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이넥스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지난 주 의료기기 임상시험 관련 국내학회에서 미국의 혁신의료기기제도(Breakthrough Device Designation)에 대해서 짧은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다. 국내 혁신의료기기제도와 미국의 혁신의료기기제도를 비교하는 발표를 하던 중 청중석 가운데에 백발머리의 유방외과 교수 한 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발표 내내 경청하면서 수시로 고개를 끄덕이고, 단상을 내려오는 필자를 반갑게 맞으며 “미국의 혁신의료기기제도는 국격이 느껴지네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미국 혁신의료기기제도는 2016년 제정된 '21세기 치유법(The 21st Century Cures Act)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난 5년간 미국의 혁신의료기기제도의 탄생과 이후 시행과정에서 FDA 와 연방보험청 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 의 관련 발표와 논의를 꾸준히 지켜보아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 기관이 '당초의 목적 달성을 위한' 성실한 노력을 한 땀 한 땀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정부가 미흡했던 점을 인식했을 때에 이를 대중에게 드러내고 방향 재설정을 위한 검토를 하겠다는 솔직한 태도에 진정성에 감탄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혁신의료기기가 이름뿐인 훈장으로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게 만드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미국 제도에서 배울 점을 공유하고 싶었다.

혁신의료기기제도의 목적은 명확하다. 개발 중인 의료기기 중에서 환자에게 의미있는 가치를 줄 수 있는 기술은 보다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가치중심의학(value-based medicine)의 정신을 담았다. 그래서, FDA는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의료기기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품목허가시점을 앞당기기 위하여 FDA가 지원하는 것이다.     

혁신의료기기 지정의 1차 기준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 life-threatening diseases, 회복할 수 없는 기능소실 질환이나 상태 Irreversibly debilitating diseases or conditions 에 대해 보다 효과적인 진단 또는 치료 대안이 될 수 있는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한다. 1차 기준을 통과하면, 그 다음에는 2차 기준을 적용한다. 네 가지 중의 어느 하나 - (1) 혁신적인 기술을 의료기기로 구현했거나, (2) 대체 치료법이 없는 질환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기기이거나, (3) 기존 치료와 비교하여 의미있는 장점이 있거나, (4) 환자 관점에서 최선의 이익 Best interests of patients 에 부합 – 에 해당되면 최종 합격.   

처음 세 가지 기준은 우리 나라 혁신의료기기제도에서도 있는 비슷한 것인데, '환자 관점에서 최선의 이익'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좀 생소하면서도 흥미롭다. 새로운 의료기기가 기존의 의료기기 사용의 결과로 남겨지는 심각한 피해를 피할 수 있게 한다면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혁신의료기기 될 수 있다. 즉,  사용 대상 환자가 이 의료기기가 없다면 겪게 되는 상황을 고려하여, 의료기기를 사용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자는 환자 중심의 치료(patient-centric treatment)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환자가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면서 설사 잠재적 위험에 노출된다고 하여도, 환자가 그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감수할 수 있다면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될 수 있다.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의료기기는 개발과 품목허가신청 과정에서 FDA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FDA 주요 지원 사항을 보면 매우 전문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용적이고, 체계화되어 있어서, FDA 가 의료기기 개발업계의 핵심적인 어려움을 잘 간파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 의료기기 개발 중 FDA와 수시 상호 의사소통   
- 품목허가 전·후에 요구되는 자료의 재조율 (대상 환자의 특성에 따라 품목허가 전의 제출자료 중 일부를 품목허가 후 제출로 대체 가능) 
- 품목허가용 임상시험에서 보다 유연한 설계 가능 (최소한의 임상적 효과를 측정하는 평가 항목 미리 설정, 임상결과를 대변하는 중간 또는 대리 변수 intermediate and surrogate endpoints 고려, 의미있는 효과의 크기에 대한 복합평가항목 고려 가능, 적응적 시험 설계 Adaptive study design 등)  
- 품목허가신청서 검토 팀의 우선 지원 (해당 제품에 대한 전문성이 가장 높은 검토자의 주도 하에 검토 팀 구성, FDA 고위층의 관리 하에 검토 팀 구성원 대상 교육 훈련을 실시하여 효과적이고 일관성있는 절차와 검토가 진행되도록 지원, 개발자와의 회의를 통하여 검토 팀이 최신 기술을 숙지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를 접근하도록 교육, 제품에 따라 특별 이슈가 있을 경우 전문검토자 추가 배정 예. 임상시험디자인에 대한 특별 자문 등)  
- 의료기기 개발과 품목허가신청서 검토 과정에서 신청자와 FDA 검토자와 이견이 있을 경우 FDA 고위층에서 개입하여 조정
- 품목허가신청서 우선 검토 (품목허가 신청서 제출 후 접수 순서에 따라 대기하지 않고 최우선 검토 순서에 배정)  
- PMA 품목허가신청서 검토 중 품질시스템 심사 동시 실시 

