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술·혁신의료기기 대상 제한적 ‘신기술 추가보상’ 적용
FDA 승인 연계한 '혁신급여 메디케어 지불보상' 시행 앞둬

[라포르시안] 세계보건기구(WHO)는 ‘디지털 헬스’(Digital Health)를 빅데이터·유전체학 및 인공지능(AI) 등 고급 컴퓨터 공학을 사용하는 분야뿐 아니라 e-Health·mHealth(모바일 헬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했다.

디지털 헬스와 혼용되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보건의료를 연결해 언제 어디서나 예방·진단·치료·사후관리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Global Market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시장은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28.5%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정보통신기술(ICT)·인공지능(AI)의 기술적 발전과 함께 보건의료 측면에서의 건강관리 효율성 증대와 맞물리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면서 비용 지불보상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헬스케어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가치 측정 어려움 ▲전통적인 의료시스템과의 괴리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어려움 ▲국가별 상이한 의료시스템 ▲비용 지불 문제 등 여전히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지난달 30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한국과학기술법학회가 공동개최한 온라인 학술대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 바이오헬스 법제의 과제’에서는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비용 지불보상 제도를 소개하는 발표가 있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박대웅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혁신기획팀장은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산업 및 법제 동향’을 소개하고 한국이 준비해야 할 수가 법제화 방향을 모색했다.

박 팀장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의 활성화 장애물로는 ‘지불 주체’와 ‘수가 보상’이 거론된다. 지불 주체의 경우 보험자, 환자, 의료기관, 고용주, 의료기기·제약사 등 기업 가운데 누가 서비스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디지털 헬스케어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보험자, 즉 건강보험에서의 비용 지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수가 보상 관련해서는 AI·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한 식약처 인허가 건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적절한 수가 적용이 아직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AI 기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2018년 5월 뷰노의 골연령 분석 소프트웨어의 첫 식약처 허가 이후 지난해 9월 기준 53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요양급여 여부 평가 가이드라인이 있을 뿐 추가 지불보상은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보험청(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 CMS) 수가체계 하에서 혁신기술·혁신의료기기를 대상으로 한 지불보상이 이뤄지고 있다.

Viz.AI사의 AI 기반 주요혈관폐색(Large-Vessel Occlusion·LVO) 분류(CT 조영술) 및 실시간 전문가 알림시스템 ‘Viz ContaCT’는 CMS의 입원환자 전향적 지불보상시스템(Inpatient Prospective Payment System, IPPS)에 따른 ‘신기술 추가보상’(New Technology Add-on Payment, NTAP)을 적용받은 사례다.

2020년 9월 NTAP 승인을 받은 Viz ContaCT는 뇌졸중 환자의 급성치료를 간소화해 ▲치료시간 단축 ▲환자상태 개선 ▲입원기간 단축 등 상당한 임상적 가치와 재정적 효과를 인정받아 포괄수가제(DRG) 지불만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입원에 대한 NTAP가 이뤄졌다.

NTAP 적용 요건은 새로운 기술 또는 의료서비스가 기존과 비교해 임상결과를 크게 향상시켜야하고,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야한다.

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브리프 Vol.328에서 갈무리
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브리프 Vol.328에서 갈무리

NTAP는 포괄수가제(DRG) 지불액 초과 비용의 65% 또는 신기술 비용의 65% 가운데 작은 금액을 적용한다. 가령 3만 달러를 환급하는 DRG에서 신기술 비용을 1,000달러로 가정했을 때 2만 달러 비용이 발생했다면 NTAP는 없다.

만약 4만 달러 비용이 발생했다면 1,000달러의 65%에 해당하는 650달러의 NTAP를 받게 된다. 반면 3만 500달러 비용 발생을 가정하면 500달러의 65%인 325달러의 신기술 추가보상이 이뤄진다.

이 같은 규정에 따라 Viz ContaCT 최대 환급금액은 1,040달러로 결정된 바 있다.

박대웅 팀장은 혁신기술 또는 혁신의료기기의 임상적 가치와 재정절감 효과를 인정해 병원 사용을 장려하는 NTAP 또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은 NTAP가 3년의 제한된 기간 동안만 적용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NTAP의 경우 금액이 처음에는 높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CMS 수가를 적용받은 HeartFlow ‘FFRCT’가 대표적인 사례다. 관상동맥 CT 결과를 분석해 관상동맥 혈액 흐름 상태를 보여주고 혈관조영술 검사가 불필요한 환자를 선별해주는 소프트웨어 FFRCT는 처음에 NTAP 최대 지불액이 1,450달러였으나 이듬해 950달러로 크게 하락했다.

