 검증을 위함 임상연구를 지원하겠다”며 “일본, 유럽, 미국과 함께 소아의약품 공동연구 개발을 위한 국제 소아의약품 임상연구 네트워크의 구축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식약처는 오프라벨 의약품 관리를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의료현장의 필요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오프라벨 의약품에 대한 평가 연구사업을 추진 중이다.

식약처는 우선적으로 신경계 감각기관용, 기관계용, 대사성, 항병원 생물성, 임부사용 의약품 등 5개 카테고리 1,335건의 허가초과 사용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조사․연구를 거친 후 소아에게 사용되는 허가초과 의약품을 7개 카테고리로 구분해 임상연구를 올해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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