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 이유는 해외시장 진출 확대 등 사영영역 확대…일각선 '경영권 승계' 의도로 해석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국내 제약사들이 늘고 있다.

제약사들의 지주회사 전환은 대외적으로는 제약사의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경영 안정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 취지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약산업의 혁신 추구보다는 오너 일가의 경영 세습을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지주회사로 전환한 국내 제약사는 총 6곳이며, 최근 지주회사 전환을 결정한 일동제약이 합류하면 모두 7곳으로 늘어난다.

▲ 지주회사 전환한 국내 7개 제약사. 왼쪽부터 녹십자, 대웅제약, JW중외제약, 한미약품, 동아제약, 종근당, 일동제약.
▲녹십자·동아·종근당 등 상위 제약사 지주사 전환 붐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먼저 지주회사 전환에 나선 곳은 녹십자다.

녹십자는 지난 2001년 국내 제약사로는 처음으로 헬스케어와 제약 부문을 분리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이듬해인 2002년에는 대웅제약도 대웅을 모회사로 두고 회사를 분할했다.

지난 2007년에는 JW중외제약이, 2010년에는 한미약품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국내 제약사의 지주회사 전환은 올해 들어 더욱 늘어났다.

지난 3월 동아제약이 지주회사로 전환한데 이어 최근에는 종근당이 지주회사 전환을 확정했다.

종근당은 지난 1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다음달 2일부터 종근당홀딩스와 종근당으로 나누는 기업분할을 결의했다.

일동제약도 지난 14일 이사회를 열어 투자사업부문과 의약품 사업부문을 분리하고, 향후 투자사업부문을 지주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일동제약은 이사회 승인을 바탕으로 내년 1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기업분할 안건을 상정할 방침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 위해서는 지주회사 전환 불가피”

국내 상위 제약사들의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규제적 성격의 제약산업 관련 정책으로 인해 제약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일괄 약가인하 실시 이후 의약품 매출 타격과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에 따른 영업형태 변화 등으로 국내 시장이 위축된데다 다국적 제약사의 공격적 마케팅까지 더해지면서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모색하게 됐다.

그 일환으로 신약 연구개발 강화와 해외시장 진출 등을 추진하려 했으나 현 국내 제약사의 경영시스템으로는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지주회사 전환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지주사가 투자와 해외진출 등을 담당하는 대신 자회사는 기존대로 연구개발, 제조, 판매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주회사로 전환한 국내 제약사 중 대부분은 해외 시장 진출을 전환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종근당 김정우 부회장은 지난 1월 지주회사 전환 당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의 분할은 진정한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제약도 지난 3월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경영 투명성 제고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토대 구축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약가인하와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등으로 더 이상 국내시장만으로는 안 된다는 업계의 인식이 커졌다”며 “해외 진출 모색에 있어 구조적으로 홀딩스가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에 전환했다. 전환 후 홀딩스를 통해 투자도 받고 계열사 확장, M&A 등이 가능해져 글로벌 활동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국내 제약사의 지주회사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한금융투자 배기달 애널리스트는 “일괄약가인하 등을 비롯 최근 국내 제약시장의 변화가 상당히 심하다”며 “제약산업은 투자에 비해 성과를 내기 오래 걸려 투자가 쉽지 않은데 홀딩스 체제로 전환할 경우 투자가 쉽고 사업부별 책임 경영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전환, 경영권 세습 수단에 불과” 비판적 시각도 반면 국내 제약사의 지주회사 전환은 ‘오너家’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주주(오너)의 지분율이 낮은 제약사는 적대적 M&A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세습에 울타리를 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지주사와 자회사를 분할하면서 대주주는 지주사 주식을 내주는 대신 자회사 주식을 확보하는 주식 교환을 통해 자회사 지분 보유를 확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회사의 주식이 지주사 주식보다 가치평가를 높게 받기 때문에 대주주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자회사 지분 확보가 가능해 적대적 M&A로부터의 방어가 수월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일동제약이 대표적 사례로 지목된다.

일동제약은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의약품 사업부문의 경영안정성을 증가시키는 목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강화 의도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녹십자는 지난해 초 일동제약 주식 중 8.28%를 신규 취득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환인제약이 보유했던 7.07%까지 일괄 인수하면서 총 15.35%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를 두고 증권가와 업계에서는 일동제약에 대한 녹십자의 M&A가 가시화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일동제약 윤원형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치면 34.16%이지만 녹십자가 개인주주 이모씨의 지분 12.74% 및 피델리티의 지분 9.99%와 연합할 경우 일동제약은 경영권 방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위협 속에서 일동제약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지주사와 자회사의 주식 교환 등을 통해 윤 회장 일가는 지분율을 높일 수 있고 경영권 방어에 유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할 점은 제약사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강화가 2~3세의 경영권 세습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국내 100대 제약사 중 가족 경영을 이어가는 곳은 50여곳에 달하며, 2세 경영을 넘어 3세 경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약사도 상당수다.

일각에서는 제약사들이 전문 경영을 통한 혁신을 추구하기보다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경영권 세습을 추구하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국내 B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의 2~3세 경영인 중 일부는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업계에서 후계자 과정을 거치면서 제약산업과 기업경영에 대한 이해를 높인 이도 있다”며 “그러나 제약과 전혀 관련이 없는 법대나 경상대 출신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그는 “후자의 경우 일반기업에서의 경영능력은 어떨지 몰라도 제약기업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차라리 급변하는 국내 제약환경을 감안할 때 전문 경영을 통해 혁신을 추구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영승계는 기업의 안정적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지주회사로 전환한 C제약사 관계자는 “2~3세 경영인의 경영능력이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능력이 보장된다는 가정하에서 볼 때 경영승계는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2~3세 경영인에 대한 판단은 주주의 몫이고 오히려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돼 합리적 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제약사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며 “지주회사 전환은 사업을 더욱 확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각 제약사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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