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속 지구환경 이야기 1&2 / 이시 히로유키 지음 / 안은별 옮김 / 민음사 펴냄, 2013년

일본 언론계 출신으로 오랫동안 환경문제를 천착해온 이시 히로유키님은 우연한 기회에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극시<브란트> 속에 백 수십 년 전 영국에서 국경을 넘어 북유럽까지 날아온 대기오염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문학 속에서 다루고 있는 지구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뒤쫓게 되었다고 합니다. <닛케이 에콜로지>를 통하여 연재해오던 성과물을 단행본으로 묶어낸 것이 <세계문학 속 지구환경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문학일까요?

안상헌님은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에서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한 문장을 얻기 위하여’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원리를 알면 세상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 접근방법으로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으로,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방식은 철학, 역사, 문학, 즉 인문학의 핵심입니다. 문학을 떼놓고 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주인공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상호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일어나는 사건을 두고 연결가능한 모든 부분을 동시에 조망하면서 파악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터키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은 “나에게 소설 쓰기란 사물과 이미지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서 소설 주인공들의 생각과 감각을 감지해 내는 기량이다.”(소설과 소설가, 89쪽)라고 말했습니다. 유럽에서 소유물, 그림, 사물, 잡동사니의 풍부함이 불러일으킨 사회적·개인적 욕구를 소설 속 풍격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작가는 발자크라고 합니다. 그의 작품 <고리오 영감>의 서두를 보면, ‘<모든 것이 사실이다.>’라는 셰익스피어 <헨리8세>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이 드라마는 너무도 사실과 일치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집에서나, 어쩌면 자기 마음속에서 이 드라마의 요소들을 인정할 게다.(9쪽)”라고 적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세계문학 속 지구환경 이야기>의 저자는 집필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명작에 등장하는 환경 문제를 날실로 하여 문제가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나 그 후의 전개를 꿰고, 동시대 인물·사건과의 연관성을 씨실로 하여 사람과 환경이 촘촘히 엮인 역사를 펴 보이려 한 것이 이 책이다.(6쪽)” 그렇습니다. 출발은 문학작품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관련된 많은 분야를 섭렵하여 인문, 사회, 과학 등을 아우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장융의 <대륙의 딸>을 통하여 마오쩌뚱의 제철입국을 위한 정책이 가져올 파국을 다루면서 저자는 “1958년 가을, 6세였던 나는 소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 매일 학교를 오가며 나는 자갈 사이의 흙 속에 박혀 있는 구부러진 못, 녹슨 쇳조각, 기타 금속 물체를 줍기 위해 길바닥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걸어야 했다.”는 구절을 인용하지만, 작품의 기획의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작가에 배경도 살피고, 사건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전하기 위하여 신문기사, 보고서 등등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기도 합니다.

전체 이야기는 스물 세 꼭지나 되는데, 주제는 제한적인 것 같습니다. 주로 자연을 남용해서 일어나는 기후변화, 고래와 코끼리의 멸종위기, 스페인독감을 비롯하여 산업화과정의 결과로 환경이 오염되어 생기는 질병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출애굽기>, 메소포타미아지방의 <길가메시 서사시>, 플라톤의 <크리티아스: 아틀란티스 이야기>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등, 동서고금을 망라한 작품들에서 환경과 관련된 부분을 인용하고 있어, 그의 관심이 얼마나 방대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삼림의 남벌로 인한 자연재해입니다. 황사와 가뭄으로 인한 기근은 인구감소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철기시대로부터 석탄과 석유가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이전 단계까지 나무가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었던 것이고, 해양운송과 전함건조를 비롯하여 건축자재로 엄청난 분량의 나무들이 필요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이스터섬의 모아이로 대표되는 것처럼 종교적 목적의 건축물을 조성하는데도 삼림을 필요로 하였던 것인데,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는 나무들은 대부분 생장에 적지 않은 기간에 필요하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는 수목을 얻으려면 오래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주요 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세계인들의 관심 밖에 있던 이스터섬에 관심을 쏟았던 노르웨이 인류학자 토르 헤위에르달의 <아쿠아쿠: 고도 이스터 섬의 비밀>을 인용하면서 삼림파괴의 비극을 정리한 경우를 보겠습니다. 최근 연구에서 폴리네시아로부터 건너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만, 헤위에르달은 이스터섬의 주민들이 남아메리카에서부터 왔을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짙은 녹음으로 우거진 폴리네시아의 다른 섬들과는 달리 초원은 있으나 숲은 거의 보이지 않는 이스터섬이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헤위에르달은 “달세계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이스터 섬의 원추형 사화산에 올라가 보라. 그러면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스터 섬은 바다와 하늘 사이에 걸려 있는 작은 섬이다.(112쪽)”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4,000년 전 약 200명이 이주해온 이스터섬 주민들은 18세기에 7,000명에서 1만 명까지 늘었는데, 인구가 늘면서 씨족 간에 긴장이 높아지고 종교의식에 집착하면서 종교의식으로 제작되던 모아이의 크기와 숫자도 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아이의 제작에는 막대한 노동력과 그들을 부양할 식량 그리고 목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이스터섬의 제한적인 자원은 결국 바닥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원남획이 부메랑이 되어 인간사회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교훈을 웅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나 라오서의 <낙타 상즈>에서 다루고 있는 황사현상은 결국 집약식 농업으로 지력을 상실한 초원이 사막화되면서 거대한 흙먼지폭풍을 불어오고, 황사는 광대한 영역에 걸쳐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매년 봄 반복되던 황사경보가 최근에 뜸해진 것은 결국 우리나라 기업과 자원봉사자들까지 나서 중국의 고비사막을 비롯한 황사발원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녹화사업에 참여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최근 일본의 후지산이 대규모 분화를 일으킬 조짐이 보인다거나, 백두산 역시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지구과학자들의 경고를 듣곤 합니다만, 대규모 화산폭발은 해당지역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고 지구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사례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만과 편견>으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에 나오는 한 장면, “그 농장과 비옥한 목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양떼, 꽃이 만발한 과수원,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차분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에서 영국에서는 통상 5월에 피는 사과꽃이 6월 하순에 피었다고 서술한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이 <엠마>를 집필하던 1814년 1월부터 1815년 3월 사이 영국은 이상저온에 보였는데, 이는 카리브해 세인트빈센트 섬의 수프리에르 산과 인도네시아의 아우산(1812년), 가고시마 현의 스와노세 섬(1813년), 필리핀의 마욘산(1814년) 등 대규모 화산 분화가 이어져 이상 기후가 한층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1815년 말 집필을 마치고 퇴고 중이던 4월에 인도네시아의 탐보라산이 대분화를 일으켜 한랭화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2권, 60쪽).

