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재료 관리료 산정·유통관리 복지부 전담' 제안
업계 "시대착오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없어" 비판 제기돼

[라포르시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이하 협회·회장 유철욱)가 정부를 상대로 ‘의료기기 도매업 허가제 신설’을 제안해 사실상 유통전문대리점 제도화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라포르시안은 앞서 협회가 12쪽 분량 ‘의료기기(치료재료) 유통구조 개선’ 문건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내용을 확인 보도했다. 기자가 입수한 문건은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방안으로 의료기기 도매업 허가제 신설을 비롯해 ▲치료재료 관리료 산정 ▲의료기기 유통관리 일원화 ▲리베이트 근절 등 검토과제를 담고 있다. <관련 기사: 의료기기 ‘도매업 허가제’로 유통전문대리점 공식화?>

관련해 의료기기산업협회 측은 회원사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초안 형태 의견서로 보건복지부의 입장과 의견을 듣고자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문건은 약사법상 의약품 도매업과 ‘판박이’ 제도시행을 제안하고 의료기기 유통관리를 복지부로 일원화해야한다고 주장해 의료기기 유통·판매업 이해관계자는 물론 식약처·복지부 간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이 협회 내부에서도 유통구조위원회로부터 의견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정부기관에 의견을 전달해 절차상 심각한 하자가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협회 유통구조위원회 한 위원은 “복지부에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제출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지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위원회에서 검토하지도 않은 의견서를 협회장이 독단적으로 지시·전달한 것에 대해 위원들의 불만이 많고, 유통구조위원회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협회가 복지부에 초안을 전달한 것 자체가 실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협회 한 임원은 “단체가 정부기관에 제도개선 의견을 낼 때는 충분한 내부 의견수렴과 검토를 거쳐 합당한 근거를 마련해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협회가 초안을 통해 복지부의 입장과 의견을 듣고 그 내용을 토대로 수정·보완 후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복지부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 의지가 없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더 큰 문제는 의견서 내용이 부실할뿐더러 실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라며 “최종 보고서가 아닌 초안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4,000만원의 연구용역비를 쓸만큼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협회 ‘의료기기(치료재료) 유통구조 개선’ 문건에서 제시한 ‘치료재료 관리료 산정’의 경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건 내용을 보면 의약품과 치료재료는 거래 조건 모두 실거래가상환제를 적용받고 각각 약국·의료기관의 이윤을 불허하는 등 동일하다고 전제했다.

다만 의약품은 약국과 의료기관의 구입 및 재고관리 등에 관한 비용을 ‘약국관리료·의약품관리료’ 항목의 별도 수가로 산정해 급여함으로써 보상이 이뤄지는 반면 치료재료는 의료기관의 사용 과정에서 소요되는 관리비용을 불인정해 불법·변법을 구조적으로 조성하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치료재료 실거래가의 5%를 ‘치료재료 관리료’로 산정해 병원에 급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관련해 의료기기업체들은 치료재료 관리료 별도 수가 산정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약국은 실제로 의약품을 구매·보관·재고관리를 수행하는 반면 치료재료는 의료기관 내 제품 수탁관리를 의료기기 공급사가 맡고 있는 상황에서 관리료를 병원에 급여해야 할 명분 자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치료재료 관리료 산정 주장은 정부가 치료재료 수가별 금액을 5% 인상해주면 이 가운데 일부가 의료기기 공급사에 갈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공급사에 안 주면 그만이다. 일종의 대리점 역할을 수행하는 간납사에 주면 되고, 이 돈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국적기업 한 임원은 “복지부는 협회가 치료재료 관리료 5%를 별도 산정해 달라고 하면 당연히 적정성 평가를 해야되지 않겠느냐”며 “치료재료 관리료 제안이 오히려 치료재료 실거래가와 공급내역보고를 토대로 한 실태조사로 이어져 수가 인하로 이어지는 역풍을 맞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협회가 문건을 통해 제안한 ‘의료기기 유통관리 일원화’ 역시 식약처와 복지부 간 갈등과 반목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문건 내용을 보면, 약사법상 의약품 제조는 식약처가 전담하는 한편 유통과정은 복지부가 운영하되 의약품 회수·폐기 및 부작용 보고 등 유통과정상 안전업무의 경우 식약처 소관이라고 적시했다. 더불어 복지부는 의료기관과 약국관련 및 보험급여 업무를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유통과정 업무를 전담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의료기기 제조·수입업 관리는 식약처로 일원화돼있지만 판매와 유통은 복지부와 식약처로 이원화돼있어 체계적인 유통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기(치료재료)는 의약품과 동일하게 유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차이로 유통과정상 불투명하고 불법적인 형태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미 투명성을 확보한 의약품유통과 동일한 방법으로 치료재료 유통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근거로 의료기기 또한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제조는 식약처가, 유통과정은 복지부가 전담토록 조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다만 유통과정상 안전업무는 식약처 소관으로 분담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의료기기업계는 이 같은 의료기기 유통관리 일원화 주장이 복지부 외청이던 식품의약품안전청 시절로 회귀하자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식약청은 의료기기 정책을 수립하는 복지부로부터 지시를 받아 집행만 담당하는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업무 ‘이원화’에 따른 의료기기업계의 불만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의료기기산업협회는 2012년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의료기기 업무소관을 복지부 의약품정책과에서 식약청으로 이관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식약청이 2013년 국무총리실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처로 격상되며 의료기기 주무부처로서 독자적인 정책·입법기능이 강화되면서 복지부와의 업무 이원화 논란도 사라졌다.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 유통관리업무를 복지부로 일원화하자는 것은 의료기기업 허가를 복지부에 넘기란 말인 동시에 과거 식약청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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