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한의사 385명으로부터 고소당한 전공의)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의약을 폄훼하고 한의사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젊은 의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고소인은 대한한의사협회 소속 한의사 385명이다. 최근 들어 의료계와 한의계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사건이라 양 측 모두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고소를 당한 젊은 의사는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였다. 사실 그는 이 사안으로 인터뷰 하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나 “한의협 관계자의 라포르시안 인터뷰 기사를 보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터뷰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어렵게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 본인의 SNS를 통해 주장하고 표현한 한의사와 한의약에 대한 글이 문제가 없다고 보는가.

“최근에 논란이 됐던 S한의원의 ‘맹물주사 사건’은 양심을 가진 의료인들에게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져버린 일부 한의사의 행동에 크게 분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은 알 수 없는 한방의 문제점에 대해 개인공간인 SNS에 글을 썼을 뿐이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기에 많은 사람이 이 글을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지 지인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알지도 못하는 한의사가 허락도 없이 글을 퍼가고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SNS를 통해 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인터넷과 언론 등에서 거론됐었고 의사는 대부분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물론 모든 한의사가 비양심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배운 적도 없고 판독도 못하는 현대 의료기기를 불법으로 사용하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거나 암환자를 상대로 ‘완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사기를 치는 일부 한의사를 비난한 것이다. 의료인으로서 양심 때문에 분노해 다소 거친 어조로 글을 썼던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내용만을 놓고 볼 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의료계와 한의계 간의 폄훼와 비방이 끊이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전통의학(한의학)이 허준이 살던 조선시대에는 훌륭한 의학이었을 수도 있다. 동의보감 역시 조선시대 의학 발전에 공헌한 훌륭한 의학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동의보감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은 전 세계 의학자들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한의학과 의학은 전통의학 또는 고대의학과 현대의학의 가치로서 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치 한의학이 동양의 산물이고 의학은 서양의 산물이라는 방식으로 프레임을 바꾸려는 한의사들의 태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것이 21세기 한국의료를 왜곡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우리나라 의사는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거쳐 의사가 됐다. 우린 한의협이 말하는 양의대를 나온 적도 없고 양의사도 아니다. 단지 현대의학을 공부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한의사들은 자신들이 한의사인 것에 견줘 대등한 관계인 것처럼 대비시키기 위해 '양방, 양의사, 양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현대의학과 의사를 비하해 왔다. 이러한 태도가 의료계와 한의계 간 폄훼와 비방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 현재 우리나라는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으로 의료체계가 이원화 돼 있어 그 속에서 많은 갈등이 초래되고 있다. 의료일원화가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의사는 USMLE(미국의사고시)와 JMLE(일본의사고시)를 합격하면 의료 선진국에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의사 면허를 인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중국을 제외하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진정한 의료일원화가 되려면 한방은 전통유산으로써 대한민국 의학 역사의 일부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의사도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라는 의견이나 ‘한의사에게 의사면허를 주자’라는 일부 한의사의 몰지각한 의견은 위험한 발상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은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에 대한 선택권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일원화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문제점을 알리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의료전문가 집단이 고도의 전문성과 직업윤리로 상호 영역을 둘러싼 갈등을 풀지 못한 채 그 문제를 법적으로 끌고가면 결국 전문가의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사건은 한의협이라는 단체가 의사 개인을 고소함으로써 의료전문가로서 의사가 바른 말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입막음하려는 의도로 보여 유감이다. 한의협에서 국민이나 의사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불법으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거나 암환자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한의원을 자체 스스로 정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제 집 식구라며 무조건적으로 감싸고 의사가 바른말을 하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율성의 훼손이고 의료 왜곡을 부추기는 행동이다.”

- 이번 고소 건에 어떻게 대응할 방침인가.   

“주치의를 맡아 바쁘게 근무하던 중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고 고소당한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주치의로서 환자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아 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니 대응이 조금 늦어졌다. 대한민국 의사의 인생에서 가장 고단하고 바쁜 시기를 보내는 전공의 신분로서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다녀오는 일은 조금은 귀찮기도 하고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내가 당당하지 못하게 행동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의사는 한의사에게 고소당할까 두려워 바른 말과 행동을 하는데 주저하게 될 것이다.주변 지인과 나아가 국민들이 잘못된 의료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을 예방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현재 대한의사협회에서 법적·물질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의사로서 양심을 걸고 당당하게 대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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