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현희(서울시 어린이병원장)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는 간호사들이 3교대로 24시간 보호자가 없는 장애 아동을 무료로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 1948년 개원한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구 서울시립아동병원)은 대한민국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어린이 전문 공공병원이다. 이곳에 입원해 있는 환아들 중에는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많다. 어쩌면 이곳이 아니면 더는 돌봐줄 손길이 없는 아이들이다. 자치구 보건소와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등 공공의료 분야에서 20여년 넘게 근무하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모현희 서울시 어린이병원장을 만났다. 


-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계기로 국내 공공의료의 열악한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공의료 강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공의료기관이 공공성을 더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미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민간 대형병원은 적자를 상당 부분 감내하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민간병원에 공공성을 강요하기는 버거운 상황이다. 오히려 기존 공공병원에 투자를 집중해 전문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날로 커져가는 국민의 공공의료 수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 서울시 어린이병원은 공공병원으로서 역할을 증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병원은 크게 소아청소년과, 소아정신과, 소아재활과, 소아치과의 4개 진료 영역에 주력하고 있다. 각 진료과마다 치료 세팅을 확보해 한국형 공공어린이병원의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중증 장애나 복합질환 환아를 중심으로 인술을 펼치고 있다. 이 아이들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버려졌거나 마땅히 보호자가 없다. 소아정신과에서는 행동발달장애 환아의 진료에 애쓰고 있다. 무연고 환아를 끝까지 케어할 수 있는 병원은 대한민국에 우리 병원밖에 없다.”

- 잠깐 둘러보니 아이들을 치료할 공간과 인력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2007년 서울시 어린이병원으로 개명하고 시설과 인력 등 인프라를 보강하면서부터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해마다 15~20% 가까이 증가해 연 5~6만여명의 환아가 이 병원을 찾고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환아의 외래진료가 부쩍 늘었다. 발달장애아의 보호자는 치료받을 곳이 부족해 이곳에 오기 전까지 여러 병원과 시설을 오가며 전전긍긍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곳도 병실과 인력이 모자라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는 4년, 짧게는 1년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 공공병원으로서 서울시 어린이병원이 갖는 특징은.

“서울시 어린이병원은 서울시립아동병원이라는 이름으로 1948년 개원한 이후 어린이를 위한 공공병원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무엇보다 성인환자가 아닌 어린이, 그 중에서도 버려지고 장애를 입은 환아를 맡아 치료한 점이 ‘공공(公共)’ 그 자체이지 않나 싶다. 서울 관악구에 설치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갓난아기 중 상당수는 다운증후군 등의 지체 장애를 안고 태어난다. 이 아이들이 아프면 우리 병원에 옮겨져 새 보금자리를 찾는다. 실제로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환아의 절반 이상은 장애를 겪고 있다. 개원 당시부터 소외된 환아들을 치료해 오다가 전문성을 갖추게 됐고 여기에 사회의 관심이 합해져 한국의 대표적인 공공병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 공공병원으로서의 존재를 가장 뚜렷이 보여 주는 상징물을 꼽는다면.

“보호자 없는 어린이병동과 문제행동치료실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곳은 무연고 환아를 부모처럼 케어하려는 우리 병원의 공공의료에 대한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무엇보다 넓게 보면 어린이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야말로 공공병원의 대표적인 상징이 아닐까 싶다.”

- 취임 이후 공공병원 기관장으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얼마 전 장기입원 환아의 종양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환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인공호흡기를 달고 병원에 20년 가까이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코에 혈관종양이 생겼는데 뇌까지 퍼질 상황이어서, 서울시 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팀과 협진을 통해 제거 수술을 진행했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장애 환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를 해냈다는데 대해 모두 뿌듯해 했다. 우리 병원에는 최장 40년이 넘은 장기입원 환자도 있다.” 

- 공공병원이 지역 주민에게 적정 진료를 제공하면서 경영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그럴수록 희생과 사명감을 갖고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직원들이 태만한 공공병원에서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공공의료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성과를 낸 직원들에 대한 보상체계를 정립하는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과 후원을 이끌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시 어린이병원은 해외 의료진 견학, 언론홍보 등 다양한 대외 활동을 지원한 결과, 지역사회 및 대기업, 관공서 등의 재능기부가 줄을 잇고 있다. 시민이 참여해 같이 만들어가는 공공병원 모델이 결국 살아남을 수 있다.“ 

- 서울시 어린이병원의 중장기적인 비전과 과제는.

“내년부터 병원 신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17년까지 자폐나 지적장애를 가진 환아를 치료하는 발달장애아동 전문센터가 건립되는 등 부족한 공간과 인력이 어느 정도 보완될 전망이다. 삼성이 선뜻 200억여원을 쾌척했고 서울시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으로 병원 신축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서울시 어린이병원의 비전은 희망 없이 태어난 아이들에게 참 희망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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