데이터개발계획(Data development plans, DDP) 프로그램이 가장 흥미롭다.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의료기기에 대하여 시판 전후에 걸친 전주기 안전성·유효성 관련 자료제출계획을 미리 수립해 의료기기 기업과 FDA가 사전 합의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기기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가능하고 효율적인 개발 프로세스와 품목허가를 구체적인 일정을 목표로 추진할 수 있다. 혁신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시판 후 자료제출을 조건으로 시판 전 자료제출을 축소할 수 있는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환자가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또다른 흥미로운 프로그램 중 하나는 '단기 협의(sprint discussion)' 이다. 새로운 이슈가 있을 때에 일정한 기한을 정해서 FDA 와 의료기기 기업이 논의를 진행하여 상호 합의에 이르도록 노력함으로써 의료기기 개발에서의 의사결정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일주일을 주기로 신청자와 FDA 가 의견을 상호 교환하면서 합의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FDA 가 제시한 단기 협의 과정의 예시이다. (Breakthrough Devices Program: Guidance for Industry and Food & Drug Administration Staff, December 18, 2018) 

이러한 혁신의료기기가 허가된 후 최대한 신속하게 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FDA – 연방 보험청 CMS 간의 협력 관계도 눈에 띈다. FDA 는 품목허가 전 의료기기 기업과의 개발지원 과정에서 기업과의 회의에 CMS를 초청하여 개발 중인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기술적 특성을 배우고 보험급여를 위하여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해왔다. 그리고, CMS 는 혁신의료기기의 품목허가 시점과 보험급여 시점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품목허가 즉시 4년간의 자동급여기간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혁신의료기기가 보험급여가 되지 않으면 실제로 환자가 전액본인부담으로 사용하기 어려우므로 자동급여기간을 통해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책 방향은 실행단계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FDA 품목허가기준이 CMS가 가지고 있는 보험급여의 대원칙 – 합리적이고 필요한 의료 Reasonable and Necessary 에 대한 급여 – 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FDA로부터 혁신의료기기 품목허가를 받는 시점에 제출된 안전성·유효성 근거가 CMS의 공보험 메디케어 급여 대상 인구인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안전성·유효성을 대변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근거의 간극을 늦게서야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메디케어 대상 인구가 미처 파악되지 못한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대상 인구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전국 급여 결정 National coverage 에는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개별 심사에서 급여 이 논의는 2022년 중 최소한 두 차례의 공청회를 거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의 혁신의료기기제도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 당초의 목적 – 환자에게 더 좋은 기술을 더 빨리 공급하자 - 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효성 있는 핵심에 천착하는 관계 기관의 치열한 노력과 논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이다. 우리 혁신의료기기제도의 국격은 어디쯤 있을까.   

<헬스인·싸>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트렌드를 잘 쫓아가며 주목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인사이더(insider)'와 통찰력을 의미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앞으로 <헬스인·싸>는 의료기기 인허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유통구조, 공정경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공유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료기기 제도·정책을 살펴보고, 나아가 의료기기업계 정부 의료계 간 소통과 상생을 위한 합리적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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