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인천의료원 원장)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계기로 열악한 국내 공공의료 상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거점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의 열악한 시설과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적자 경영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개선 방안이 모색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임기 3년째를 맞고 있는 인천의료원 조승연 원장을 만나 공공의료의 의미와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최근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공공의료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대체 공공의료란 무엇인가.

“사실 공공의료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해외 의사들을 만나보면 공공의료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의료는 기본적으로 공공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공의료라는 말은 그 자체가 난센스다. 흔히 취약계층에 대한 진료를 공공의료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공공의료라기 보다는 시혜성 의료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공공의료는 복지와 연관된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공공의료라는 말은 의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수단으로써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 공공의료는 결국 의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표라는 말인가.

“그렇다. 공공의료는 의료의 공공성을 정상적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공공병원을 더 짓자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의료가 가진 본연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가 민간에 맡겨져 있다 보니 전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왜곡돼 있다. 이런 이상한 구조를 정상화 시켜야 한다. 궁극적으로 의료의 공공성 회복이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다.”

-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공공병원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공공의료에 방법론을 도입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양쪽 다 진료를 하고 돈을 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이러다보니 지방의료원에 대한 평가도 경영수지에 맞춰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병원이 민간병원과 다른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다.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역할을 다르게 하려면 서로의 기능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 공공병원의 가장 애로사항 중 하나가 만성적인 경영적자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결국 정부의 예산 지원이 답이다. 적절한 예산이 아닌 충분한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 정부가 공공병원에 민간병원과 다른 기능과 임무를 정해주고 거기에 대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그 예산이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에 정확하게 사용되는지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상당수는 지자체가 관리하고 있다.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감안할 때 ‘충분한’ 예산 지원이 가능할까.

“우리나라에 공공병원이 200개 가까이 되는데 복지부가 관할하는 곳은 지방의료원 정도에 불과하고 그 중 절반은 지자체가 관리하고 있다. 공공병원에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려면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맡겨서는 답이 안 나온다.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 복지부의 역할과 권한이 커져야 한다는 생각인가.

“맞다. 그런데 복지부는 대체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육부, 안전행정부, 보훈공단이 의료를 안다고 생각하나. 그들의 평가 기준을 보면 어떤 병원장을 임명했더니 경영이 흑자로 전환되더라 정도다. 공공병원의 흑자 전환을 두고 마치 노벨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떠드는데 이야말로 가장 바보같은 소리다. 가장 큰 문제는 복지부가 공공의료에 대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조차 못 막지 않았나. 복지부는 기껏해야 500억원 정도 되는 예산을 39개 공공병원에 나눠주는 역할 밖에 못하고 있다. 복지부가 행정부의 공공병원 인사권과 기재부의 예산을 가져와야 제대로 된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 지난 2월부터 공공의료 역할을 수행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 공공의료 강화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

“어림도 없다. 전형적인 예산낭비가 될 것이다. 복지부는 공공병원을 늘리지 않고 공공의료를 확대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친한 지방의료원장들을 만나 이와 관련된 의견을 들어보면 반발이 상당하다. 공공병원에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민간병원에 무슨 지원을 하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간병원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공공의료를 수행하게 하는 것보다 그런 병원들을 인수해 공공병원으로 활용하는 게 맞다고 본다. 있는 것을 활용할 생각을 해야지 왜 딴 생각만 하는지 모르겠다. 뜻은 좋지만 현실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공공의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민간병원에 재정을 지원한다고 해도 언발에 오줌누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의료는 인심쓰 듯 돈을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

- 공공병원이 지역주민에게 적정진료를 제공하면서 경영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방법은 없다. 적정진료는 커녕 설사 과잉진료를 한다 하더라도 유지하기 어렵다. 민간병원과 경쟁을 할 수 있을만큼 시설과 인력을 갖춰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는 시설도 형편없고 위치도 환자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세워진 곳이 상당수다.”

- 그러고보니 인천의료원을 오면서도 한참을 걸은 것 같다.

“솔직히 여기가 병원이 있을 자리인가. 위치도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도 불편한데 누가 오려고 하겠나. 진주의료원도 허허벌판에 짓고 환자 없다고 난리였다. 충주의료원도 산꼭대기에 세워져 있고 심지어 천안의료원은 고속도로 옆에 있다. 자가용이 없으면 오기 힘들다. 노인분들은 아예 걸어오지 못한다. 이게 정상인가. 접근성이 열악해 환자가 안 오는데 무슨 공공병원의 역할을 할 수 있겠나. 도청이나 시청과 자리를 바꿔야 한다.”

- 지방의료원 경영은 노조와의 싸움이라는 말도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을 '강성노조의 해방구'라고 비난했다. “지방의료원 경영이 노조와의 싸움이라는 표현은 틀렸다고 본다. 진주의료원만해도 직원들이 수개월간 임금체불을 겪으면서 한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그런 노조를 강성노조라고 하면 대한민국 어느 노조가 강성노조가 아니겠는가. 직원들에게 워낙 못해주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또 하나, 병원 속성상 병원장들은 노조를 상대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노조원들이 간호사, 물리치료사, 운전기사 등이다보니 의사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다. 노조는 노조대로 인정해주고 대화를 풀어나가면 되는데 그런 기술이 부족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인천의료원은 공공의료 역할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올해로 취임한 지 3년째인데 취임 전과 비교했을 때 바뀐 점이 있다. 솔직히 그전까지 인천의료원은 공공의료사업을 거의 안 했다. 그래서 취임 후 공공의료사업실을 만들고 공공의료사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올해는 공공보건의료지원단도 만들었다. 특히 인천시에 공공의료팀을 별도로 만드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예전까지 인천시에 보건정책과는 있는데 공공의료에 대한 전문부서는 없었다. 그래서 가천대 임준 교수 등과 함께 끊임없이 필요성을 주장하고 송영길 시장을 만나 설득도 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인천시청에 공공의료팀을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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