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 졸업자수 OECD 평균보다 높지만 간호사 활동인력 평균에 훨씬 못미쳐
"간호대 정원 확대는 완전히 실패한 정책"

[라포르시안] 국내 병원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인한 높은 업무강도와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친 간호사들이 병원을 그만두거나, 더 나은 환경을 갖춘 병원으로 이직하는 일은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정부와 병원계에서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자주 언급하는 게 바로 간호대학 정원 확대이다. 의료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간호인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간호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간호대 정원 확대는 대표적으로 실패한 정책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간호대 정원 확대로 최근 10년 넘는 기간 70개 넘는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신설했고, 입학정원도 지속해 늘었다. 그러나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현장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를  늘린 게 아니라 '장롱면허 간호사' 수만 확대했을 뿐이다.

대한간호협회 '간호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국내 면허등록 간호사 수는 41만4983명에 달하지만 보건의료기관에 활동하는 간호사는 21만5293명으로 약 52%에 불과하다. 나머지 20만명 중 학교나 공공기관 근무자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는 유휴간호사로 분류된다.

간호인력 수급 관련한 이런 문제는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 주요 지표별 우리나라 및 각 국가별 수준·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보건의료 인력 부문에서 임상의사(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했다.

간호 인력(간호사, 간호조무사)은 인구 1000명당 7.9명으로 OECD 평균(9.4명)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다. 전체 간호 인력 중 간호사만 놓고 보면 인구 1000명당 4.2명으로 OECD 평균(7.9명)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보였다.

OECD 주요 국가별 간호사 수를 보면 독일은 인구 1000명당 11.8명, 영국 6.6명, 일본 9.4명, 캐나다 7.1명으로 한국보다 더 높았다.

표 출처: 보건복지부
표 출처: 보건복지부

이상한 건 의료영역에서 활동하는 간호인력 수는 OECD 평균보다 많이 낮았지만 간호대학 졸업자 수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간호대학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40.5명으로 OECD 평균(31.9명) 보다 더 높은 수치를 보였다.

OECD 주요 국가별 인구 10만명당 간호대학 졸업자 수를 보면 2019년 기준으로 독일 43.9명, 프랑스 40.4명, 일본 46.1명, 미국 51.4명으로 한국(40.5명)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예를 들어 독일은 인구 10만명당 간호대학 졸업자 수가 43.9명으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11.8명으로 한국(4.2명)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더 많았다. 일본도 간호대학 졸업자는 인구 10만명 당 46.1명으로 비슷한 수준이지만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9.4명으로 2배 이상 더 많았다.

결국 한국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만성적인 간호인력난은 간호대에서 배출하는 정원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미 10년도 훨씬 전부터 지속해 간호대 정원 확대 정책을 폈지만 의료현장에서 활동하는 간호사가 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두는 이직과 사직률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병원 떠나는 간호사들...'노동력 갈아 넣기'로 양질의 간호 불가능>

교육부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간호학과 졸업자의 취업률은 80% 중반을 넘는다. 이처럼 막 면허를 취득한 신규 간호사 취업률은 높지만 간호사 평균 근무 연수는 5.4년에 불과했다.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30%를 넘는다.

간호사 이직과 사직률이 높은 이유는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OECD 보건통계를 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간호사 임금소득은 연간 40050.1 US$PPP(각 국의 물가수준을 반영한 구매력평가환율)fh OECD 국가 평균(48369.2 US$ PPP)보다 낮았다. 간호사 임금소득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OECD 국가보다 낮은 추이가 유지되고 있었다.

간호계는 간호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면 간호대 정원확대가 아니라 간호 관련 수가체계 개편과 병원 재직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 등의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간호대 정원 확대는 지난 13년간 완전히 실패했음이 입증된 제도"라며 "간호대학 정원은 간호사 인력부족 해결과 지방 간호인력 수급을 위해 2008년부터 지금까지 1만여 명에서 2만여 명으로 2배 확대됐지만 효과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진, 세금을 들여 국민 건강권에 먹칠만 해 온 복지부의 실패작"이라고 지적했다.

의료현장에서 적정 간호인력을 확보하게끔 하려면 간호인력 배치 기준 등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게끔 수가제도 등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

앞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2018년에 간호인력의 열악한 근무환경 분석 및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간호인력 근무여건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를 실시한 바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이 연구에서 "현행 의료법상 ‘간호인력 배치 기준’은 의료기관 개설과 운영을 위해서 모든 의료기관이 준수해야만 하는 ‘최소기준’으로 인지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이런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사문화돼 있으며, 간호사 배치기준 미준수에 대한 처벌기준도 미약하다. 실제로는 ‘권장최소기준’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간호사 교대제 개편 및 인력 배치 기준개선 시범사업(안)'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시범사안을 제시하면서 "정부차원에서는 간호인력 충원에 따른 수가체계를 개선하되 반드시 간호수가와 간호사의 고용과 근로여건이 연계돼야 하고, 사후모니터링과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또한 정부차원에서 간호사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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