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의료보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틀렸다. ‘국민건강보험’이 정확한 명칭이다. 같은 말 아니냐고 따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개념이 조금 다르다. 의료보험이란 용어는 1963년 제정된 의료보험법에 근거한 명칭이다. 이후 1997년 국민의료보험법이 제정된 이래 1999년까지 의료보험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그러다 1999년 12월 국민건강보험법이 제정됐다. 이듬해 7월 그 법이 시행되면서 건강보험이란 용어로 명칭이 변경됐다.

그렇다고 의료보험과 건강보험의 개념이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건강보험이란 명칭은 기존 의료보험의 보장 영역을 포함해 더 확장된 개념을 갖는다. 의료보험법은 국민이 질병에 걸리거나 부상, 분만, 사망 등의 상황에 처했을 때 보험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여기에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의 영역에 대해서도 보험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추가됐다. ‘의료’가 아니 ‘건강’ 보험이란 명칭이 붙은 이유다.

법률의 제정 취지가 그렇긴 한데 사실 또 따져보면 의료보험과 다를 바 없다. 질병의 예방이나 재활, 건강증진에 관한 보험급여가 굉장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시절과 비교해 보험 가입자와 급여 대상 항목이 크게 늘고 보장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질병 예방과 건강증진에 관한 급여 항목은 여전히 취약하다. 질병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고사하고 병증이 더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치료조차 급여기준에 가로막힐 때가 많다. 

최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시스템을 ‘개발도상국형’이라고 꼬집었다. 1977년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하기 위해 설계된 보험제도의 특징을 언급하면서 꺼낸 말이다. 당시 국민들의 보험료 납입 저항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완성하기 위해 도입된 '저부담-저급여‘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른바 ‘1977년 패러다임’이라고 불리어 왔다.

공단 이사장의 글에서 눈에 띄는 게 있다. ‘77년 패러다임’의 특징을 약간 다르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물론 보건의료 분야 학자들 사이에서도 77년 패러다임의 특징으로 ‘저부담-저급여-저수가’를 꼽는다. 그런데 공단 이사장은 저수가란 말 대신에 ‘저부담-저급여-혼합진료-치료위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오랜 기간 동안 보건복지 부처의 공무원으로 생활해 왔고, 특히 국내 의료보험제도 도입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2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는 "1977년 건강보험을 시작할 때 저수가·저급여 체계로, 필수의료가 아니고 기본의료만 했다. 거기서 발전해 온 것이 지금의 급여체계이고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름대로 추측하기에 이렇다.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너무 잘 알기에, 또한 그 책임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기에 교묘하게 말을 돌린 게 아닐까 싶다. 그가 꼽은 혼합진료와 치료위주의 특징은 77년 패러다임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파생된 현상일 뿐이다. 저부담-저급여에 따른 당연한 귀결로 저수가를 택하면서 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함께 제공하는 혼합진료와 치료위주의 의료서비스가 등장했다고 보는게 맞다. 의료행위에 대한 적정수가 보상을 못하는 상태에서 편법적인 수입보장의 일환으로 혼합진료를 허용했다. 그러다보니 박리다매로 환자를 끌어들여 치료위주의 서비스가 정착된 것이다. ‘저부담-저급여-저수가’로 불리는 3저 시스템이 왜 도입됐고, 그 프레임이 지금도 여전히 건강보험제도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소 생뚱맞은 표현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저수가 문제를 외면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 저수가는 비급여를 양산했고, 병의원간 환자유치 경쟁을 부추겨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켰다. 분만과 응급의료 같은 필수의료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했다. 심장수술을 해야 할 흉부외과 전문의를 요양병원과 개원시장으로 내몰았다. 심지어 103년이나 된 공공병원을 무너뜨렸다.

의료수가 문제를 병원과 의사의 수입문제로만 바라보면 답이 없다. 국민건강보험법이 추구하는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행위별수가 대신 포괄수가제, 혹은 총액계약제라는 지불제도의 변화를 통해 보험자에게 집중된 건강보험의 재정적 위험 부담을 의료서비스 공급자에게 떠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낮은 보험료 부담과 낮은 보장성, 그리고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건강보험의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럴 경우 지금의 건강보험제도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는 지속된다. 더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 머지않아 비가역적 손상을 입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저수가란 말을 더는 논의조차 힘든 ‘주술적 언어’로 남겨둬선 안된다. 건강보험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과학적 언어’의 영역으로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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