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과학사를 왜곡시키는 영웅주의 사관

* 미국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HHMI)의 엘로이즈 두포(Heloise D. Dufour)와 션 캐럴(Sean B. Carroll)이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최근호(Nature 502, 32–33)에 기고한 글입니다.
1854년 영국의 콜레라 창궐을 종식시킨 존 스노, 무균 수술법을 개발한 조지프 리스터, 페니실린을 만든 알렉산더 플레밍….

과학 및 의학의 역사는 영웅적 인물들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스토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신화(神話)다. 주도면밀한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약간의 진실에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당무계한 신화들은 아직도 책, TV, 강의실, 온라인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사에서 또 하나의 신화를 찾아냈다. 그것은 "루이 파스퇴르가 개발한 광견병 백신의 최초 수혜자인 조셉 마이스터가, 파스퇴르의 무덤을 나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마이스터의 이야기를 철저히 해부함으로써, 신화의 탄생과정을 이해하고, 신화가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밝히며, 잘못된 신화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마이스터는 어떻게 사망했는가?

▲ 광견병 백신을 접종받는 마이스터와 파스퇴르. 프랑스에서 발행한 광견병 백신 100주년 기념우표.

1885년 7월, 조셉 마이스터라는 아홉 살 난 소년이 미친 개에 물려 사망이 확실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죽기는커녕 의학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루이 파스퇴르가 만든 광견병 백신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되어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그후 100여 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마이스터의 최후를 둘러싼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해졌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그로부터 55년 후인 1940년, 예순 네 살의 마이스터는 파리 파스퇴르 연구소의 수위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해 6월 파리를 침공한 독일군이 파스퇴르의 무덤을 열라고 강요하자, 그는 - 생명의 은인의 무덤이 나치에 유린되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 자살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2년 전, 자크 모노(생물학자)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나치 점령 하의 파리를 연구하던 중, 우리는 파스퇴르연구소의 자료에서 유진 울먼의 일기를 발견했다. 울먼은 파스퇴르연구소에 상주하며 박테리오파지 실험실을 이끌고 있었는데, 그의 일기 내용은 유명한 `마이스터 이야기`와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우리는 그의 일기를 읽고, "마이스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건의 날짜, 동기, 도구 등이 조작되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다.

널리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이스터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 직후인 6월 14일 또는 16일에 자살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한 지 열흘이 지난 6월 24일자 일기에서, 울먼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아침, 마이스터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또한 마이스터는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울먼의 일기에 의하면 그는 가스를 마시고 자살했다고 한다. 또한 일부 자료에 의하면, "마이스터는 파스퇴르의 무덤이 나치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자살을 택했다"고 하나 울먼은 그러한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마이스터가 처자(妻子)와 헤어진 후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만 적었다. 다른 수백만 명의 파리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마이스터의 가족들 역시 독일군이 침공해 들어오기 전에 파리를 떠났던 것이다.

우리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파스퇴르연구소 문서보관실과 박물관의 문서들을 이잡듯이 뒤지는 한편 마이스터의 죽음을 다룬 출판물들을 샅샅이 파헤쳤다. 한편 이 과정에서 마이스터의 손녀는 우리의 인터뷰 요청에 순순히 응해 줬다. 면밀한 조사와 인터뷰 결과, 우리는 울먼의 일기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마이스터의 자살 동기를 둘러싼 팩트에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마이스터는 자신의 가족이 독일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믿고, 가족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손녀와의 인터뷰, 기타 증인들의 증언). 파리가 독일군에 함락된 혼돈상태에서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마이스터는 가족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실, 그의 부인과 딸들은 6월 24일 그가 자살한 직후에 파리로 돌아왔다. 울먼이 일기장에 쓴 대로, 운명의 신은 그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들이 돌아오기 몇 시간 전에 가스 스토브를 이용해 목숨을 끊은" 한 남자의 이야기는 비극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침략자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직한 문지기"의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진실이 애당초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마이스터의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 이미지 출처 : 미래기술정보 포털 미리안(http://mirian.kisti.re.kr)

신화 만들기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과학사가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과학사에 있어서 신화가 만들어지는 패턴은 거의 일정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스터의 신화를 포함하여) 모든 신화들은 약간의 팩트에 기초하여 `위대한 사람`의 모델에 맞도록 부풀려진다.

예컨대, 플레밍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가 곰팡이로부터 항생물질을 분리하여 페니실린이라고 명명한 것은 팩트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14년 후) 인간에게 사용된 항생제를 개발하는데 관여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항생제를 개발한 과학자들과 아무런 접촉도 한 적이 없다.

