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부당청구 등 불법행위 급증·사무장병원 개설 통로로 악용
"설립기준 강화하고 비조합원 진료 제한해야"

최근 몇 년간 의료생활협동조합이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지역민의 건강 지킴이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수익에만 눈리 멀어 진료비 부당청구, 무자격자 진료행위 등의 불법행위를 하다 적발되는 의료생협이 적지 않다. 요즘 들어서는 의료생협이 사무장병원의 개설 통로로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 차원의 관리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의원실이 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61개에 불과하던 의료생협은 2010년 98개, 2012년 285개에 이어 올해 4월 말 현재 340개로 5배 이상 늘었다. 

의료생협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의료법 위반 등 각종 불법행위로 적발되는 의료생협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법 위반으로 적발된 의료생협은 2008년에는 8개소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53개소로 급증했고, 이 기간 동안 의료법을 위반한 의료생협은 93개소에 달했다. 

의료법 위반 유형은 ▲무자격자 의료행위 ▲유통기한 경과 의약품 사용 ▲의료인 정원미달 ▲환자 유인 행위 등 다양했다.

특히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사람이 의사를 고용해 만든 사무장병원으로 운영한 이른바 ‘유사 의료생협’도 다수 적발됐다.

일반 사무장병원은 의사가 그만둘 경우 폐업신고를 하고 다른 의료인을 구해 의료면허를 대여받아 새로 개설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지만 의료생협을 표방한 사무장병원은 그런 문제가 없다. 의료생협은 300명의 출자자와 3,000만원의 출자금을 갖춘 후 지자체의 승인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개설이 용이하고 의사가 그만두더라도 폐업 신고 없이 계속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적발된 사무장병원 형태의 유사 의료생협만 30여개 이상이며, 심지어 인터넷상에는 유사 의료생협 설립을 대행해주는 컨설팅 업체까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사 의료생협의 증가로 인해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해 진료하는 정상적 의료생협이 불신을 받게 되고 의료생협 자체가 사무장병원 및 부당청구의 온상으로 비춰지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의료생협 급증했지만 관리 안되고 사실상 방치…이젠 옥석 가릴 때"이런 이유로 유사 의료생협과 정상적인 의료생협을 구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그동안 의료생협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높다.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연합회 임종한 회장(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사진)는 “유사 의료생협이 증가한 것은 관리 부처의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정부의 의료생협 인가와 관리방안을 살펴보면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도 낮고 너무 무성의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의료생협이 관리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방치돼다가 최근 곪아 터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이야말로 의료생협의 옥석을 가릴 시점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임 회장은 “이미 몇 년전부터 사무장병원이 의료생협을 운영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절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은 없었다”며 “의료생협의 옥석을 가려 지역사회의 건강에 기역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의료생협 설립 기준을 지금보다 강화하는 방안과 정상 의료생협의 모임인 의료생협연합회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추진 중인 의료생협연합회에는 현재 인천, 안산, 서울, 대전, 원주, 전주 등 총 17개 의료생협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조합원 수만 3만세대 이상이다.

의료생협연합회는 회원 의료생협 간 자체 관리를 비롯해 운영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고 있어 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의료생협연합회가 의료생협에 대한 자체적 관리감독을 맡게 되면 유사 의료생협의 적발은 물론 기존 의료생협의 관리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의료생협 설립 기준을 사회적협동조합 수준인 조합원 500명, 출자금 1억원 수준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며 “자율적 관리감독 권한을 의료생협연합회에 부여해 의료생협 인가신청시 함께 참여하고 실사와 정기적 모니터링을 하게끔 함으로써 관리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생협의 관리권한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닌 복지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정백근 교수는 “일반적인 협동조합과는 달리 의료생협은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공정위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우리나라 보건정책에서 의료생협의 위상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만큼 복지부에서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의료생협 운영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이 부분이 전제가 안 되면 기형적 의료생협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계는 유사 의료생협 등의 부작용은 개설자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문제에 일차 원인이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8월 의사협회와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등 3개 의료단체는 불법적인 사무장병원의 폐해를 예방하고, 건전한 보건의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개정'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특히 이들 단체는 생협법상 의료생협이 비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게 명시돼 있고 그 수준 또한 과도해 유사 의료생협이라는 사무장병원 개설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의협 송형곤 상근부회장은 “의료법상 의료기관은 개설자가 의사여야만 하는데 의료생협은 자본과 실제 진료 의사가 분리가 되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의료생협의 취지는 좋지만 비조합원에게까지 진료를 허용하다보니 (유사 의료생협처럼)영리를 추구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의료생협에서의 진료는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사 의료생협과 정상 의료생협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인가 단계에서의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과 숨어있는 사무장병원을 적발할 수 있는 감시체계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삼았다.

그는 “원칙적으로는 의료생협 인가 단계에서 엄격한 잣대가 있어야 하겠지만 현재 감시체계로는 숨어있는 사무장병원의 증거를 찾기 힘들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유사 의료생협 적발시 참여 빈도에 따라 엄격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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