혁신기술·혁신의료기기 새 지불보상제도 시행에 신중 

혁신기술·혁신의료기기에 대한 또 다른 지불보상제도는 미국 FDA 승인과 연계한 ‘혁신급여 메디케어 지불보상’(Medicare Coverage of Innovative Technology, MCIT)이 있다.

MCIT가 등장한 배경에는 혁신적인 제품이 보험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그 임상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근거)를 제시해야하는데, 급여 전에는 근거 자체를 수집하는 게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 때문에 혁신의료기기가 FDA 승인을 받더라도 보험급여까지의 시간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MCIT는 21세기 치유법(21 century Cures Act)에 따라 혁신적 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s)로 지정된 제품을 대상으로 4년간 전국 보험급여(national coverage)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MCIT를 적용하는 혁신의료기기는 현행 표준 치료법에 비해 심각한 질병을 효과적으로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어야한다. 또 대체 치료법이 없거나 이에 비해 상당한 이점이 있는 등 추가적인 요건도 필요하다. 이밖에 AI·디지털 치료기기 등 혁신기술 활용 제품을 포함해야한다.

2019년 10월 3일 첫 제안이 이뤄진 MCIT는 이후 CMS 규칙 제안(2020.8.31) → 의견수렴(2020.11.2) → 최종규칙 발표(2021.1.12) → 시행 연기 및 공개 의견수렴 및 재검토(2021.3.12)를 거쳐 지난 5월 15일 시행 예정이었지만 오는 12월 15일까지 추가 연기됐다.

MCIT의 거듭된 시행 연기는 혁신적 의료기기의 판단기준과 목적이 다르고, 충분한 검증과정이 부족하며 재정 부담 우려 또한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기본적으로 FDA는 혁신적 의료기기의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해 승인하는 반면 CMS의 경우 보험 수혜자들의 질병치료에 합리적이고 필요한지(reasonable and necessary)를 평가하기 때문에 FDA 승인과 메디케어 지불보장은 그 적용기준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수의 고위험 혁신적 의료기기가 유효성에 관한 단기(short term)·대리(surrogate) 결과지표를 사용해 승인을 받았거나 유효성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에서 안전성 데이터만으로 승인을 받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기흉 위험이 있는 ‘이식형 폐 밸브 시스템’과 같은 중대 위험을 가진 장치가 혁신적 의료기기로 승인받는 경우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더불어 FDA가 시판 후 연구를 조건으로 혁신적 의료기기를 승인했지만 대부분 조건에 미달했다.

재정 부담에 대한 판단 착오 또한 MCIT 시행이 추가 연기된 요인 중 하나다. CMS는 당초 MCIT 재정 부담을 2021년 3억 달러(MCIT 적격 2개), 2024년 20억 달러(MCIT 적격 14개 이상)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지난해만 180개를 포함해 현재까지 400개 이상 혁신 의료기기가 FDA 승인을 받은 상태다.

MCIT 추가 연기가 결정된 배경에는 보험 수혜자·병원·의료인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MCIT는 혁신 의료기기 공급자가 해당 기술을 채택하도록 의료인을 자극할 수 있고 수혜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기술이 조기에 ‘표준 치료’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부적절한 자본 및 역량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제기됐다.

특정 장치가 보험 수혜자에게 해로울 경우 MCIT 승인 이후에는 비용 지불보장을 거부할 수 있는 수단이 크게 제한돼있다는 점도 부정적인 비판을 받은 이유다.

이밖에 제조업체가 MCIT 이후 추가 근거(evidence)를 확보하기 위한 임상시험 인센티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에 근거 확보를 일임하는 방식이 근거 개발을 지원하고 적용범위 기준을 설정하는 CMS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미국은 MCIT 시행 추가 연기를 통해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와 수혜자 요구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박대웅 진흥원 보건산업혁신기획팀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수가 문제가 부각되면서 각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문제점에) 접근하고 있다”며 “미국은 기존 시스템 내에서 혁신기술에 대한 수가를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하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되고 주기적으로 인하하는 신기술 추가보상(NTAP) 등을 통해서도 디지털 헬스케어의 적정수가 보전에는 한계가 있다”며 “혁신의료기기 인허가 제도를 수가와 연계하려는 ‘혁신급여 메디케어 지불보상’(MCIT) 전개 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선도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수가 법제 실험을 진행 중인 해외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의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수가 법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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