"플레밍이 인류 최초로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개발했다"는 신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참 쉽다. 페니실린의 성공적 임상시험 결과가 처음 발표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이다. 수많은 병사들이 감염된 상처 때문에 목숨을 잃던 당시, 전시(戰時)의 신문 편집자들은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격려하기 위해 영웅담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기적의 신약이 탄생된 배경을 추적하던 중, 14년 전에 이루어진 플레밍의 우연한 발견(serendipitous discovery)에 주목했다. 1944년 6월 12일자 The Times지는 "하나님의 섭리로, 전쟁의 피로 얼룩진 우리에게 최강(最强)의 약물이 허락되었다"고 대서특필했다. 마이스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스토리는 - 부분적으로 - 전쟁의 와중에서 왜곡되었다. 그의 `영웅적 자살`은 파스퇴르의 전설을 미화함과 동시에 레지스탕스의 일화 중 하나로 뻥튀겨졌다.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마다 현실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자체적인 생명력을 갖게 되는 법이다. 마이스터의 신화에 `독일군 병사들`과 `파스퇴르의 무덤`이 첨가된 후 그의 자살 날짜는 나치의 파리 입성일에 맞춰 열흘이나 앞당겨졌다. 심지어 마이스터는 1차 세계대전 참전 시에 사용했던 리볼버 권총으로 자신을 쏜 것으로 날조되었다. 일부 일화에 의하면, 그는 나치의 총탄에 맞았다고도 한다.

플레밍의 경우도 그랬다. 그는 윈스턴 처칠의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렸다고 칭송받았다. 한 번은 어린 시절 물에 빠진 처칠 소년을 구했고, 또 한 번은 나중에 영국의 지도자가 된 처칠을 페니실린으로 치료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go.nature.com/hfakhl 참조). 여기서 많은 이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약간만 노력하면 분명한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장된 이야기가 영속성을 갖는 이유는 뭘까?"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특정한 신화가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그 속에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왔다. 즉, 오래 지속되는 신화에는 `영웅과 악당`, `비극과 승리`, `클라이맥스와 계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노가 런던의 콜레라 발생지역을 지도에 표시함으로써 오염된 공공펌프를 주범으로 지목한 것은 팩트다. 그러나 그는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하여 콜레라 창궐을 종식시키지는 않았다. 런던의 공공펌프 손잡이들을 제거한 것은 한 위원회이며, 그 시기 역시 콜레라가 한풀 꺾인 후였다.

한편 추종자들은 신화의 주인공에게 경탄할 만한 자질들을 덧붙인다. 예컨대 리스터는 적대적 과학자들로부터 진실을 수호하는 괴짜 아웃사이더로 묘사된다. 그러나 사실, 그가 석탄산(페놀)을 사용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그리 혁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마이스터의 신화를 만든 사람들은 나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던지(실제로, 파스퇴르 연구소의 멤버들 중 상당수가 독일에 저항했다), 한술 더 떠서 파스퇴르의 무덤까지 동원했다.

하나의 신화가 영속성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한한 자기참조(self-referencing)다. 하나의 이야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통한 퍼나르기가 신화를 영속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신화를 깨부수고 진실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신화를 깨부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신화 깨부수기

과학적 신화는 과학과 대중 모두에게 유해하다. 그것은 과학자를 `선형적이고 신속한 방법으로 기념비적 업적을 남기는 비범한 인물(extraordinary people making epic advances in a fast, linear fashion)`로 묘사함으로써 역사와 과학을 왜곡시킨다. 과학적 신화는 특히 대중과 학생들이 과학의 페이스와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예컨대 플레밍의 신화는 의학적으로 실행가능한 약물(medically viable drug)을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 노력, 방대한 데이터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또한 (소설에나 나올 법한) 위대한 업적을 찬양함으로써,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슈퍼히어로를 탄생시킨다.

기사, 작가, 영화 제작자, 과학자, 교육자와 같은 스토리텔러들은 과학자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료원(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물론 일차자료와 잘 정리된 이차자료가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팩트를 찾는 작업은 매우 힘들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보니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말들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유혹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 울먼의 일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도 마이스터에 관한 신화를 전파하는 1人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화는 주인공의 스토리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면, 확실한 증거 없이 - 마치 앵무새처럼 - 신화를 읊조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단 신화의 허구가 밝혀진 후에는, 신화를 폐기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터넷은 자산이 될 수도 있고 부채가 될 수도 있다. 마이스터의 경우, 신화가 눈덩이처럼 커져 한 가짜 `최신저널`의 기사에 버젓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며(go.nature.com/wqo2z6), 이것은 종종 정확한 기사로 오인되어 참고문헌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반면, 인터넷은 좋은 용도로 활용될 수도 있다. 예컨대 위키피디아는 전세계인이 접근할 수 있는 일차 정보원으로, 종종 일차 및 이차 문헌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과학적 신화를 깨부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조사결과를 위키피디아에 올려 많은 이들이 열람하게 하되 참고문헌을 적절히 병기해야 한다. 구글북스와 같은 툴도 방대한 문헌들을 찾아내는데 사용될 수 있다. 플레밍과 처칠에 관한 신화가 허구였음이 밝혀진 것도 한 독자의 집요한 검색작업 때문이었음을 명심하라.

신화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바라는 대중들의 열망 때문에 탄생한다. 따라서 신화를 깨부수는 강력한 방법은 신화를 `그와 동일한 감동을 주는 팩트`로 대체하는 것이다. 조셉 마이스터의 경우, `가족이 도착하기 직전에, 가족을 잃었다는 절망감을 못 이겨 자살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생명의 은인인 파스퇴르의 무덤을 욕보이지 않기 위해 자살했다`는 신화만큼이나 감동적이다. 그러나 새로 밝혀진 팩트에는 파스퇴르의 전설이 빠져 있기 때문에, 후세의 과학전기 작가들이 신화만큼 널리 언급해 줄지는 미지수다.

원문 출처 : http://www.nature.com/news/history-great-myths-die-hard-1.1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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