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도 못 미치는 백신 자급자족률…정부, 필수예방접종 국가지원 항목 확대 추진

최근 신종 감염병과 생물테러의 위험이 급증하면서 안정적 백신 공급의 필요성이 국가별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와 신종플루 사태를 겪으면서 '백신 주권' 확립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백신 국산화에 지원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국내 백신산업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백신주권을 확보하고 우리나라를 세계 5대 백신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국가정책조정회의’ 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산업자원통상부, 외교통상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와 합동으로 ‘백신산업 글로벌진출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국내 백신 개발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외 백신시장 개척을 지원하는 한편 산업 인프라를 강화해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개량백신 및 프리미엄 백신, 대유행·대테러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등 지속적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낮은 백신 단가와 신생아 감소 등으로 불안정한 백신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성인백신시장을 발굴하고 필수예방접종 항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성인백신시장 발굴을 위해 50세 이상 고위험군과 노인에 대한 예방접종률을 제고하고 접종 가이드라인 등을 배포함으로써 성인백신접종에 대한 홍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고부가가치 백신의 필수백신 지정을 확대하고 안정적 공급을 위한 합리적 가격결정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현재 국가에서 지원하는 소아 필수예방접종 백신은 11종이지만 오는 2015년부터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몇 종으로 늘릴 것인지 등 세부항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소아 폐렴구균백신이나 소아 A형감염백신, 소아 인플루엔자백신 등을 확대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 국산화 위해 필수예방접종 지원 항목 확대 추진 필수예방접종 항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백신 국산화라는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정기예방접종 백신 15종을 비롯해 기타예방접종 백신 9종, 대유행·대테러 대비 백신 4종 등 총 28종 백신 중 자급이 가능한 백신은 ▲B형 간염 ▲일본뇌염  ▲신증후군출혈열 ▲수두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b형 헤모필루스 인플로엔자 ▲두창 등 8종에 불과하다.

정기예방접종 백신 자급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내수시장을 활성화를 위해 국내에서 자체 생산이 불가능한 고가 수입 백신까지 필수예방접종 항목으로 지정해 지원하기에는 재정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 관계자는 “수입 고가 백신은 재정적 부담 때문에 국가에서 필수로 지정하기 어렵다”며 “자궁경부암 백신이 대표적이다. 한 세트에 40만원 정도 하는 백신을 필수로 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필수예방접종 항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해당 백신의 국산화가 선행되고 이를 통해 백신 가격이 낮아져야 필수예방접종 항목 확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필수예방접종 항목을 확대하는 것이 국내 제약업계로 하여금 백신 개발에 뛰어들게끔 만드는 유인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산업진흥과 관계자는 “백신 국산화를 억지로 끌고 가려는게 아니라 기업들에게 시장을 열어주고 이를 활용하려는 것”이라며 “국내 제약사가 백신 국산화에 성공할 경우 필수 백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으로도 백신을 개발하게끔 하는 큰 이유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백신 개발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백신 시장의 확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떤 예방접종을 필수 항목으로 확대할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백신 개발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A제약사 관계자는 “어느 백신을 필수예방접종 항목으로 확대할 것인지 구체적 계획이 제시돼야 한다”며 “백신은 공산품 개발과는 달리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데 아무 것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개발에 참여하기에는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필수예방접종 확대는 경제성 등 따져 이뤄져야"예방의학 전문가들은 백신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필수예방접종 항목을 확대하겠다는 복지부의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윤석준 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필수예방접종 지정 범위가 협소한 것이 사실”이라며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필수예방접종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로타바이러스(소아장염) 백신을 필수 예방접종으로 지정하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서는 선택 예방접종에 속해 있으며, OECD국가 중 70~80%에서 필수예방접종 항목으로 지정돼 있는 폐렴구균도 올해 들어서야 정기예방접종으로 뒤늦게 지정됐다.백신 국산화는 경제성에 근거해야 국내 제약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윤 교수는 “백신을 개발 중인 제약사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내 시장이 너무 좁다고 한다”며 “내수시장만 놓고 볼 때 한 두곳 제약사에 백신개발을 몰아주지 않으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수요를 보면서 (백신 개발을)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예방접종 지정은 철저히 경제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건양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교실 나백주 교수는 “필수예방접종 확대는 과학적 근거 아래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필수 지정이 불필요한 예방접종까지 포함하는 식의 낭비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인백신시장 발굴과 관련해서는 예산 배정 및 프로그램 강화 등 구체적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홍보 강화 등을 통해 성인백신 접종률을 높이려는 복지부의 계획은 좋지만 실질적 노력에 대해서는 그동안 말이 많았다”며 “성인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홍보 예산의 배정을 늘린다거나 지역적 활동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구체적 방안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