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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동아홀과 박카스, 그 피곤한 풍경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3.10.1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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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회관건물은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다. 이 건물 3층에는 '동아홀'이라 불리는 대강당이 있다. 동아홀은 지난 반세기동안 의협의 모든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 곳에서 의협의 중요한 회의가 거의 다 열렸다. 이 곳에서 새로운 회장이 선출됐고,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상임이사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의 회원들이 모여 의료계의 현안을 다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동아홀에는 역대 의협 회장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당시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도 걸려 있다. 100년이 넘는 의협의 역사 속에서 동아홀은 단순히 '공간' 그 이상의 의미였다.

처음부터 의협회관에 동아홀이란 공간이 존재했던 건 아니다. 지난 2011년 발간된 '의협 100년사'를 보면 의협회관 건물이 지금의 위치에 세워지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의협의 모체인 '의사연구회'가 창립된 1908년 이후 40여년 이상 자체 회관을 갖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셋방살이를 하며 회무를 봤다. 그러다 1955년 11월 12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있는 구 의친왕궁을 매입하면서 처음으로 자체 회관을 갖게 됐다. 

이후 관훈동과 쌍림동, 관철동 회관을 거쳐 1974년 현 용산구 이촌동에 지금의 회관을 마련했다. 그런데 바로 직전까지 사용하던 3층짜리 관철동 회관을 매각하고 7층 규모의 회관을 신축하다보니 자금이 많이 부족했다. 회관 신축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펼쳤다. 일부 회원들은 수백만원의 거금을 기부했다. 특히 60년대 초 '국민 드링크'로 불리는 박카스 출시로 급성장한 동아제약이 1,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렇게 모아진 자금 덕분에 1974년 4월 마침내 지금의 용산구 이촌동 의협회관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의협회관 3층 대강당이 동아홀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 당시 동아제약이 회관신축에 거금을 기부했기 때문이다. 1,000만원이란 돈은 지금도 적은 액수가 아니다. 70년대 서울시내 50평 크기의 집값이 230만원 안팎이었다고 하니 그 당시 1,000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 의협이 1969년 한국수자원개발공사로부터 용산구 동부 이촌동 회관터를 매입한 비용이 1,893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동아홀이 생기고 지난 40여년간 의협은 물론 의료계 역사 속에서 그 명칭이  계속 불리었다. 

현재 의협회관 3층 대강당 출입문 상단에는 흰색 가림막이 쳐져 있다. 벌써 몇 개월 전부터다. 이 가림막 때문에 '동아홀'이란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현판이 보이지 않도록 일부러 가린 것이다. 올해 초 불거진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수 백명의 의사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법정공방 끝에 최근 18명의 의사가 법원으로부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금 동아제약은 의사들의 공적이 돼버렸다. 의협은 동아제약과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한다. 동아제약이 판매하는 의약품을 더는 처방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동아홀이란 명칭도 사라졌다. 이제는 '의협 3층 회의실'로 불린다.

의협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동아제약 의약품에 대한 대체품목 리스트를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처방을 바꿀 것을 권고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대응 행위에는 공감하기 힘들다. 이건 의협이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합리적인 개선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일개 제약사를 상대로 '응분의 대가'를 외치며 처방 변경을 유도하는 것은 의협이란 단체의 위상과도 맞지 않다. 공정거래법상 부당항 공동행위(Cartel, 담합행위)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에서 의사가 온전히 피해자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의사집단을 제외한 일반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의협은 지난 2월 회관내 동아홀에서 불법 리베이트와 단절을 선언했다. 당시 노환규 회장은 일부 의사들이 동아제약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 "처방권을 무기화하는 것으로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사들 스스로 동아제약 제품을 처방하지 않겠다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의협이 이를 권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의협이 해야 할 일은 리베이트 쌍벌제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회원들의 윤리의식을 고취하는 노력이다. 또한 의사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협회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뒤늦게 동아홀의 현판을 가린다고 그 공간이 갖는 의미마저 지울 수는 없다.

올해는 동아제약 박카스가 드링커로 발매된지 50년째 되는 해다. 이 회사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박카스 드링크 제품은 177억병이 판매됐다. 2011년 기준으로 박카스 매출은 1501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전문의약품 주력 제품인 스티렌, 리피논, 자이데나 등을 합친 매출보다 더 많았다. 동아제약은 지난 8월 박카스 발매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국내 1위 제약사라고 자부하는 회사가 여전히 '의약외품 박카스 신화'와 리베이트의 굴레에 빠져 있다. 40년간 지켜온 자리에서 떼어질 위기에 처한 채 이름조차 가려진 '동아홀' 현판 모습과 겹쳐진다. 마냥 볼썽사납다. 이걸 또 어쩌지 못해 안달하는 의협도 애처롭다. 어쩌면 동아홀과 박카스는 국내의 열악한 의료전문주의와 구조적으로 취약한 제약산업의 내밀한 속살이나 마찬가지다. 의협회관에 동아홀이란 공간을 내준 의사사회, 그리고 지난 50년간 '국민 피로해복제'로 불리며 국내 1위 제약사를 키워낸 박카스가 만들어낸 풍경은 참 고단하고 피곤하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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