일본이 2020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오염의 위험을 감추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이 우경화되는 경향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만,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에서 일본이 지구환경에 개입한 구체적 사례를 별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미심쩍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으로 풀어내고 있는 고래남획의 사례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무차별적인 남획으로 고래가 빠르게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고래남획의 현장에 남아있던 일본에 대하여는 “특히 일본을 통치했던 미국 주도의 연합군 최고 사령부는 일본에 원조하는 식량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래고기의 소비를 장려하기도 했다.(2권, 22쪽)”거나 “일본은 연안에서 끝까지 상업포경을 이어갔고 1988년을 마지막으로 그만둘 때까지 국제적인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2부, 23쪽)”고 간략하게 적고 있어 지나치게 필봉을 사리는 자세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독일의 헤켈이 에콜로지의 개념을 정립하기 약 200년 전에 이미 자연보호를 내세웠다는 구마자와 반잔(1619~1691)의 <대학혹문(大學惑問)>을 인용하여 일본에서의 삼림남벌과 보호의 역사를 정리하는 대목에도 마찬가지 대목입니다. 반잔은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자연은 나라의 근간이다. 요즈음 산이 망가지고 강물이 얕아졌다. 나라가 심각하게 황폐해졌다. 예로부터 이런 사태에 이르면 세상이 혼란에 빠져 100년이고 200년이고 전국(戰國)의 세상이 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2권 80쪽)” 일본의 삼림역사를 보면 3번의 삼림 소실기가 있었다는 것인데, 6세기말 아스카 시대부터 9세기 중반 개간과 함께 장원이 발달하던 시기와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부터 에도 바쿠후 체제가 확립되던 17세기 중반까지, 그리고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부터 전후 부흥기라고 합니다. 조선이 일제 치하에 있을 때 백두산을 비롯한 국내의 깊은 산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을 벌채하여 강물을 따라 뗏목을 띄워 내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평야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일제가 조선의 깊은 산에 우거져 있던 나무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시바 료타로의 글을 빌어 한반도의 숲을 황폐시킨 것과 일본은 관련이 없다고 피하는 듯합니다. 석탄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제철산업의 에너지원은 목탄이었기 때문에 제철산업이 숲을 망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시바는 “제철로 삼림을 잃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한반도의 제철공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설을 전개했다는 것입니다.

우수한 제철기술은 곧 전쟁의 판세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제철기술자는 물론 제철에 필요한 자원을 허투루 관리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경우 지질학적으로 산이 노쇠한데다가 기후도 일본 열도보다 건조한 탓인지 산림을 지속적으로 베어내면 암석이 드러나고 이윽고 민둥산이 되는 일이 많았다. 산이 벌거숭이가 되자 그들이 이즈모로 건너왔다는 것이 나의 추정이다.(2부, 215쪽)”라고 적었다거나, “최근 민둥산이 특징적인 풍경이라 여겨지는 한반도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민둥산은 겨울철 온돌에 쓸 땔감을 너무 많이 베어버린 까닭에 그렇게 된 것이라 전해지나, 고대 한국의 수준 높은 금속 문화를 생각하면 반드시 난방에 쓰기 위한 벌채만이 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2부, 210쪽)“고 적었습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일제가 주도했던 벌채와 6.25사변의 전란의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국민의 무책임한 행동 탓이라 치부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닛케이 에콜로지에 연재할 무렵 환경문제로부터 문학으로 들어가게 된 학생이 있었다는 뒷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문학은 다양한 해석과 접근이 가능한 영역 같습니다. 저 역시 문학으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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